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변우석이라는 유죄인간에 갈수록 빠져들게 된 까닭('선재 업고 튀어')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4. 4. 24.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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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 업고 튀어’, 변우석에 갈수록 입덕하게 만드는 첫사랑 서사의 강력함

[엔터미디어=정덕현] "처음 본 날 소나기가 내렸어요. 그 애가 노란 우산을 씌워주면서 웃는데 숨을 못쉬겠더라고요. 떨려서. 꼭 숨쉬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라디오 방송에 나온 선재(변우석)가 첫사랑에 대해 이야기해달라는 DJ의 요청에 꺼내놓은 건 다름 아닌 임솔(김혜윤)에 대한 이야기다. "살아있어줘서 고맙다"고 했던 선재의 말 때문에, 사고로 걷지 못하게 되어 죽고 싶었던 마음을 돌렸던 임솔은 그 후로 선재에 대한 팬심으로 살아왔지만, 그가 한 이야기 속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걸 모른다.

이 지점은 tvN 월화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가 갈수록 과몰입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부분이다. 스타와 팬의 관계로서 죽음을 맞이한 스타를 어떻게든 살리고픈 간절한 팬의 마음이 판타지로 구현된 세계가 <선재 업고 튀어>라 여겨졌던 이야기는, 바로 이 지점을 통해 두 사람의 첫 만남부터 현재까지 이어져온 사랑의 서사로 바뀌기 때문이다. 15년 전으로 돌아가게 되는 타임리프 판타지 속에서 선재의 불행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임솔의 이야기는 그래서 저 선재가 라디오 방송을 통해 말했던 것처럼 첫 만남부터 임솔을 좋아했지만 끝내 마음이 전해지지 못했던 선재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그래서 <선재 업고 튀어>는 그저 최애를 살리려는 팬심의 이야기를 넘어서, 오래 전에 엇갈렸던 첫사랑의 서사로 확장된다. 15년의 간극은 두 사람의 엇갈림의 시간이 된다. 처음에는 선재가 임솔을 좋아했지만, 임솔이 그걸 알아채지 못했고, 훗날 임솔이 사고로 걷지 못하게 됐지만 그럼에도 살 수 있는 위로가 되어준 선재를 팬으로서 추앙하게 됐을 때는 두 사람 사이에 스타와 팬이라는 벽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선재는 15년 전부터 스타가 된 현재까지도 임솔을 좋아했었다. 라디오 통화로 병원에 있던 임솔과 선재가 전화통화를 한 것 역시 그저 우연이 아니라, 선재가 전화를 건 것이었으니.

임솔의 관점으로 이야기가 그려져 나가고 있지만, 서서히 드러나는 선재의 관점이 더해지면서 드라마의 몰입감은 더 강력해졌다. 팬심을 경험해본 마음으로 임솔에 과몰입하며 최애와 하고팠던 판타지를 대리 충족하는 즐거움에 빠졌던 시청자들은, 이제 거꾸로 최애인 선재가 애초부터 임솔을 좋아했었다는 사실을 접하며 내 일처럼 설레어하고 그 엇갈림을 안타까워하게 됐다.

게다가 임솔이 다리를 다치게 된 일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 의도적으로 저지른 사건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비극을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임솔과 그런 위기로부터 임솔을 구하려는 선재의 간절함 또한 더해지게 됐다. 과연 임솔과 선재의 이런 노력은 비극을 막을 수 있을까. 또 바꾸려는 노력이 만들어낸 엉뚱한 결과가 이들에게 또다른 비극을 만들어내는 건 아닐까. 시청자들은 조바심을 내며 바라보게 됐다.

레전드 대만드라마 <상견니>를 애청했던 이른바 상친자들이라면 <선재 업고 튀어>가 이 작품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는 걸 실감할게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과거로 돌아가게 되는 주인공이 그렇고, 과거로 돌아가 새 인생을 설계하는 회귀물과는 달리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타임리프 설정도 그렇다. 또 범죄가 더해져 그 비극을 피하기 위해 애쓰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물론이고, 비오는 날 달려가는 임솔의 모습이나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김형중의 '그랬나봐' 같은 연출적인 요소 또한 <상견니>의 감성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선재 업고 튀어>가 <상견니>와는 다른 지점 역시 분명하다. 스타와 팬 사이를 더해 팬심에 대한 공감대를 넣었다는 점이나, 현재에서 과거로 가서 빙의되는 인물이 동일인물이고 그래서 가족서사도 더해졌다는 점 그리고 선재와 임솔의 첫사랑 서사 또한 그려지고 있는 점들이 그것이다. 이처럼 <선재 업고 튀어>는 스타와 팬으로 또 첫사랑으로 확장되어가는 사랑이야기를 <상견니>식의 타임리프 판타지 장치나 연출적 효과를 가져와 그려낸 작품이라 여겨진다.

그래서 <선재 업고 튀어>는 갈수록 선재와 임솔의 쌍방구원 판타지가 강력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처음에는 그저 저 멀리 손에 닿지 않지만 반짝이며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최애로만 보였지만,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임솔에 대한 애틋한 감정들을 드러내는 선재라는 인물에 대한 판타지는 갈수록 시청자들을 빠져들게 만든다. '좋아할 것도 아니면서 사람 설레게 한다'는 의미로 이른바 '유죄인간'이라 부른다던가. 선재라는 캐릭터와 이를 연기하는 변우석이 바로 그 유죄인간이 될 운명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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