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연금개혁·의대증원 '과학적 근거'에서 '과학'은 어디?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2024. 4. 24.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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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2일 경기도 과천시 국립과천과학관 열린 2024 과학기술·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김용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에게 과학기술훈장 웅비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올해 들어서 윤석열 대통령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지난 1월에는 과학기술인·정보통신인 신년 인사회에 참석해서 국가연구개발 예산을 역대 최대로 증액하겠다고 약속했고 많이 늦기는 했지만 과학기술 수석도 임명했다.

22일에는 대통령으로는 2016년에 이어 8년 만에 과학기술·정보통신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 AI-반도체·첨단바이오·퀀텀 분야에 대한 집중 투자와 동맹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2030년 '과학기술 글로벌 3대 국가'의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의 과학기술에 대한 최근의 관심은 작년의 '카르텔' 발언에 이어서 국가연구개발 예산을 큰 폭으로 삭감했던 작년의 행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총선 직전에 시작한 의료 개혁을 핑계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주는 의사들을 '악마적 범죄집단'을 몰아붙였던 모습과도 상반된다. 이제 산업현장에서 땀 흘리는 이공계 출신 현장 과학기술자에 대한 대통령의 평가가 궁금한 상황이다.

1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의료개혁과 관련한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시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 과학에 대한 기묘한 관심

과학기술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은 정부 주도의 개혁에서도 유별나게 확인된다. 개혁은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나 사회적 합의 없이 결론적인 숫자만 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대통령의 확고한 국정 철학이라고 한다.

작년 10월에 내놓았던 국민연금 개혁안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통령이 직접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가들과 80여 차례 회의를 통해 '과학적 근거'를 축적했으며 24번의 계층별 심층 인터뷰를 통해 국민 의견을 경청하고 여론조사도 꼼꼼하게 실시했다”고 밝혔다.

현재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의료 개혁도 예외가 아니다. 4월 1일 담화를 통해서 대통령이 직접 의대 2000명 증원이 확실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도출된 것이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심지어 정부가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의사들에게 '과학적 근거와 합리적 논리에 기반한 통일된 대안'을 가져오라고 요구하고 있다. 의사단체들이 '중구난방으로 던지고 있는' 제안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개혁안에서만 '과학적 근거'를 강조하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논란에서도 처리·방류수의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정부 대책의 핵심이었다. 정부가 내놓았던 과학적 근거가 일본 정부가 강조하는 것과 똑같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에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의 중재안이 담긴 홍보물이 게시돼 있다. 연합뉴스 제공

● 설득력을 잃어버린 '짝퉁 과학'

보편성·객관성·정확성이 현대 과학의 최고 가치다. 이념·계층·세대·젠더에 따라 과학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보수의 과학'과 '진보의 과학'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전문가의 과학'과 '일반인의 과학'이 서로 다른 것도 아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동의하고, 수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과학이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갈등 상황에서 '과학적 근거'를 강조하는 것은 과학의 그런 특성 때문이다. 그런 과학적 근거가 사회적으로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과학적으로 마련했다는 국민연금 개혁안이 '숫자가 빠져버린 맹탕'이라고 비판을 받은 것은 역설적인 일이다.

물론 과학이 틀려서가 아니다. 과학을 자의적·임의적으로 해석하고 멋대로 취사 선택한 어설픈 '짝퉁 과학' 때문에 벌어지는 안타까운 일이다. 무엇이나 일방적으로 '과학적'이라고 우기면 설득력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의대 증원에 대한 과학적 근거도 충분히 제시했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실제로 대통령의 담화에는 2000명 증원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차고 넘친다. 인력 추계에 사용되는 통계적 모형을 기초로 인구구조·질병구조·의료 수요의 변화를 고려한 국책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2035년에는 최소 1만 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게 된다고 강조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사 수(11만5000명)는 영국(20만3000명)·프랑스(21만4000명)·독일(37만4000명)·일본(32만7000명)보다 턱없이 적을 뿐만 아니라 매년 배출하는 의사 수(3058명)도 영국(1만1000명)·프랑스(1만 명)·독일(1만127명)·일본(9384명)에 크게 뒤진다는 통계 자료도 제시했다. 지난 2년 동안 다양한 협의체를 통해 모두 37차례에 걸쳐 의사 증원 방안을 협의했다는 주장도 장황하게 소개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제시한 과학적 근거가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서울대·개발연구원·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는 의사가 부족해질 것이라는 예측이 전부였고 의대 정원을 한꺼번에 2000명이나 증원해야 한다는 결론은 찾아볼 수 없다.

의사가 부족하다는 분석과 의대 정원을 파격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정책 사이의 연결고리는 제시하지 못했다. 그런 보고서는 과학적인 것도 아니고 합리적인 것도 아니다. 과학적 분석의 결론은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고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의대 증원으로 의사의 수가 늘어나기까지는 10년 이상의 세월을 기다려야 하는 것도 과학적 근거의 설득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의대 증원으로는 당장 의료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응급실 뺑뺑이나 소아과 오픈런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대통령의 담화에서도 분명하게 밝힌 사실이다. 보건복지부가 총선 직전에 요란하게 내놓은 '필수의료정책 패키지'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의료멸망 패키지'라는 평가도 있는 형편이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의대 정원의 파격적인 증원의 부작용에 대한 현실적인 우려도 외면했다. 시설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대규모 증원은 어쩔 수 없이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지게 된다.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과학적 진실'이다. 

