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보다 더 무서운 기후위기…SF드라마로 만드니 현실감 있네

남지은 기자 2024. 4. 24.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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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을 달리던 소가 어느새 정육점 갈고리에 거꾸로 매달려 있다.

기후위기에 따른 재앙이 에스에프(SF)·재난 드라마의 핵심 소재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5일 공개된 넷플릭스 6부작 드라마 '기생수: 더 그레이'는 "인간이 절반으로 줄면 지구의 독도 줄까"라는 발상에서 기생 생물이 출몰한다.

26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12부작 드라마 '종말의 바보'는 2006년 원작 소설에서 소행성 충돌 3년 전이었던 배경을 200일 전으로 앞당겨 더 현실에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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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을 배경으로 배양육 상품에 성공한 기업을 둘러싼 이야기를 그린 ‘지배종’의 한 장면. 프로그램 갈무리
‘지배종’에서 배양육을 만드는 모습. 프로그램 갈무리

들판을 달리던 소가 어느새 정육점 갈고리에 거꾸로 매달려 있다. 동물을 죽이고 가죽을 벗기는 잔인한 영상이 한참 이어진다. 지난 10일 시작한 디즈니플러스(OTT) 10부작 드라마 ‘지배종’ 첫 장면이다. “지구 온난화 방지에 기여한다”는 생명과학 기업 비에프(BF)를 통해 처음으로 배양육 문제를 등장시킨 한국 드라마다. 이 드라마를 집필한 이수연 작가는 “동물 안 잡아먹어도 되고 식량 생산 위해 숲을 밀어버리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배양육 소재를 택했다”고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밝혔다.

기후위기에 따른 재앙이 에스에프(SF)·재난 드라마의 핵심 소재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기후위기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이 재난으로 이어지는 내용이 많다. 지난 5일 공개된 넷플릭스 6부작 드라마 ‘기생수: 더 그레이’는 “인간이 절반으로 줄면 지구의 독도 줄까”라는 발상에서 기생 생물이 출몰한다. 지난달 21일 공개된 넷플릭스 8부작 미국 드라마 ‘삼체’에서는 자구력을 상실한 인간을 구원할 미지의 존재가 도리어 지구를 멸망 위기에 몰아넣는다. 기후위기 대응 비영리단체인 기후솔루션의 오동재 연구원은 “기후변화의 피해를 경험하는 빈도가 매년 증가하면서 기후위기의 대안과 이것이 불러올 결과에 관심이 높아진 현실이 반영된 것 같다”고 했다.

넷플릭스 ‘기생수: 더 그레이’와 디즈니플러스 ‘지배종’은 모두 파괴되고 오염된 환경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사진은 그러면서 “인간이 절반으로 줄면 독도 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하는 ‘기생수: 더 그레이’의 한 장면. 프로그램 갈무리
넷플릭스 ‘기생수: 더 그레이’와 디즈니플러스 ‘지배종’은 모두 파괴되고 오염된 환경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사진은 ‘지배종’의 한 장면. 프로그램 갈무리

공상과학 영화 수준으로 여겨지던 기후 재앙이 눈앞에 닥친 문제로 인식되면서 재난 드라마의 주요 설정으로 등장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배종’은 2025년 배경으로 현실과 시차가 사실상 없다. 26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12부작 드라마 ‘종말의 바보’는 2006년 원작 소설에서 소행성 충돌 3년 전이었던 배경을 200일 전으로 앞당겨 더 현실에 다가왔다. 이수연 작가는 “지배종'도 매우 가까운 미래가 배경이다 보니 에스에프물이라기보다는 환경적 이상향 하나가 실현된 이후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좀비 등 가상의 존재가 등장했던 재난 드라마보다 현실감을 높이면 공포감이 더 배가되는 효과를 자아낸다.

최근 재난 드라마는 긴장과 공포를 자아내는 데 그치지 않고 존재론적 사유로 이끌어간다. 기후 재난의 책임이 인간에게 있음을 직관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을 통해서다. ‘기생수: 더 그레이’와 원작이 같은 일본 영화 ‘기생수’에서는 “너희(인간)도 살인보다 쓰레기 투기가 더 큰 죄라는 걸 언젠가 깨닫게 될 거”라며 인간을 지구 오염의 주범으로 직접 비판한다. ‘종말의 바보’ 정성주 작가는 “대재앙을 계기로 범람하는 문제는 그 모든 것을 별 탈 없이 살던 시절에 방조하고 묵인해온 대가가 아닐까”라고 넷플릭스를 통해 밝혔다.

기후위기의 현실적 대책이 부재한 상황에서 드라마에서 제시된 대안은 또 다른 위기를 야기하고 어떤 대안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장르는 크리처물이나 휴먼물 등으로 다변화한다. ‘지배종’은 배양육을 둘러싼 국가권력과 자본의 결탁, 그로 인해 희생되는 국민의 문제로 나아간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과거에는 기후문제를 과학기술의 발달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낙관론이 팽배했지만 이제는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며 드라마는 이 문제를 디스토피아 세계관으로 그리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넷플릭스 10부작 미국 애니메이션 ‘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자세’처럼 일상을 유지하며 종말을 기다리는 등 종말을 극 중 인물들의 태도도 달라지고 있다.

그러나 드라마가 기후위기를 통해 말하려는 것은 공존의 문제다. 드라마 속 재앙은 역설적으로 희망을 표현하는 셈이다. ‘기생수: 더 그레이’는 평범한 고등학생이 주인공인 원작과 달리 외롭게 사는 정 수인(전소니)을 내세워 인간과 모든 생명체의 공존을 도모한다. 이 드라마를 만든 연상호 감독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지금은 다양한 방법으로 커넥팅이 이뤄지는 시대다. 재난으로 고독한 순간을 보여주며 오히려 공존과 공생의 의미를 되짚으려 했다”고 말했다.

재난 드라마는 눈앞에 닥친 현실의 문제로 등장한다. 원작 소설과 달리 지구와 소행성의 충돌 200일 전이 배경인 ‘종말의 바보’. 넷플릭스 제공
인간과 모든 생물의 공존의 문제를 얘기하는 ‘기생수: 더 그레이’ 넷플릭스 제공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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