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22대 국회에 바라는 제언
22대 국회가 목전이다. 하지만 각 상임위 위원을 구성하고 위원장 선출 등을 거치면 본격적인 국회는 늦여름에나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21대 국회는 오는 5월 29일 회기마감 이전에 현안들을 처리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들을 소프트웨어(SW)산업 중심으로 살펴보면, 소프트웨어진흥법이 16건, 인공지능(AI)산업 관련법이 13건, 데이터산업 관련법이 12건, 메타버스 관련법이 5건 발의됐다. 이중 데이터산업법(데이터 산업진흥 및 이용촉진에 관한 기본법)과 메타버스산업법(가상융합산업 진흥법)이 공포돼 디지털경제 근간을 위한 산업 기본법이 마련됐다.
그러나 세계 경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AI 기술 관련법은 아직 본회의조차 상정되지 못한 상황이다. 지난 2월 개최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법안소위에서 7건의 AI 관련 법안을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고 위원회안으로 대안을 제안하기로 합의했으나 아직까지 발의되지 못했다. AI 기술력 확보를 위한 법안은 21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것이 아니다. 이미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알파고'가 준 충격으로 AI 관련법이 발의되었으나 임기만료 폐기됐다. 이번 회기에도 기본법이 통과되지 못한다면 8년을 버리는 셈이다.
AI산업 패권국인 미국은 이미 2020년 '국가 AI 이니셔티브법'을 제정하고 22년에만 AI분야에 17억달러의 예산을 투입해왔다. 또 유럽연합(EU)은 세계최초 AI규제 법안을 승인하고 2025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국내 기업들이 EU에 소속되지 않더라도 3500만유로(약 5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어 사전대응이 시급하다. 이에 정부에서도 범정부 차원의 'AI 전략 최고위협의회'를 출범, AI G3(3대 강국) 도약을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지만 본격적인 정책을 위해서는 기본법부터 마련돼야 한다.
SW 기업 육성을 위한 기본법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치 AI 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처럼 사회, 경제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인프라를 만들고 SW 기반 기술을 발전시키는 디지털 촉진의 매개체는 SW 기업이다. 잔여 임기가 머지 않은 제21대 국회와 앞으로 다가올 제22대 국회에 바라는 점도 디지털 촉진의 매개체인 SW 기업 육성을 위한 예산 수립 및 사업 관리 등 관련 기본법에 대한 개정 사항이다.
디지털 전환을 견인하는 시장으로 공공 SW 분야를 살펴보면 아직은 디지털 강국을 향한 길이 요원하기만 하다. SW 사업에서 예산 문제 및 열악한 거래 환경으로 인해 SW 전문기업 육성과 전문인력 양성이라는 취지는 퇴색하고 연이은 품질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최근 들어 공공 SW 사업에서 오작동 사례가 더욱 빈번해지며 정부에서도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정부 대책에 힘을 싣기 위해서는 변동성 있는 SW 사업의 특성을 감안한 적정 예산의 편성과 유연한 사업 관리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제22대 국회에 바라는 법제도 개선 포인트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 SW 사업 예산은 개발규모의 총량에 의해 결정되므로 입찰 단계에서 발주기관만 알고 있는 개발규모를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개발규모의 변경 여부를 결정하는 기본설계가 완료되면 제3의 기구인 과업심의위원회를 통해 조정 역할을 담당하게 함으로써 변경에 따른 발주기관 책임을 덜게 한다. 세 번째, 과업 조정에 따라 수반되는 예산 또는 과업 조정이 원활해 질 수 있도록 국가 계약 또는 조달 관련 법제도의 정비가 이어져야 한다.
이런 제언을 뒷받침하기 위해 건설업의 사업 구조를 살펴보자. 건축물 등을 짓는 건설 공사의 경우, 건물 구조를 파악하기 위한 설계도면을 비롯하여 도면에서 표현하지 못한 투입 재료의 종류와 품질 등 각종 사항을 시방서에 담아 입찰에 부친다. 발주자와 사업자가 같은 선상의 과업 베이스라인을 토대로 계약을 시작하는 것이다. 반면, SW 사업은 발주기관만 알고 있는 개발규모 산출 내역을 사업자는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계약을 맺게 되며, 이후 설계를 마친 후에야 비로소 파악하게 된다. 건설업에 비유하면 SW 사업은 정량적 시방서 대신 제안요청서의 요구사항이라는 정성적 도면만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므로 발주기관의 베이스라인과 사업자의 베이스라인이 서로 다른 시점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불합리한 관행에도 변화의 바람이 감지되었다. 올해 초 한 SW 기업이 승소한 법원 판결을 보면, 재판부는 국가계약법 용역계약일반조건에 명시된 기본업무를 당초 용역 대금을 결정한 요소인 SW 개발규모(기능점수)로 인정했다. 통상 발주기관에서는 과업내용서인 제안요청서에 명시된 요구사항을 기본업무로 간주하지만 이번 판결에서는 추가된 개발규모를 발주기관의 부당이익으로 간주해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사업자에게 반환하도록 판결했다.
이러한 변화에 따른 향후의 방향을 조심스럽게 예상하면, 사업 규모를 초기에 확정짓기 어려운 SW 사업 특성을 반영해 사업 규모에 따른 적절한 예산 산정과 규모 변경에 대한 판단기준 마련, 조정 절차 마련 등이 제22대 국회에서 다루어질 주요 법제도 개정의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촉진 및 SW 산업 진흥이라는 취지를 담아 국회와 정부, 업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치열하게 머리를 맞대면 최근 연이어 발생되고 있는 공공 SW 사업의 품질 문제는 상당 부분 개선될 것이다.
SW 유관 기본법 개정은 뒤늦게 산업이 조성되어 아직까지 법제도가 미비한 SW 산업이 디지털 전환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메인스트림의 산업으로 기반을 다지기 위한 교두보가 될 것이며, 디지털 전환 촉진의 매개체인 SW 기업들이 활약하게 되는 초석이 되리라 믿는다.
21대 국회에서는 역대 국회 중 가장 많은 법안이 발의됐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발의된 2만6000여건 법안 중 60% 이상이 계류 중이다. 5월 임시국회에서 여러 민생 현안과 쟁점 법안들이 화두에 오를 것으로 예상 된다. 대한민국 디지털 경제를 견인할 SW산업 법안들도 마지막까지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기를 바란다.
조준희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 jhjoh@sw.or.kr
〈필자〉2001년 유라클을 창업해 23년 동안 대표이사직을 수행하고 있는 소프트웨어(SW) 기업가다. 2021년 2월 법정단체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제18대 회장으로 취임, 올해 2월 19대 회장으로 연임하며 SW산업 발전과 생태계 개선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또, 벤처기업협회 수석부회장, 재단법인 이노베이션아카데미 사외이사로 있다. 재작년 9월 대통령직속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산업생태계분과위원장직을 맡은데 이어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한국공학한림원 회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부회장, 국무총리실산하 데이터기반행정활성화위원회 위원으로도 위촉돼 SW와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발전을 위한 정책 수립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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