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바오 덕분에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한겨레21 2024. 4. 24.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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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기획][청춘의 봄비][랜선집사 놀이] 귀여운 동물에서 ‘용인 푸씨’ 되기까지… 중국 송환식 군중 오열 논란이 보여주는 것
2024년 3월3일 푸바오가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판다월드에서 강철원, 송영관 사육사가 선물한 대나무 장난감을 안고 누워 있다. 공동취재사진

자이언트 판다 푸바오가 떠났다. 희귀동물 국제협약에 따라 중국에 반환돼서다. 하지만 국민의 ‘푸바오 앓이’는 식지 않는다. 뉴스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연일 중국 송환 이후 푸바오의 근황은 물론이고 푸바오 담당 중국 사육사의 ‘스펙’ 확인, 푸바오의 예비 신랑 자질(못생겼다는!) 논란, 푸바오 관광 패키지 상품 출시 소식, 푸바오가 푸대접받지 않는지 현지 사옥 맞은편 산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중이라는 사생팬의 등장, 급기야 서울시가 푸바오를 대여해달라는 민원까지. 바야흐로 ‘푸바오 없는 푸바오 신드롬’이다.

“푸바오 때문에 연인과 싸웠어요”

특히 뜨거운 건 ‘푸바오 과몰입 논쟁’이다. 푸바오 때문에 연인이나 지인과 싸웠다는 사연이 잇따른다. 발단은 2024년 4월3일, 중국 송환식 때 모여든 군중의 오열 영상이 화제가 되면서다. 국가 원수급 인물의 장례식도 아니고 ‘고작 동물 한 마리’ 반환에, 그것도 사육사처럼 직접 기르지 않고 주로 영상으로만 푸바오를 접했으면서 ‘오열’까지 하는 것은 유난이라는 의견(을 넘어 비난까지)이 쏟아진다.

미리 밝히자면, 나는 푸바오가 떠날 때 오열하지 않았다. 하지만 푸바오를 둘러싼 누리꾼들의 갑론을박을 지켜보면서, 그 보드랍고 ‘뚠뚠한’ 존재가 우리 사회에 남긴 이야기와 마음이 훨씬 커다랗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단지 희귀하고 귀여운 외모, 에버랜드 차원의 캐릭터 스토리텔링 이상으로 말이다.

푸바오는 확실히 귀엽다. 그렇지만 이미 1994년 우리나라에 첫발을 내디뎠던 판다 밍밍과 리리도, 그다음 2014년 도착한 푸바오의 부모인 아이바오와 러바오도 그랬다. 사실 2020년 11월 푸바오 탄생 100일 기념식 즈음만 해도, 좀더 인기 있는 쪽은 호랑이 남매나 레서판다였다. 푸바오는 어쩌다 ‘역주행’해서 아이돌 뺨치는 인기(에버랜드 공식 유튜브 채널에만 업로드된 푸바오 영상의 누적 조회수는 5억 회에 이른다)뿐 아니라 ‘명예 용인특례시민’ 타이틀까지 거머쥐었을까?

푸바오가 본격적으로 뜬 건 2023년 3월로, 다소 애국적인 에피소드가 마중물이었다. 같은 해 2월,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동물원에서 살던 판다 ‘러러’가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악화하던 와중이었다. 중국 누리꾼 사이에서 러러 그리고 같은 곳에 살던 ‘야야’의 비쩍 말랐던 사진이 공유되면서 미국뿐 아니라 타국에 보낸 판다들을 반환받자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던 중 에버랜드 유튜브 채널 속 푸바오는 ‘잘 관리된’ 사례로 주목받게 됐다. 이 소식이 우리나라에도 닿았다. 우리나라 누리꾼들은 이를 계기로 에버랜드가 마련한 푸바오 가족의 스토리텔링에 빠져들며 속속들이 ‘푸덕이’(푸바오 덕후)로 거듭났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푸바오 송환식을 두고 애인과 다툰 사연으로 화제가 된 게시물. 다른 커뮤니티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푸바오를 계기로 주변인과 갈등이 있다는 하소연이나, 누리꾼끼리 갑론을박을 벌이는 게시글이 논란이 됐다. 도우리 제공

