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진스가 ‘배신돌’이라는 낙인을 피하려면?

안진용 기자 2024. 4. 2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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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뉴진스

국내 최대 K-팝 기획사 하이브와 그 자회사인 어도어가 격하게 대립하고 있다. 도무지 접점이 보이지 않는다. 캐스팅보트는 걸그룹 뉴진스가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뉴진스가 ‘어디에 힘을 실어주느냐’에 따라 판세가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

어도어가 먼저 치고 나갔다. 어도어 측은 앞선 입장문에서 "어도어는 뉴진스 멤버 및 법정대리인들과 충분히 논의한 끝에 공식 입장을 발표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즉, 어도어가 이같은 문제를 제기한 것은 민희진 대표나 경영진의 독단적 결정이 아닌, 뉴진스 멤버들과도 충분히 의견을 나눈 결과라는 뜻이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뉴진스는 어도어의 편에 설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재 어도어를 바라보는 여론과 언론의 시선은 곱지 않다. 어도어가 부적절하게 독립을 시도하려는 정황이 포착돼 감사권을 발동했다는 하이브의 주장 직후 어도어는 이를 극구 부인했다. 하지만 압수한 전산 기기에서 이를 의심케 하는 정황이 포착되자, 이번에는 어도어 경영진인 A의 ‘개인적 일탈’로 치부했다.

그러면서 하이브의 새 걸그룹 아일릿이 뉴진스의 콘셉트를 카피한 것이 문제라고 새삼 강조했다. 어도어 측은 이에 공식적인 문제를 제기했으며 "구체적인 답변은 미루던 중 하이브는 오늘(4월22일) 갑작스레 민희진의 대표이사 직무를 정지하고 해임하는 절차를 밟겠다고 통보하면서, 그 이유로 민희진 대표가 ‘어도어의 기업가치를 현저히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하고 있다. 동시에 언론에는 민희진 대표가 ‘경영권 탈취를 시도하였다’는 등 어이없는 내용의 언론 플레이를 시도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문화일보 확인 결과, 하이브는 어도어의 이런 문제제기에 대한 답변서를 이메일로 보냈다. 그리고 "수신 확인으로 표시됐다"고 하이브는 전했다. 어도어의 논리가 깨진 셈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어도어의 추가적인 입장은 아직 없다.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 속에서 작은 균열은 전체 논리를 망가뜨린다. 어도어의 주장 중 거짓이 섞였다는 의심이 커지면, 그들의 전체 논리에 대한 신뢰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뉴진스가 선택할 차례다. 실제 어도어의 주장처럼 ‘뉴진스와 충분한 논의’를 거쳤을 수 있다. 하지만 어린 아티스트인 뉴진스가 얻는 정보는 제한적이다. 그런데 불과 이틀 사이 어마어마한 상황이 벌어졌고, 뉴진스와 그들의 가족 역시 전후 사정을 파악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엄밀히 말해 뉴진스에게 ‘선택권’은 사실상 없다. 그들은 어도어와 계약된 관계다. 그리고 어도어의 지분 80%는 하이브가 보유하고 있다. 뉴진스라는 지식재산권(IP)에 대한 지배적 권리는 하이브에게 있다는 의미다. 주주총회 의결을 통해 민희진 대표는 대표직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적잖다. 하지만 뉴진스가 민 대표를 따라갈 권리는 없다. 뉴진스는 어도어, 더 나아가 하이브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민희진이 아니면 안 된다"는 논리라면, 그들이 택할 수 있는 카드는 전속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다. 아일릿의 콘셉트 카피, 하이브와 어도어의 다툼을 지켜보며 "함께 하기 힘들다"고 ‘신뢰 관계 파탄’을 주장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지난해 걸그룹 피프티피프티 사태에서 알 수 있듯, 명분없는 가처분 신청은 기각될 공산이 크다. 또한 이같은 싸움을 벌인다면 뉴진스에 ‘배신돌’이라는 낙인이 찍힐 수도 있다.

물론 하이브와 어도어가 대립각을 세우는 상황 속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뉴진스라 볼 수도 있다. 5월 컴백을 앞두고 회사는 어수선하다. 데뷔 때부터 그들과 함께 했던 민 대표의 입지도 흔들리고 있다. 이미 뉴진스가 민 대표와 손잡은 것으로 보는 따가운 시선도 있다.

이런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배신돌’이라는 낙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뉴진스는 철저히 중립을 지키며 순리에 따르는 것이 옳다. 개별 멤버들의 감정 동요는 있겠지만, 뉴진스라는 IP는 결국 회사의 논리에 따라, 지분 관계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사사로운 감정에 휩싸여 섣부른 판단을 하면 앞서 어트랙트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와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피프티피프티 전 멤버 3인과 같은 길을 걷게 될 수도 없다. 이보다 더 큰 악재는 대중의 외면과 비판이다.

냉정히 보자. 뉴진스를 발굴한 주체는 민희진 대표가 아니다. 그들은 르세라핌을 배출한 하이브의 또 다른 레이블 쏘스뮤직에서 뽑은 자원이다. 다섯 멤버 모두 2021년 하반기까지 쏘스뮤직에서 트레이닝을 받다가 어도어로 이관됐다. 이는 뉴진스 멤버들이 스스로 가장 잘 알 것이다. 즉, 뉴진스는 범(汎) 하이브가 빚은 IP지, 민 대표 개인의 역량으로 키운 IP가 아니다.

영화 ‘무스탕:랄리의 여름’(왼쪽)과 뉴진스 뮤직비디오.

물론 아일릿의 콘셉트 카피 논란에 대해 뉴진스 멤버들이 속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데뷔 시절로 시계를 돌려보자. 뉴진스 공개 직후 영화 ‘무스탕:랄리의 여름’(2016)의 몇몇 장면, 일본 그룹 스피드의 콘셉트와 겹친다는 지적이 있었다. 혹시 이런 과거를 잊었다면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 손쉽게 다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뉴진스를 상대로 콘셉트 표절 의혹을 제기하지는 않았다. ‘콘셉트 카피’라는 주장이 얼마나 애매한 것이 그들도 ‘상식선’에서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도 아이디어나 콘셉트가 겹친다는 이유만으로 표절로 보긴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면 걸그룹의 청순 콘셉트는 SES가 원조였다. 결코 뉴진스의 전유물이 아니다.

안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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