6년 후부터 쏟아져 나오는 의대 졸업생의 '수련 과정'을 맡아줄 수련병원의 혼란에 대한 우려도 찾아볼 수 없다. 3차 의료기관의 역할을 담당하는 100개 수련병원에는 이미 전공의·전임의가 차고 넘친다. 수련병원이 최저임금으로 주당 80시간 일하는 전공의에게 병원 운영에 필요한 수익을 의존하고 있는 현실은 명백한 '비정상'이다.

의대를 2000명이나 증원하면 그런 비정상은 더욱 악화할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수련병원의 기능이 통째로 마비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수련병원을 늘리는 일도 만만치 않다. 수도권은 이미 포화 상태이고 환자가 외면하는 지역에 수련병원을 세울 수도 없다. 당연히 사회적 비용도 감당하기 어렵다. 민생토론회에서 대통령이 약속한 지역 국립대 병원의 추가 건설 비용이 무려 7000억 원이나 된다.

도를 넘어서는 '의대 쏠림'을 무시한 것도 심각하다. 올해 의대 정시모집 합격자의 80%가 N수생이었다. 의대 증원으로 재학생의 이탈과 연쇄 이동은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이공계의 상황은 아무도 통제할 수 없게 될 것이다.

현실을 무시한 교육부의 정원 배분도 과학적 근거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대규모 증원이 예고된 지방 국립대는 시설도 없고 교수 인력도 없다. 국립대 의대 교수 1000명을 확대하겠다는 교육부의 주장은 비현실적인 공염불이다.

대학 입시 정책의 안정성을 위해 마련해 놓은 고등교육법 제34조 5(대학입학전형계획의 공고)를 무시해버린 것도 심각한 불법이고 탈법이다. 시행령의 규정을 핑계로 대학입시 예고제를 무력화시키는 것은 대통령이 강조하는 공정·상식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원점'에 갇힌 의정갈등. 연합뉴스 제공

● '원점 재검토'도 과학적 대안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은 “국민의 생명과 건강 보호라는 국가의 헌법적 책무를 이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수적 조치”라던 정부가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은밀한 꼼수로 알려진 '자율 조정'을 전광석화처럼 수용해 버렸다. 2000명이 '최소한의 필수적 조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해 버린 셈이다.

의대 증원의 규모가 '과학적 근거'가 아니라 '주먹구구식'으로 결정된 것이라는 의사단체의 지적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면 의사단체들이 주장하는 '원점 재검토'도 거부할 명분이 없다. 의대 증원이 의료현장의 현안 해결에 직접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일도 '과학적 근거'의 설득력을 위협한다. 2006년의 의대 정원 351명 감축은 의사들의 이기주의 때문이 아니었다. “의사가 과도하게 배출돼 의학교육이 부실해지고 의료 수준이 저하된다”는 것이 당시 정부가 밝힌 의대 정원 감축의 이유였다. 만약 당시에 의대 정원을 줄이지 않았더라면 수련병원의 인력 왜곡은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해졌을 수밖에 없다.

2020년의 공공의대 설립이 무산된 이유도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고 있던 당시 공공의대 논란의 핵심은 400명 증원이 아니었다. 오히려 '공공의대 졸업생의 10년 의무복무 규정'의 위헌성과 '운동권 자녀 특례입학 전형'의 불법성이 사회적 공분(公憤)을 불러일으켰던 것이 사실이었다. 인터넷 검색으로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명백한 진실이다.

전문성은 찾아볼 수 없고 의사에 대한 거부감만으로 똘똘 뭉친 보건복지부의 의료계 갈라치기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2000년의 의약분업을 시작으로 지난 20여 년 동안 보건복지부가 의사와 약사·간호사·한의사와의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증폭해왔던 책임은 절대 가벼운 것이 아니다. 지금도 필수·지역의료의 난맥상을 핑계로 의사와 간호사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의사의 증원을 변호사와 비교하는 것은 몹시 부끄러운 일이다. 변호사는 실질적으로 변호사 시험의 규모를 키우는 것으로 끝난다. 많은 시설과 인력이 필요한 실험·실습도 없고 변호사 자격을 받은 후에 철저한 도제식 교육으로 진행되는 전공의·전임의와 같은 강도 높은 수련 과정도 없다.

오히려 변호사 증원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변호사 출신의 선무당급 시사평론가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고 22대 국회의 당선자 중 변호사를 비롯한 법조계 출신이 20%를 넘어섰다. 상상을 넘어선 고액 수임료를 챙기는 전관예우도 여전하다.

정부·여당이 총선 참패의 원인이 돼버린 의대 정원의 비현실적인 증원의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정부의 '과학적 근거'와 의사의 '과학적 근거'가 다를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이 진정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주는 '과학적 근거'인지에 찾아내야 한다.

이제 자신의 과학적 근거만 옳다고 우기는 독단·독선·불통은 설 자리가 없다. 정부가 의사와 무조건적인 '대화'에 나서야 한다. 정부가 양보했으니 의사도 양보해야 한다는 주장은 소모적이고 치졸한 기(氣) 싸움일 뿐이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9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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