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째 저출생’ 한국이 묻는다 “1억 드리면 아이 낳으시겠습니까” [복지의 조건]
2007년 제17대 대통령선거에서 비슷한 공약이 나왔을 땐 재밌는 상상 정도로 취급됐죠. 이제는 이 질문이 정부의 공식 설문에 등장했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벌이는 온라인 설문입니다. 부영그룹이 직원들에 출산 장려금 1억 원씩 지급하기로 한 것처럼, 정부도 파격적인 현금을 직접 지원하면 아이를 낳겠냐고 물은 겁니다. 설문을 이달 17일부터 26일까지 진행하는데 24일 오후 4시 현재까지 1만 명이 넘게 참여해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 ‘출생아에 1억 원씩’ 가능한가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안이냐고 물으신다면, ‘재정만 따지면 불가능하진 않다’고 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보다 출산율이 높은 나라가 이미 국가 재정에서 그만한 비중을 가족복지에 쓰고 있거든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0년 국내 가족복지 공공사회 지출은 30조253억 원이었습니다. 아동수당과 출산휴가 지원금, 어린이집 보육료 등이 여기 포함됩니다.
이 돈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6%였습니다. 직감하셨겠지만 이 비율이 다른 OECD 회원국보다 상당히 낮습니다. 38개국 중 뒤에서 8번째입니다. 잘못 읽으신 게 아닙니다. ‘앞에서’가 아니라 ‘뒤에서’입니다. OECD 평균은 2.1%였습니다. 어리둥절하실 수 있습니다. 정부가 저출생 극복을 위해 300조 원을 넘게 투입했다는데 OECD 평균만도 못한다니요. 그 돈은 다 어디 갔을까요. 적잖은 돈이 ‘흉내 내기’였습니다.
(동아일보 5월 24일자 「학교 현대화-성범죄 피해지원도 ‘저출산정책’이라니…」 참고 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230524/119446250/1)
주목할 점은 한국보다 합계출산율이 높은 나라들이 더 많은 재정 비중을 가족복지에 쓰고 있다는 겁니다. 이 비중이 OECD 1위인 스웨덴은 합계출산율이 1.7명(2020년 기준)입니다. 같은 해 한국(0.8명)의 2배 수준입니다. 스웨덴은 그해 GDP의 3.4%를 가족복지에 썼습니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에 대입하면 스웨덴은 64조2876억 원을 가족복지에 쓴 셈입니다. 그해 한국의 관련 지출보다 34조2623억 원이 더 많았던 거죠. 우리나라가 그해 출생아 27만2337명에게 전부 1억 원씩 줬어도, 출산율이 한국의 2배 수준인 스웨덴의 관련 예산에도 못 미쳤을 거란 뜻입니다.
물론 이건 재정 측면에서만 분석한 겁니다. 출생아 1명당 1억 원을 주면 아이를 제대로 키울 생각이 없는 남녀가 돈만 노리고 출산하는 등 부작용이 쏟아지겠죠. 이를 보완하려면 단번에 큰돈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다달이 나눠주는 기존 아동수당 등의 액수를 올리면서 수급 조건에 아동학대 예방 교육 수료 등을 붙여야 할 겁니다.
출생아 1명당 2870만 원을 주는 데 드는 총액은 지난해 출생아 23만 명 기준으로 7조 원 안팎입니다. 적은 돈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예 논의조차 못 할 규모인지는 의문입니다. 지금은 국가 소멸까지 거론되는 상황 아닌가요.
● 22년째 ‘저출생 무력감’ 차곡차곡 쌓아온 한국
24일 통계청이 올해 2월치 출생아 수를 발표했습니다. 지난해 2월(2만20명)보다 더 줄어서 1만9362명이 태어났습니다. 2019년 11월 이후 52개월 연속 감소입니다. 충격받으셨나요? 충격받지 않은 분들이 더 많을 거라는 데 제가 나중에 받을 한 달 치 국민연금을 걸겠습니다.
한국은 이 기준에 따르면 22년째 초저출산국입니다. 위기를 느끼는 감각이 마비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해 12월 미국 뉴욕타임스의 한 칼럼은 “14세기 흑사병 때보다 심각하다”고 했습니다. 올 2월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단순한 대책으로는 대응이 어렵다”고 경고했습니다. 만국이 ‘우리는 한국처럼 되지 말자’며 각오를 다지는데 정작 당사자인 한국만 태평합니다.
(동아일보 4월 22일자 「이왕 이렇게 된 거, ‘출산율 0명’에 도전해보자」 참고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40421/124584219/1)
인구학자들은 실제로 출산율 0.65명이 1.0명보다는 0명에 더 가까운 수치라고 얘기합니다. 인구의 ‘복리’ 효과 때문입니다. 가임기 여성이 평생 2.1명을 낳으면 인구가 유지되죠. 평생 0.65명이면 신생아가 3분의 1로 줄어들 것 같지만 실제론 두 세대 후에는 10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아이 중 절반 정도는 아들이고 절반만 나중에 ‘가임기 여성’이 될 거라서 그렇습니다.
● 이민과 AI가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간혹 저출생을 이민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인공지능(AI)이 발전해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기 때문에 지금처럼 생산가능인구가 많지 않아도 된다는 예측도 있습니다. 한국은 인구 밀도가 너무 높으니 사람이 좀 줄어도 괜찮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저는 이런 주장과 예측이 모두 들어맞아서 미래 한국이 아무 문제 없이 굴러가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하지만 이 점을 고려해봅시다. 이민에 가장 열려있던 나라들이 최근 이민으로 인해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를요. 한국의 사회문화는 이민에 열려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런 나라가 앞으로 수십 년간 전 세계 어디서도 겪은 적 없는 속도로,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규모의 이민 인구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AI는 어떻습니까. 이민과 달리 AI가 어떤 사회적 문제를 초래할지 다른 나라의 선례를 참고할 수도 없습니다. 한국이 그 모든 부작용과 혼란을 가장 먼저 몸으로 부딪쳐야 하는 나라가 됩니다.
보통 ‘한국의 장래가 어둡다’고 할 때 노년 부양비를 대표적인 지표로 듭니다. 지금은 생산가능인구(15~64세) 4명당 노인 1명을 부양하지만, 약 40년 이후엔 일대일로 부양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쉽게 간과하는 게, 이런 암울한 예측마저 출산율이 1.09로 회복될 거란 희망적인 시나리오에 기대고 있다는 점입니다.
통계청은 장래인구추계(중위)에서 합계출산율이 2025년 0.65명으로 저점을 찍은 뒤 서서히 회복해 2049년부터 쭉 1.09명을 유지한다고 내다봤습니다. 최악을 가정한 저위 추계도 ‘2026년 0.59명으로 최저점 후 2044년부터 0.81명 유지’로, 지금보다 높은 출산율을 가정하고 있습니다.
지금 국민연금, 건강보험, 국방, 교육 등 모든 사회 체계의 장래 예측이 이 ‘1.09명’ 시나리오를 토대로 세워진 겁니다. 지금 우리가 그토록 우려하는 암울한 미래가, 기를 쓰고 출산율을 1.09명으로 회복해야 만날 수 있는 상황이라는 뜻입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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