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 해준다”는 은행에 “180명 고발”로 맞수…길어지는 ‘홍콩 ELS’ 사태

황경주 2024. 4. 24.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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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ELS' 배상이 원활히 이뤄져 법적 다툼 등 사회경제적 비용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11일 '홍콩 ELS' 배상안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개인의 투자책임원칙을 훼손하고 금융당국이 지나치게 개입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판매사-가입자 갈등을 빨리 해소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취지였습니다.
배상안 발표로부터 한 달 넘게 지난 오늘(24일) '홍콩 ELS' 가입자들은 금감원 앞에서 "관련자 180명을 고발한다"고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배상안 의도와는 달리 갈등은 '현재진행형'입니다.


■ "180명, 자본시장법·금소법 등 위반 혐의"…전 금융위원장까지 포함

'홍콩ELS사태피해자모임'과 시민단체들은 법인 18곳과 개인 162명을 고발했습니다.

법인에는 KB, 신한, 하나, 농협 등 4개 은행그룹과 삼성증권,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이 포함됐습니다. 이 회사들의 임원들, 사외이사들은 물론, 은성수 전 금융위원장과 윤석현, 정은보 전 금감원장들까지 피고발인 명단에 올랐습니다.

"금융사들이 '홍콩 ELS'를 불법 판매하며 수익을 올리는 동안 금융당국은 이를 방치한 책임이 있다"는 이유입니다.

윤영대 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는 "일단 감독 책임이 있는 금융감독원에 진정 차원의 고발장을 접수했다"며, "추후 검찰 고발도 진행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홍콩ELS사태피해자모임’과 시민단체들이 오늘(24일) 금감원 민원실에 고발장을 접수하고 있다.


■ 판매 계좌 약 40만개인데…극소수만 합의

'180명 무더기 고발'에 이르기까지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이겠다는 금감원 배상안은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지난 22일 기준, 5대 은행 가운데 금감원 배상안에 따라 배상이 이뤄진 사례는 우리은행 18건, 신한은행 약 10건이 전부입니다. 하나은행도 일부 배상 사례가 있다고 밝혔지만, 정확한 수치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NH농협은행은 여전히 고객별 배상 수준을 내부적으로 논의하는 단계입니다.

관건은 '홍콩 ELS' 판매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KB국민은행입니다.

KB는 '자율배상협의체'를 구성하고 금감원 배상안에 따라 고객별로 배상 수준을 제시하고 있는데, 지난주 10명 내외 투자자와 합의하고 배상금을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홍콩 ELS' 판매 계좌는 약 39만 6,000개, 액수로는 18조 8,000억 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배상 사례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이 제시하는 배상 비율은 (고객 예상보다) 훨씬 적은 수준이다 보니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분위기"라고 전했습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금감원 배상안에서는) 최대 100%까지 받을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완벽한 불완전 판매만 가능하다"며, "대략적으로 배상 범위는 20~40% 수준이라, 투자자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배상이 지지부진한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 "돈 받아가라"는 은행들…왜?

돈 잃은 가입자보다 돈 줘야 하는 은행이 배상에 더 적극적이라는 얘긴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금감원은 지난 21일 '홍콩 ELS' 판매사 11곳(은행 5곳·증권사 6곳)에 검사의견서를 보내고 제재 절차를 개시했습니다. 이르면 다음 달 금감원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수위를 논의한 뒤, 금융위원회가 최종적으로 확정합니다.

앞서 금감원은 판매사가 먼저 자율배상 등 사적화해를 위해 노력하면, 제재를 경감하는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은행들이 금감원 배상안을 빠르게 받아들여 자율배상 절차에 돌입한 만큼 인적 제재 수위가 CEO까지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 울며 배상안 받기냐, 지리한 소송전이냐

금감원 배상안 발표 이후 ELS 가입자들의 선택지는 오히려 더 좁아지는 분위기입니다.

은행 배상안은 납득할 수 없는데, 남은 방법은 금감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하거나 민사 소송 절차를 밟는 것뿐입니다.

애초에 금감원이 제시한 배상기준에 따른 배상안인 만큼, 금감원 분조위에서 크게 다른 결과가 나오기는 어렵습니다.

개별 금융 소비자가 금융그룹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하기에는 비용과 시간 부담이 큽니다.

한 은행 관계자는 "홍콩 ELS는 수백만 원부터 가입할 수 있는데, 이런 개별 소비자들이 긴 소송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은행들 무지성 면피한다" 꾸짖더니…배상안에는 '자기책임원칙'

금감원은 '홍콩 ELS' 사태 해결에 시작부터 적극적이었습니다.

투자자 손실이 확정되기 이전인 지난해 11월부터 판매사 현장 조사를 시작해, 석 달가량 강도 높은 검사를 이어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금융 소비자 보호' 강조하는 발언이 꾸준히 나왔습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현장조사 돌입 직후인 지난해 11월 "은행들이 소비자 피해 예방 조치가 마련됐다는 등 운운하며 자기 면피를 한다"고 일갈했습니다.

지난 1월 신년 기자간담회에서는 "투자를 자기 책임하에 했던 부분들에 대해 책임 져야 될 부분이 당연히 있다"고 하면서도, "상당히 부적절한 KPI 설정 등 (은행들이) 운영상 문제점이 드러난 마당에, 손실 분담과 책임소재가 연결돼 논의돼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올해 2월에는 "'홍콩 ELS' 재가입자라고 무조건 자기책임원칙이 있는 건 아니다. 소비자에게 적합한 상품을 팔라는 게 금소법의 정신"이라고 말했습니다.

가입자들 입장에서는 나서서 검사하고 '소비자 보호'를 강조하는 금감원의 배상안에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던 대목입니다

지난달 11일 이복현 금감원장이 ‘홍콩 ELS’ 배상안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배상안 '뚜껑'을 열어본 뒤 가입자들 분위기는 달라졌습니다.

금감원은 배상안을 발표하면서 "2019년 DLF 불완전판매 사태와 비교해 상품 특성, 소비자 환경 변화 등을 감안할 때 판매사 책임이 더 인정되긴 어렵다"며, "대부분 투자자가 20~60% 사이 배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원장은 모두발언을 통해 "억울하게 손실을 본 투자자가 합당한 보상을 받으면서도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마련했다"고 했습니다.


■ '배상안 철회' 국민동의청원까지…사태 장기화 수순

결국 '홍콩 ELS 사태피해자모임'은 지난 9일 배상안을 철회해 달라며 국민동의청원을 냈습니다.

오늘 오후 5시 20분 기준 21,896명이 동의한 상태로, 다음 달 9일까지 5만 명을 넘어서면 청원이 접수돼 소관위원회 등에 회부됩니다.

큰 기대를 모았던 금감원 배상안이 사태를 매듭짓지 못하면서, '홍콩 ELS' 갈등 해결은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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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주 기자 (rac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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