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고용 미스터리 풀렸다…불법이민의 경제학[딥다이브]
미국 고용시장은 왜 이렇게 계속 뜨거울까. 고용이 이렇게 뜨거운데, 왜 물가는 다시 급등하지 않을까. 지난 1년여 동안 미국 경제학자들을 대혼란에 빠지게 했던 수수께끼입니다.
너무 뜨거운 고용시장은 주식시장엔 악재로 통하기도 하죠. 고용이 급증하면 보통은 물가가 들썩거리기 마련인데요. 혹시 이를 우려해서 미국 중앙은행이 금리인하를 주저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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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서프라이즈의 진짜 이유
지난 5일 미국 노동통계국(BLS)이 발표한 3월 고용보고서에 시장이 깜짝 놀랐습니다. 비농업 고용이 전달보다 무려 30만3000건이나 늘었기 때문인데요. 예상치(21만건)를 훌쩍 넘어선 기록이었습니다.
이런 ‘고용 서프라이즈’ 미국에선 한두 번이 아닙니다. 2023년 이후 15번의 고용 보고서에서 무려 11번이 전망치를 웃돌았고요. 그 차이가 10만명 넘는 경우도 5차례나 됐는데요. 어떻게 고용이 이렇게 계속 서프라이즈일 수 있을까요. 매달 수십만 개의 추가되는 일자리를 채우는 건 도대체 누구일까요. 고용이 급증했는데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어떻게 3%대로 안정돼 있을까요.
특히 이 중 240만명은 불법 이민자라고 합니다. 무단으로 국경을 넘었거나(밀입국자), 비자기간을 초과했거나, 이민 법원 절차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죠.
이런 불법 이민자 중 상당수가 저임금 블루칼라 노동자로 채용되고 있는 건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브루킹스연구소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강력한 이민이 계속된다면 미국의 신규고용이 얼마나 늘어날지를 계산했는데요. 그 결과가 꽤 놀랍습니다.
과거 미국에선 월 6만~10만명 정도 일자리가 증가하는 게 적정선으로 통했습니다. 인플레이션을 자극하지 않는 신규 취업자 수 균형점이 그 정도라는 뜻이었는데요. 최근의 이민 물결을 반영한 결과, 그 수치가 월 16만~20만명으로 확 늘어납니다. 신규고용이 기존 전망의 두 배로 늘어나도 물가가 들썩거릴 일이 없다는 거죠. 이민자 급증이 미국 노동시장의 공식을 바꿔놓은 셈입니다. 다시 말해, 월 20만명쯤의 고용 증가는 이제 ‘뉴노멀’이 됐습니다.
이 연구를 담당한 웬디 에델버그 브루킹스연구소 이사(전 연준 이코노미스트)는 악시오스 인터뷰에서 연구결과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연준의) 통화정책이 노동시장을 둔화시키기 위해 생각만큼 많은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파월도 믿는 이민자 효과
이렇게 생각하실 분도 있을 겁니다. 혹시 브루킹스연구소는 진보 성향이라 이민에 대해 긍정적인 연구 결과를 내놓은 게 아닐까. 하지만 그렇게 볼 건 아닙니다. 고용시장 활황이 이민자 덕분이란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FHN파이낸셜과 모건스탠리는 이민 증가를 반영해 고용시장 균형점(물가 상승 없는 고용 증가폭)을 월 26만5000명으로 높여 잡았습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는 11일 보고서에서 “이민이 일자리와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했고, 이런 추세는 2024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죠. 하버드대학의 제이슨 퍼먼 교수는 최근 블룸버그 라디오에서 노동시장 강세 원인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한 단어, 이민자.”
무엇보다 세계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이 ‘불법이민자 효과’를 믿고 있는 듯합니다. 바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인데요.
파월 의장은 이달 초 스탠퍼드대학 연설에서 “미국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고 말했죠. 아울러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경제는 더 커졌지만 더 타이트하진 않습니다. 정말 예상치 못한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는 지난달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에 출석했을 때도 이민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래를 위해 어떤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하진 않을 겁니다. 이민과 노동력 참여가 지난해 우리가 이룬 매우 강력한 경제성장에 기여했다고 말하는 건 사실을 보고하는 것뿐입니다.”
“더 많은 이민자” 외치는 기업들
만약 이민 급증이 정말 미국 경제를 강하게 만든다면, 나아갈 방향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민자에 문을 더 활짝 열어야죠.
텍사스주 건설사 CEO인 에디 마틴은 CNN 인터뷰에서 “우리는 사업을 잃고 있다. 숙련된 근로자가 노령화됐고, 이를 대신할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인력부족으로 주택 건설 기간이 9개월에서 14개월로 늘어났는데요. 그는 의회가 더 많은 이민자 고용을 위해 새로운 취업비자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좋은 정치와 나쁜 경제
이민자에 대한 이 강력한 수요를 채워주는 방법은 사실 간단합니다. 현재 미국 연방법에 따라 법원에 망명신청을 하면 180일이 지난 뒤에야 취업허가가 나오는데요. 이 기간을 대폭 줄여주면 됩니다. 난민이 몰려들어 골치인 도시는 혼돈에서 벗어나고, 일할 사람이 없어서 골치인 지역은 구인난을 해소할 수 있으니 윈윈이죠. 이는 에릭 아담스 뉴욕시장의 주장이기도 합니다. “이민자에 신속한 법적 허가를 부여해서 수많은 뜨거운 노동시장 중 한 곳으로 보내는 것이 이민자와 고용주, 그리고 미국 경제에 승리를 제공할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민은 경제에 좋다’는 경제학자 말이나, ‘더 많은 이민자를 달라’는 기업의 목소리가 잘 통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 조급해진 바이든 대통령은 “국경 폐쇄 가능성”을 운운하며 최근엔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섰는데요.
투자회사 록펠러 인터내셔널의 루치르 샤르마 회장은 파이낸셜타임스 칼럼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민 단속은 좋은 정치지만 나쁜 경제입니다.(…) 정치적 반발이 (경제적) 횡재를 위태롭게 합니다.(…) 현명한 정치인은 혼란스러운 불법 이민 통제와 반이민 정책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 제한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물론 균형 잡기란 어렵습니다. 특히 대선을 앞둔 시점에는. By.딥다이브
얼마 전 딥다이브 네덜란드 반이민 정책 편에서 “이민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제를 파괴하는 것”이란 이민 전문가 발언을 전해드렸는데요. 이민의 나라, 미국은 어떤 길을 선택하게 될까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고용이 이렇게 빠르게 급증하는데 왜 물가 상승률은 안정돼있을까. 미국 경제학자들을 지난 1년간 혼란에 빠뜨렸던 ‘고용 미스터리’인데요. 이제 그 답을 찾아가는 듯합니다.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이는 불법이민 효과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이민으로 노동력 공급이 급증하면서 전보다 고용시장 균형점이 한층 높아졌습니다. 물가를 자극하지 않고도 월 20만명의 취업자 수가 추가될 수 있는 겁니다. 뜨거운 고용시장을 식히려고 연준이 그리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죠. 투자자들 입장에선 다행스러운 소식입니다.
-이미 건설, 숙박, 식품 관련 기업에선 ‘더 많은 이민자를 채용하게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일부 주 정부는 경찰 구인난 해결을 위해 이민자를 경찰로 채용하려 합니다.
-문제는 정치입니다. 대선을 앞두고 이민에 대한 거부감이 유례없이 커졌습니다. 초조해진 바이든 대통령이 국경 폐쇄를 운운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러다 ‘이민 대박’의 기회를 망치는 건 아닐까요.
*이 기사는 2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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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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