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칼질로 피폐해진 과학·문화계의 민생도 챙겨야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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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끝났다.
22대 국회는 거시적 경제지표만 살필 것이 아니라 2024년 느닷없는 예산 삭감과 사업 중단으로 생태계 파괴의 위기에 직면한 분야의 민생을 살릴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추가경정예산 편성으로 사라진 사업들을 복원하여 과학계와 문화계의 생태계 붕괴를 막는 것을 22대 국회가 챙겨야 할 민생의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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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원경 |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선거가 끝났다. 총선에서 민생이 화두가 되었고, 선거 후 민생 챙기기를 우선으로 하겠다는 다짐이 이어지고 있음은 반가운 일로 22대 국회에 큰 기대를 걸게 된다. 하지만 실제 뭘 챙기겠다는 건지, 구체적 얘기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혹여라도 장바구니 물가가 민생의 전부인 걸로 생각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이 글을 쓴다.
지난해 정부는 느닷없이 2024년 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삭감하였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조차 연구개발 예산은 감액하지 않고 꾸준히 증가시켜온 것이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믿어 온 연구자들로서는 실험실 살림을 어찌 꾸려갈까도 걱정이지만 왜 이런 삭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기에 더욱 고통스러웠다. 대통령이 과학계 카르텔을 언급하기도 했지만, 카르텔이 존재하는지, 존재한다 하더라도 어떻게 예산 삭감으로 카르텔을 없앤다는 건지에 대해서는 끝내 아무런 설명도 들을 수 없었다.
더욱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실제 삭감된 내역이다. 연구개발 사업이 워낙 다양하여 필자가 전부를 파악하지는 못하지만 모든 연구자가 지원할 수 있는 기초연구 사업의 경우를 보면 우수 연구자들을 위한 연구비는 증액시킨 반면, 연 5천만원 안팎의 소액 사업들을 일거에 폐지시켜 버렸다. 집중과 선택이라는 낡은 잣대로 예산 칼질을 한 것이다. 그 결과,연구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해 온 기본연구 사업, 소외 학문 분야와 지역 중심 연구를 장려하기 위한 학문균형발전 사업, 박사후 연구원과 비전임 연구자의 인건비를 지원하는 창의도전연구 사업의 신규 지원이 아예 불가능하게 되었다.이들 사업이야말로 연구자들에게 민생이라 할 수 있는 사업이고, 이들 사업을 중단시킴으로 해서얻을것은 카르텔 혁파도 연구 효율화도 아니고 연구 생태계의 파괴일 뿐이다.
기사를 보면, 올해 정부 예산 삭감의 칼날을 피하지 못한 곳은 과학기술 연구 현장만은 아닌 것 같다. 문화계와 출판계에서도 건전하고 다양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해 오던, 소액으로 지원하는 사업들이 사라졌다. 예를 들어 동네책방에서 북토크, 독서모임 등을 열며 지역사회의 문화적 구심 역할을 해 오던 지역서점 문화활동 지원사업도 불가능하게 되었단다. 이렇듯, 각 분야에서 민생이라 할 사업들에 칼날을 들이대 단번에 없애버린 결정은 과연 누가 어떤 목적으로 한 걸까?
22대 국회는 거시적 경제지표만 살필 것이 아니라 2024년 느닷없는 예산 삭감과 사업 중단으로 생태계 파괴의 위기에 직면한 분야의 민생을 살릴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계는 올해의 한파로 생태계의 저변을 담당하던 연구원들이 일터를 떠나고 문을 닫는 연구실들이 늘어나는 것을 제일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내년도 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증액할 계획이라고 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삭감으로 이미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깨진 상태에서 그 계획을 믿고 버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설사 2025년 대폭 증액이 현실화된다 하더라도 이미 사람이 떠나 문을 닫은 실험실을 되살리기는 어려울 것인바, 무너진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 어느 만큼의 예산과 시간이 필요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출판·문화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짐작한다. 그러니 무너지는 걸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추가경정예산 편성으로 사라진 사업들을 복원하여 과학계와 문화계의 생태계 붕괴를 막는 것을 22대 국회가 챙겨야 할 민생의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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