물론 감동적이고 희귀한 동물의 스토리야 <티브이동물농장>에도 많았다. 하지만 푸바오 스토리텔링은 단기 에피소드 차원을 넘어섰다. 에버랜드는 대형 엔터테인먼트처럼 탄탄한 캐릭터 세계관 그리고 각종 굿즈와 출간으로 이어진 아이피(IP·지식재산권) 마케팅을 펼쳤다. 그중에서도 일명 ‘강바오’ ‘송바오’로 불리는 사육사들과의 ‘케미’가 큰 몫을 했다. 푸바오 ‘입덕’ 영상으로 유명한 강 사육사의 다리에 푸바오가 매달리는 영상은 조회수가 1500만을 넘을 정도다. 강 사육사가 출연한 인터뷰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뿐 아니라 ‘동물들 할아부지 송바오 모음집’ ‘강철원 사육사, 30년 전 모습 대공개!’ 같은 콘텐츠처럼 사육사들의 스토리 자체도 주목받고 있다. 여기에 푸바오의 친가, 외가 쪽 판다 그리고 타국의 판다(일본 ‘샹샹’, 중국 ‘화화’ 등) 이야기까지, 웬만한 아이돌 유니버스보다 두텁다.

생태적 감수성의 진화

푸바오 열풍에 대한 주요한 비난에는 “직접 기른 것도 아니면서 과몰입이다”가 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우리 사회의 ‘생태적 감수성’이 진화했다는 신호다.

특히 온라인상으로만 접하는 동물에 애착을 갖는 ‘랜선집사’가 된 이가 많아진 것도 그렇다. 인류학자 김윤정은 논문 ‘시청자를 넘어 랜선집사 되기’에서 랜선집사는 우리나라 청년들과 동물의 핵심적인 관계 맺기 방식이며, 단순히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한 대리만족 이상의 의미라고 강조한다. 용어적으로도 1990년대에는 인간이 ‘가지고 논다’는 의미의 ‘애완(愛玩)동물’에서 2006년부터는 동반자라는 뜻의 ‘반려(伴侶)동물’로 대체됐는데, 기르는 인간이 자신을 지칭하는 말도 ‘주인’에서 ‘집사’로 변해왔다고 한다. 내 경험에 비춘다면 햄스터가 ‘더러운 쥐’에서 ‘귀여운 설치류’로, 고양이가 ‘불길한 털짐승’이 아닌 ‘인간을 간택하는 반려묘’로 인식이 바뀌어왔달까. 여기에 유년기에 반려견을 키웠던 지인들이 노화에 따라 ‘마냥 귀여웠던 시절’뿐 아니라 ‘늙고 아픈 존재’를 간병하고 장례를 치르는 등 동물을 전생애적으로, 전인적으로 돌보며 성찰하는 과정을 지켜본 경험도 있다.

저자 김씨는 이런 변화에는 주로 접한 동물 미디어 콘텐츠의 영향도 컸다고 지적한다. 1970년대부터 국외의 야생동물 다큐멘터리를 방영해주는 <동물의 왕국>(1970)에서, 한국의 동물들과 그들 삶의 서사에 초점을 맞춘 <티브이동물농장>(2001), 그리고 반려동물 행동 교정 프로그램이지만 사실상 인간 교화 프로그램인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2015)까지.

<티브이동물농장>이 명실상부 ‘국민방송’이 되던 2010년대 즈음, 스타의 유명세에 힘입은 ‘스타 동물’의 등장을 기억한다. 이효리 반려견 순심이, 한국방송(KBS) 예능 <1박2일> 멤버들과 동행하며 인기를 얻은 개 상근이,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반려견 토리까지. 그러나 온라인 커뮤니티 ‘반려견 게시판’에서 유명해진 ‘짱절미’는 방송 기획 콘텐츠나 스타 없이도 그 존재 자체로 인기와 팬덤몰이를 시작한 ‘펫 셀럽’의 등장을 알렸다. 이때부터 구체적인 ‘연고’가 없어도 애착을 맺는 동물이 생겼다. 본격적인 ‘랜선집사’의 탄생 시점이다.

푸바오 신드롬이 일기까지 일명 ‘강바오’(강철원 사육사) ‘송바오’(송영관 사육사)로 불리는 사육사들과 푸바오의 ‘케미’가 큰 몫을 했다. 두 사육사가 2024년 3월3일 오전 푸바오 팬들에게 보내는 감사 편지를 낭독하는 모습. 공동취재사진
푸바오의 아기 시절인 2020년 11월4일 모습. 푸바오는 같은 해 7월20일 국내 유일 자이언트 판다 커플 러바오와 아이바오 사이에서 태어났다. 연합뉴스

