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디아스포라 [이명석의 어차피 혼잔데]

한겨레 2024. 4. 24.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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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디아스포라, 베네딕토 수도원과 미군부대 사이의 피정센터 ‘경계 위의 집’. 사진 이명석

이명석 | 문화비평가

오랜만에 고향 가는 경부선 기차를 탔다. “노스탤지어의 여행인가요?” 누군가 묻는다면 이렇게 답해야 한다. “아니오. 디아스포라의 여행입니다.” 기차가 고향에 가까워질수록, 나는 고향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처럼 느꼈다. 가장 최근에 들은 고향 소식은,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는 이승만 동상을 가져와 전적지에 세웠다는 거였다. 어릴 적 가족이 농사 짓던 참외밭이 근처의 다른 전적지 옆에 있었다. 전두환 대통령이 온다고 아스팔트를 전적지 앞까지만 깔았던 기억이 난다.

“니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데이.” 참외밭 옆 원두막에서 막걸리를 걸친 어른들이 놀리곤 했다. 어른들 말을 안 들으면 집에서 쫓아낸다는 협박이었다. 고향에는 한국전쟁 때 폭파된 인도교가 있어 이야기를 꾸미기도 좋았다. 하지만 꼬마는 몰래 웃었다. 논두렁에서 잡은 개구리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역시, 나는 엉뚱한 곳으로 잘못 굴러왔나 봐. 내 진짜 고향은 여기가 아니야.”

어른이 되자 깨달았다. 그런 사악한 생각을 했던 게 나만은 아니었구나. 만화 동호회에서 ‘바벨 2세’ ‘별빛 속에’를 두고 토론하다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겉보기엔 어린 독자들을 흥분시키는 건 주인공의 초능력이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을 자극하는 더 근본적인 욕망이 있다. 평범한 가족 밑에 살고 있는 자신이 사실은 외계에서 온 존재일지 모른다는 상상. 자신과 친족의 성향이 너무나 다르고, 동향의 친구들과도 쉽게 마음을 나누지 못할 때 그런 마음을 품는다.

나는 진학을 핑계로 도시로 떠났고, 어딘가 완전한 소속감을 얻을 곳이 있을까 두리번거렸다. 대학에서 밤새 책을 읽으며 토론하고, 만화에 빠진 친구들과 중고 서점을 뒤지고, 지구 반대편의 길거리에서 춤을 추며 그런 순간을 만났다. 여기가 내 고향이야, 난 여기서 태어났어야 해. 그러나 실향민들의 축제는 폭죽처럼 터졌다 연기처럼 사라지곤 했다. 그래서 디아스포라다.

“태어나 보니 나는 외계인이었어.” 기성세대를 회의하고 부정하며, 자신을 억압하는 세계로부터 달아나려 하는 건 모든 젊은 세대의 본성이다. 그런데 그들을 돌아오게 할 신축성을 가진 공동체가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 내가 자란 지역은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달아난 아이들, 특히 집안의 막내들이 문화계 여기저기에서 일하고 있다는 풍문을 들어왔다. 반공의 헬멧을 쓴 유교 가부장의 잔소리에 질려 버린 아이들은 영화, 만화, 사진 같은 데로 달아날 수밖에 없었나 보다. 퇴로가 없으니 더 멀리 달아났을 거다.

고향역에 내려 철길 위 육교에 올라갔다. 거기에 서면 진짜 거대한 두 개의 디아스포라를 볼 수 있다. 하나는 읍의 대부분을 차지한 미군부대인데, 지금도 무시무시한 군용차들이 북으로 실려 가기 위해 도열해 있었다. 또 하나는 그 옆에 뾰족 솟은 성당. 원래 북한의 원산에 있다 소련군의 박해와 한국전쟁을 피해 남으로 터전을 옮긴 베네딕토 수도원이다. 엄혹한 유신 시대에 가난한 삶을 추적한 최민식의 사진집 ‘인간’ 시리즈와 구스타보 구띠에레즈의 ‘해방신학’을 펴낸 출판사가 저 안에 있다. 둘이 70년 넘게 등을 맞대고 살아왔다니 놀라운 아이러니다.

미군부대 담벼락을 지나면 피정센터 ‘경계 위의 집’이 나온다. 사진 이명석

수도원을 구경하려고 미군부대 담벼락을 지나자 낯설고 특이한 건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여기 이런 게 있었던가? 어리둥절해 있는데, 옆에 선 자동차에서 낯익은 얼굴이 내렸다. 유명 건축가로 보이는 분이 가족들에게 건물을 소개하는 듯했다. 인사를 드리기엔 멋쩍어 성당으로 걸어간 뒤에야 확인했다. 낯선 건물은 승효상이 지은 피정센터 ‘경계 위의 집’이었다.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경계 위를 걷는 데 익숙한 발길을 읍내로 돌렸다. 세련된 햄버거 가게엔 옛날처럼 미군 신병들이 떠들고 있었지만, 오일장이 열린 시장 길은 새로운 이국의 얼굴들이 채우고 있었다. 인근 공단과 과수원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 결혼이주여성과 그 아이들이었다. 나는 그들 속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꼈다.

우리는 디아스포라가 당연한 세상에서 가끔 무리 짓고 가끔 흩어지는 존재들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며 타향의, 다른 종교의, 다른 취향의 사람들을 배척하는 일은 참으로 어리석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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