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셜리스트’의 아스널, 계속 볼 수밖에 없던 이유

박강수 기자 2024. 4. 24.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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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수의 스포츠 인사이드]스포츠는 저마다 실패를 받아들이는 훈련의 장… 내 교관은 아르센 벵거였다
2023년 11월10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5회 크라이스트처치 콜 정상회담에 앞서 엘리제궁을 방문한 아르센 벵거 전 아스널 감독. 현재는 피파(FIFA)에서 글로벌 축구 개발부장을 맡고 있다. 파리/EPA 연합뉴스

‘스포츠를 보는 이유’에 대해서 누군가 물어올 경우를 대비해 오래전부터 이런 대답을 준비해뒀다.

“패배를 배우기 위해서 봅니다.”

결국 기억에 남는 건 진 경기

곰곰이 따져보면 이 문장은 난센스다. 마치 매 경기 시작 전 패배를 기대하며 중계 화면 앞에 앉는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그런 스포츠 팬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렇게 부연할 수 있다. 결국 남는 경기는 진 경기다. 기억의 심층부 가장 깊숙한 곳에는 패배의 추억이 새겨지기 마련이다. 그것은 기대가 배신당한 기억이고,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경험이다. 그 상흔을 이따금 곱씹으면서, 산다는 것은 실패를 반복하는 일이고 스포츠란 일종의 ‘실패 시뮬레이션’이라는 생각을, 그래서 한다. 스포츠 팬들은 저도 모르게 실패를 받아들이는 법을 훈련받는다.

내 교관은 아르센 벵거(74·프랑스)였다. 벵거는 1996년부터 2018년까지 22년 동안 잉글랜드의 프로축구팀 아스널 감독으로 재임했다. 그의 감독 커리어는 아스널 부임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고, 아스널이라는 구단의 역사도 벵거 부임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어쩌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역사를 벵거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고 해도 크게 시비가 걸리진 않을 것이다. 벵거는 보수적이고 고집 센 잉글랜드 축구계에 개방성과 혁신을 가져온 최초의 이방인이었고, 리그 역사상 가장 무결한 승리의 서사를 쓴 지도자였으며, 독보적인 ‘실패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실패자 오명을 촉발한 이는 물론 조제 무리뉴다. 2014년 당시 첼시 감독이던 무리뉴는 한 기자회견 자리에서 벵거를 가리켜 “실패 전문가”(Specialist in failure)라고 쏘아붙였다. 8년 넘게 단 한 개의 트로피도 따지 못한 채 매 시즌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 저격 요지였다. 이 발언이 있고 약 한 달 뒤 벵거는 아스널에서의 1천 번째 경기 상대로 무리뉴의 첼시를 맞이했는데, 그만 0-6 대패를 당하며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무리뉴가 던져놓은 낙인은 이후 한국에도 수입돼 ‘실패셜리스트’(실패+스페셜리스트)라는, 원어보다 찰진 조어로 가공돼 유통됐다.

아르센 벵거 감독이 2018년 5월6일 영국 런던 에미리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마지막 안방 경기에서 팬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런던/AP 연합뉴스

‘실패셜리스트’의 암흑기

전세계적인 조리돌림에 직면했던 이 시절은 에미라츠 시기다. 벵거가 아스널에서 보낸 세월은 경기장을 기준으로 크게 하이베리(1996∼2006)와 에미리츠(2006∼2018) 두 시기로 나뉘는데, 양쪽의 이미지는 사뭇 대조적이다. 하이베리가 가파른 오르막이었다면, 에미리츠는 완만한 내리막이었다. 에미리츠 경기장을 새로 지으면서 떠안은 채무에 구단은 긴축재정을 폈고, 벵거는 암흑기의 살림꾼을 도맡았다. 은행 대출을 갚고자 스타 선수를 떠나보냈고, 그 결과 대권에서 멀어졌다. 에미리츠에서 아스널은 리그 기준 4위를 다섯 번, 3위를 네 번, 준우승과 5·6위를 각각 한 번 기록했다.