2020년대부터 새롭게 대중의 관심을 끈 동물들은 주로 사랑스럽다기보다 고통받는 존재였다. KBS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낙마 장면 촬영 중 상해를 입고 죽은 말 ‘까미’가 대표적이다. 2023년 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 탈출한 얼룩말 ‘세로’, 2024년 경기 성남시의 도로를 1시간가량 뛰어다닌 타조 ‘타돌이’도 그렇다. 이제 우리 사회에도 기후위기 담론과 맞물려 반려동물처럼 ‘나와 상관없어도’ 전지구적인 ‘비인간 동물’을 걱정하는 공적인 마음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푸바오 열풍을 견인한 건 단기적이고 사적인 귀여운 이미지 소비도 있지만, 동물권에 대한 공적인 관심의 확대도 큰 몫을 했다.

‘푸덕이’들의 자기성찰과 동물권 운동 후원 행동

지금 한국 청년, 특히 여성 청년들은 이러한 ‘생태적 감수성’을 키워왔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여성의 돌봄을 절실히 원하면서도 그 돌봄이 ‘(가부장 남성) 인간’이 아닌 길고양이와 같이 타자를 향하면 쉽게 ‘민폐 캣맘’과 같은 혐오적인 시선으로 본다. 푸바오 송환에 대한 ‘오열’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지적을 넘어 ‘비이성적이고, 너무 감정적이고, 혹은 (우는 자신에 심취한) 가짜 감정’으로 공격하는 집단이 주로 남초 커뮤니티라는 점은 이를 가리킨다.

그럼에도 ‘푸덕이’들은 국경을 가로질러 떠나는 푸바오를 통해 초국가적인 애정으로 확장하고, 동물을 둘러싼 환경뿐 아니라 자신들의 애정까지 성찰하고 있다.

푸바오 송환에 대한 가슴앓이에는 부모와 쌍둥이 동생, 그리고 사육사들과 생이별한다는 안타까움 외에도 중국의 양육 환경에 대한 불신도 깔려 있었다. 중국의 유명 판다 연구 기지에서 사육사가 판다를 때리는 일이 발생했다거나, 푸바오의 외할머니가 박제돼 전시됐다는 뉴스가 그렇다. 하지만 ‘푸덕이’들은 이런 자극적인 우려를 넘어 상업형 동물전시시설인 동물원의 역할 변화에 대한 고민, 인간의 ‘외교’를 이유로 삶이 좌우되는 판다의 입장, 푸바오를 관람했던 자신의 행위가 푸바오에게 스트레스였을지도 모른다는 반성, 푸바오를 계속 곁에 두고 싶다는 ‘욕심’을 내려놓겠다는 결심까지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마음은 우리나라에서 뜬장에 갇혀 사는 300여 마리의 ‘사육곰’에 대한 관심 촉구로 이어졌다. 특히 이들을 돌보는 동물보호단체 ‘곰보금자리프로젝트’를 통해 후원의 손길을 보내고, 에버랜드가 푸바오 열풍으로 번 돈을 시설 개선에 힘쓰라는 서명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주일 동안 진행된 이 서명운동에는 시민 3700여 명이 동의했고, 1700여 건의 의견이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환경윤리학자 딘 커틴은 ‘돌보기’와 ‘관심 갖기’를 제시했다. 전자가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구체적인 대상을 향한 것이라면, 후자는 보편적이고 공적인 대상을 향한 것이다. 푸바오 신드롬은 우리 사회가 구체적·간접적으로 접촉하는 대상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을 역량이 있음을 드러냈다.

“너를 만난 건 기적이야 고마워, 푸바오”

그렇다면 이제 판다처럼 ‘귀여운’ 외모가 아니더라도, 나이가 들었더라도, 애교가 있지 않더라도, 인간에게 유용하지 않더라도, 혈연가족 관계성을 부여하는 의인화를 하지 않더라도, 인간과 가까운 포유류가 아니더라도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존중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푸바오는 우리 사회도 동물을 ‘시민’으로 상상할 수 있다는 기적을 선사했다. 우리는 이 기적을 어떻게 간직해야 할까. 한 누리꾼의 말로 글 맺음을 대신한다. “우린 푸바오 잊지 말자. 푸바오를 제대로 보고 외부 캐릭터화보단 푸바오 자체를 보자. 계속 푸바오 힘이 되어주자.”

도우리 작가·<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저자

2024년 3월3일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판다월드에서 푸바오가 강철원 사육사가 선물한 유채꽃을 바라보고 있다. 이날은 푸바오가 한국 대중과 만나는 마지막 날이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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