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수익보다 안전성`… `빛좋은 개살구` 디폴트옵션

신하연 2024. 4. 2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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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10개월째 전체 적립금액비율
90%가 원리금보장 초저위험 상품
고수익률 통한 노후대비 취지 무색
에프앤가이드 제공.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가 도입된 지 10개월 가까이 되어가지만 여전히 전체 적립금액의 90%가 원리금 보장 상품에 쏠린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투자자들은 "노후 대비용인데, 노후연금을 날릴 수는 없다"며 수익률보다는 안전성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은 퇴직연금의 경우 수익율을 우선으로 놓고 운용한다. 높은 수익률로 노후 대책을 돕겠다는 제도 도입 취지가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

◇돈은 몰리지만, 수익률은 낮은 은행= 24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전체 디폴트옵션 적립금 12조6611억원 중 90% 가량인 11조4121억원이 원금이 보장되는 초저위험 상품으로 운용 중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비해 고위험(1.37%)과 중위험(3.16%), 저위험(5.34%) 상품의 비중은 초라한 수준이다.

사업자별 적립규모는 신한은행(2조5122억원), 국민은행(2조4064억원), IBK기업은행(1조4640억원), NH농협은행(1조4410억원), KEB하나은행(1조3704억원) 등 1~5위 모두 은행이 포진했다.

적립금액 상위 1~5위 상품 역시 은행에서 운용하는 초저위험 포트폴리오였다. 이 중 적립금액 규모가 가장 큰 '신한은행 디폴트옵션 초저위험 포트폴리오'의 경우 적립금 2조3600억원이 몰렸지만 연초 이후 수익률은 0.83%에 불과했다.

◇수익률은 높지만, 돈은 안 모이는 증권사= 반면 증권사의 경우 높은 수익률에도 불구하고 은행과 보험사에 밀려 디폴트옵션 시장에서 입지가 작아지고 있는 모습이다.

연초 이후 수익률 상위 종목 1~5위는 모두 고위험 상품으로, 수익률 1위 '한국투자증권디폴트옵션고위험BF1'의 수익률은 11.62% 였지만 적립금은 39억원 수준이다.

증권사 중 적립규모가 가장 큰 미래에셋증권(1373억원)은 근로복지공단(9592억원), 우리은행(8066억원), 삼성생명보험(2564억원), 광주은행(2129억원), 부산은행(1493억원)에 밀려 적립금 규모 순위가 11위에 그쳤다.

디폴트옵션 도입 한 달(8월 12일)과 지난해 말 기준 미래에셋증권의 적립금 규모가 각각 415억원, 773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적립금 자체는 증가세다. 하지만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8월 6위에서 같은 해 말 10위로 말려났고 올 들어선 10위마저 내줬다.

삼성증권(910억원), 한국투자증권(644억원) 정도가 각각 14위와 17위로 그나마 10위권에 이름을 올렸고 NH투자증권(273억원), 신한투자증권(257억원), KB증권(231억원) 등 대부분의 증권사는 20위권에도 들지 못했다.

◇업계 "제도 설계 자체에 문제" = 업계에서는 원리금보장 상품을 디폴트옵션 적격상품으로 포함한 것 자체가 도입 취지에서 벗어난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디폴트옵션 제도 성공을 위한 가장 큰 유인은 결국 높은 운용 수익률인데, 원리금보장상품에 적립금이 쏠려 있으면 수익률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되면 퇴직연금 투자자 입장에서도 일반 은행 예금과의 차별점을 체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미국, 호주 등 연금 선진국은 애초에 원리금보장상품이 옵션으로 들어가 있지 않다. 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원리금보장상품을 편입할 수 있게 한 일본은 디폴트옵션 도입 실패 사례로 남았다.

일본은 디폴트옵션을 도입하기 전인 2014년 96.1%였던 원리금보장형 상품 비율이 디폴트옵션을 도입 이후 2018년 76.3%, 그 다음해엔 76.0%를 기록하면서 여전히 높은 비중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상 제도 도입이 무색해진 셈이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펀드·연금실장은 "디폴트옵션에서의 원리금보장 상품 비중이 일반 퇴직연금 내 원리금보장 상품 비중보다 높은 기형적 형태"라며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또는 원리금보장 상품을 적격 상품에서 제외하거나 제약을 두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도 개선이 아니라면 장기적으로 디폴트옵션 내 실적배당형 상품의 운용 성과가 퇴직연금 투자자들에게 장기적으로 신뢰를 쌓아 자연스럽게 자금이 이동하거나 투자자 교육을 강화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는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하연기자 summer@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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