[오늘의 DT인] "창피한 어른 되기 싫다… 다음 세대에 괜찮은 지구 넘기고파"

이미연 2024. 4. 2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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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빈 수퍼빈 대표
삼성화재·섬유기술硏·철강선재 제조업체 거쳐 벤처기업까지… 화려한 이력
10여년 간 폐기물 빅데이터 구축… 작년말 누적 페트병 2억8000만개 회수
김정빈 수퍼빈 대표. 사진 수퍼빈
수퍼빈의 투명페트병 무인회수기 '네프론'을 사용하는 모습. 사진 수퍼빈
수퍼빈의 '아이엠팩토리' 전경

"지금와서 보면 운명같지만 당시 창업에 눈을 뜨게 된 건 결국 우연인 것 같아요. 이미 (당시 연봉 2억~3억원의) 철강업체 CEO(최고경영자)까지 해본데다가, 다른 회사들로부터도 러브콜을 받던 시기였는데요. 오너와 최고경영자는 엄연히 다르다는 생각이 커지는 동시에 다음 세대에게 좀 괜찮은 상태의 지구를 넘겨줘야 그들에게 그야말로 '쪽팔리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도 하게 됐습니다."(김정빈 수퍼빈 대표)

이력이 독특하다. 국내 대표 손해보험사인 삼성화재에서 출발해 세계적인 회계·경영컨설팅 업체인 삼정KPMG로 둥지를 옮기더니 그 다음 행보는 뜬금없이 한국섬유기술연구소였다. 업권을 크게 뛰어넘는 행보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어진 스텝은 철강선재 제조업체 코스틸로, 부사장으로 훌쩍 뛰어올랐다. 이후 40세가 되던 2013년에는 대표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김정빈(51·사진)씨 이야기다.

종잡기 힘든 엄청난 이력의 소유자는 현재 뜬금없이 스타트업 창업의 길을 걷고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분야로, 이번엔 이름마저 생소하다. 바로 폐기물 순환경제시장이다. 2015년 6월에 세상에 존재를 알린 '수퍼빈'은 그렇게 10년차를 향해 걸으며 어엿한 벤처기업으로 성장 중이다.

평범한 창업 루틴이라고 단정짓는다면 그야말로 오산이다. 예전엔 존재조차 희미했던 이 업계를 김 대표와 수퍼빈은 매일매일 새롭게 길을 만들어가면서 내딛고 있다. 김 대표는 "수퍼빈의 목표는 자원을 소비하고 폐기하는 '선형 경제'에서 사용한 자원을 새로운 소재로 재활용하는 '순환 경제'로 전환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라며 "순환경제의 핵심은 재사용 가능한 폐기물을 정확하게 분류하고 수집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어찌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쉽지 않은 분야에 도전장을 던진 수퍼빈의 목표는 '쓰레기가 돈이 되고, 재활용이 놀이가 되는 세상'이다.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심이 드는 목표지만, 김 대표는 이를 현실화시켰다.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을 활용해 재활용 가능한 폐기물을 분류·수집하고, 금전적 보상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소비자의 참여를 독려하는 폐기물 관리 방식을 고안한 것이다. 일반인들이 직접 리워드를 받는 방식으로, 폭발적인 참여는 물론 사회적 인식도 나날이 커지고 있다.

수퍼빈의 트레이드 마크인 투명페트병 무인회수기 '네프론'은 AI와 로봇 기술이 망라된 똘똘이 스머프다. 이미 10여년간 폐기물 빅데이터를 구축해왔고, 원격제어를 통해 로봇의 실시간 상태를 확인한다. 4월 현재 전국 111곳에 1100대의 네프론이 설치됐다. 2023년말 누적으로 2억8000만개의 페트병을 회수했으며, 26억원이 재활용에 동참한 시민들의 호주머니로 되돌아갔다.

지난해에는 김 대표의 숙원 사업이던 공장이 완공됐다. 수거한 재활용품을 직접 재가공해 플레이크(Flake, 플라스틱을 잘게 부순 상태를 일컫는 용어로 재활용 가능한 재료 수준으로 만드는 공정) 제조 공장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현실화된 것이다. 준공식에는 국무총리가 참석했고, 올해 초에는 환경부 차관이 다녀갔을 정도로 정부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물론 국내 첫 고품질 페트(PET) 플레이크 생산 공장인 '아이엠팩토리'를 세우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폐기물 공장이라는 혐오시설 딱지 때문에 부지 확보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첫 공장의 위치가 경기 화성시 우정읍에 위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번째 공장 부지는 가까스로 전북 순창에서 계약했다. 땅값도 문제지만 더 큰 난관은 인허가였다.

그래서 첫 공장부터 아예 잘 지었다. 인근 주민들은 물론 누구나 찾아와 이 공장에서 무엇을 만드는지 볼 수 있도록 공장투어 프로그램도 준비했고, 순환과 공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북라운지와 업사이클 굿즈샵, 제로웨이스트 공정무역 카페에 유기견 임시 보호공간까지 마련했다. 세계적인 디자인 공모전인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2024' 2개 부문 수상을 했다는 경력은 덤이다.

김 대표는 "쪽팔린 어른이 되기 싫었다. 그러지 않기 위해 돈이 (예상보다) 많이 들더라도 폐기물 공장 한번 제대로 지어 올려야겠다는 결심을 했다"며 "학생은 물론 교육자든 정치인이든 공간을 찾는 이들이 순환경제와 미래에 대한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수퍼빈의 다음 단계 난관도 아직 너무 높다. 아이엠팩토리에서 생산한 r-PET 플레이크는 'GRS 국제재생표준 인증'은 물론 식품용기 재생원료로 사용 적합하다는 환경부의 확인도 받았지만 시장 형성이 안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페트 1만t(톤) 이상 생산업체에 재생원료 3% 사용 의무를 적용해 오는 2030년까지 플라스틱 페트 생산 시 재생원료를 약 30% 이상 사용하도록 의무화할 계획이지만 아직 확정되진 않았다.

김 대표는 "현재 유럽은 의무적으로 재생 플라스틱을 쓰도록 되어 있다. 유럽 역시 재생 플라스틱이 기존 재료 대비 두배 정도 비싸지만 의무화라서 무조건 쓰는 상황"이라면서 "반면 우리나라 제도는 뒷걸음질하고 있다. 국내 폐플라스틱 재활용 활성화 고시는 돼있지만 페널티가 명시돼 있지 않아 국내 재생 플라스틱 시장은 없는 것과 다름없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세계 시장의 문도 두드렸다. 지난달 한국환경산업기술원과 함께 중남미 파나마의 파나마시티 순환경제 기반 폐기물 자원순환시설(MRF) 타당성 조사 프로젝트에 착수한 것이다. 1200억원 규모의 '파나마 고형폐기물 관리 프로젝트'까지 연계될 가능성이 있어 한국의 우수한 폐기물 처리 및 자원순환 기술을 남미 권역 폐기물 처리 시장에 진출시킬 수 있는 교두보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김 대표는 "타당성 조사 보고서에 수퍼빈 아이엠팩토리의 폐플라스틱 재활용 공정을 반영할 것"이라며 "이 사업을 계기로 전 세계에 수퍼빈이 설계한 순환경제 사업을 보급하며 녹색산업 수출에 이바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미연기자 enero20@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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