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사고로 사라진 아버지…망가진 네 자매의 삶

안서연,고성호 2024. 4. 24.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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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제주] [앵커]

KBS는 4·3 당시 군경이 두고 간 폭발물로 희생된 어린이들을 발굴해 연속 보도해드렸는데요.

희생된 건 어린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폭발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네 자매도 있습니다.

안서연, 고성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아흔한 살 허금순 할머니는 70년 전인 1954년 결혼식을 앞두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큰동생과 함께 송당 민오름에 땔감 구하러 간 아버지가 지뢰를 밟고 다리가 잘렸다는 겁니다.

[허금순/송당 폭발사고 희생자 故 허두현 씨 큰딸 : "그래서 맨발에 내가 거리에 나가보니 소달구지에 동생이 소가 가는 대로 빨리 가면 빨리 걷고 늦게 가면 늦게 걷고. 민오름이라고 거리가 먼 데 있는데 거기서 피 흘리면서 오른발을 끊어버리고 피 흘리며, 아이는 울면서 돌아왔습디다."]

당시 쉰 한살이던 아버지는 끝내 숨을 거뒀습니다.

[허정애/송당 폭발사고 희생자 故 허두현 씨 막내딸 : "송당마을 사람이 다 기가 막혀서 울고. 사고 나는 날로 시작해서 열흘 만에 돌아가셨는데. 음력으로 12월 11일 날."]

[김순애/송당 폭발사고 희생자 故 허두현 씨 조카 며느리 : "아들은 없어서 우리 집 아저씨가 제대하고 온 후에 돌아가시니까 군복 입고 상주 노릇 하고 했지."]

사고를 목격한 열네 살 둘째 딸을 비롯한 네 자매와 지적장애가 있던 엄마의 삶은 송두리째 무너졌습니다.

[허금순/송당 폭발사고 희생자 故 허두현 씨 큰딸 : "우리 동생 그 동생은 그때 사고 날 때 충격받아서 지금 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갑자기 그렇게 되니깐 어쩔 줄 모르고, 사는 게 사는 것처럼 안 살고 살아온 거지."]

남의 집 더부살이로 힘겹게 살아온 네 자매는 폭발물이 4·3 때 설치된 것으로 보고 10년 전, 아버지를 희생자로 신청했습니다.

하지만 특별법에 명시된 4·3 기간을 3개월이 지난 사례라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허정애/송당 폭발사고 희생자 故 허두현 씨 막내딸 : "두 번 했어요. 그런데 연락이 없던 거라 지금까지. 너무 억울한거예요 저희는. 너무 억울해요. 이렇게 와서 사는 거 보니까 알잖아요. 우리 너무너무 가난에 시달려가지고 헤어나지를 못해요 지금까지."]

올해 초 4·3 기간을 지나 폭발물로 숨진 어린이 2명을 처음으로 희생자로 인정한 만큼, 이 사고 역시 재심사가 필요하단 목소리가 나옵니다.

[김종민/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4·3중앙위원 : "무장대가 거의 세력을 상실하고 나서 몇몇 무장대원이 남아있을 때는 전선을 끌어 올렸습니다. 전선을 끌어올려서 송당에 경찰 주둔소를 만들었고. 그렇게 끌어올려서 군경이 주둔했기 때문에 그 지역에는 반드시 폭발물이 있었을 거라고 보죠."]

네 자매는 제대로 된 조사만이라도 받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허금순/송당 폭발사고 희생자 故 허두현 씨 큰딸 : "아휴, 말이 답답해서 나오지 않습니다. 억울해서…."]

KBS 뉴스 안서연 입니다.

촬영기자:고성호

안서연 기자 (asy0104@kbs.co.kr)

고성호 기자 (rumpiu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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