벵거는 경기 결과보다 내용의 미학적 완성도를 중시하는 낭만주의적 면모로도 유명했기에, 어느덧 ‘실패셜리스트’라는 오명에는 ‘무능한 낭만주의자’라는 함의가 포섭됐다. 풀어 쓰면, ‘아르센 벵거는 이상을 좇다가 결과를 놓친 실패자’쯤 되겠다. 이제 와서 벵거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까지 박하게 깎아내릴 이는 많지 않겠으나, 몇 가지 오해는 풀어둘 필요가 있다. 적어도 벵거 본인이 회고하는 자신의 캐릭터는 지독한 승부사에 가까웠다. <아르센 벵거: 무패의 전설>(2021)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벵거는 자신을 “실용주의적 낭만주의”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한다.

“경기에 지고 나면 가끔 토를 했어요. 정말 많이 속상했으니까요. 패배하고 나면 늘 깨닫게 되죠. 이길 방법이 있었다는 걸요. 하지만 패배의 쓴맛은 사라지지 않아요.”

또 아스널에서 물러나고 2년 뒤 펴낸 <아르센 벵거 자서전>(2020)에서는 이렇게 적었다.

“세상을 떠난 후 신이 ‘사는 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면, ‘축구 경기에서 이기려고 노력했다’고 답할 것이다. ‘그게 다야?’라고 실망한 그가 물어오면, 나는 경기에서 이기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며, 축구는 많은 사람이 함께 공유하고 기뻐하며 때로는 슬퍼하는 아주 중요한 무언가라고 설명할 것이다.”

미켈 아르테타 아스널 감독이 2024년 4월14일 영국 런던 에미리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애스턴빌라와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아스널은 이날 0-2로 패하며 리그 2위로 내려앉았다. 런던/AP 연합뉴스

가망 없어도 계속 볼 운명일세

벵거는 2022년 프리미어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1990∼2000년대 시대를 양분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앨릭스 퍼거슨과 함께 첫 감독 헌액자로 이름을 올렸다. 모르긴 몰라도 만장일치였을 것이다. 벵거가 아스널에서 스스로 물러날 뜻을 밝혔던 2018년, 몇 년째 ‘벵거 아웃’(벵거 물러나라)을 외치던 아스널 팬들은 ‘메르시, 아르센’(고마워요, 아르센)으로 구호를 바꿔 들고나왔다. 둘 다 진심처럼 보였다. 내 식대로 이해하면 ‘벵거 아웃’은 ‘당신 때문에 아스널 축구를 보게 됐다’는 원망이고, ‘메르시, 아르센’은 ‘당신 덕분에 아스널 축구를 봤고, 앞으로도 볼 것’이라는 감사다. 둘은 한목소리였다.

아스널은 벵거가 ‘무패 우승’을 일군 2004년 이후 19년째 리그에서 트로피를 들지 못했다. 이 중 14년은 벵거 몫이고, 나머지는 후임자들 몫이다. 현 감독은 벵거 시절 팀의 주장을 역임했던 미켈 아르테타로, 벵거가 자서전에서 “아스널의 영혼을 되살릴 수 있는 감독”이라고 평한 인물이다. 아르테타 체제의 아스널은 실제 우승경쟁 팀으로 발돋움했다. 원고를 쓰고 있는 2024년 4월17일 기준 맨체스터시티에 승점 2점 차 뒤진 2위인데, 엄밀히 말해 비관론이 지배적이다. 시즌 막바지에 맨체스터시티를 따라잡는 일은 그간의 경험칙에 비춰볼 때 가망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 글이 나갈 때쯤이면 한두 라운드가 더 진행됐을 것이고,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을지는 알 수 없다. 낙담도 안심도 섣부른 이 시점에, 불안에 떨고 있을 ‘구너’(Gooner, 아스널 팬덤을 일컫는 말)들이 합의할 수 있는 진실은 하나다. 어쨌거나, 축구는 계속 본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박강수 <한겨레> 기자 turner@hani.co.kr

*스포츠 인(人)사이드는 동서고금 스포츠 선수 관찰기로 4주마다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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