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기자의 영화감]테니스 공처럼 꽂히는 세 남녀의 욕망… ‘챌린저스’

이정우 기자 2024. 4. 2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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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챌린저스’
두 남자에게 타시(젠데이아)는 욕망의 대상이었고, 타시는 이를 통제하며 기나긴 ‘막장 랠리’를 이어왔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매주 영화는 개봉하고, 관객들은 영화관에 갈지 고민합니다. 정보는 쏟아지는데, 어떤 얘길 믿을지 막막한 세상에서 영화 담당 기자가 살포시 영화 큐레이션을 해드립니다. ‘그 영화 보러 가, 말아’란 고민에 시사회에서 먼저 감 잡은 기자가 ‘감’ ‘안 감’으로 답을 제안해봅니다.

‘콜 미 바이…’ 구아다니노 신작
코트 밖 여성을 차지하기 위한
죽마고우 두 남자의 시합 그려

러닝타임 내내 경기 보여주며
3명의 과거 플래시백으로 그려
감정과 갈등 고조돼 ‘긴장감’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신작 ‘챌린저스’(24일 개봉)는 2시간 넘게 테니스만 치는데도 자극적이고 섹시합니다. 영화에서 죽마고우 두 남자는 한 여자를 두고 싸웁니다. 테니스 시합 중인 이들의 과거사는 얽히고설켜 있죠. 친구의 연인이 아내가 되고, 그 아내는 남편의 친구와 잔 막장 삼각관계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막장 치정극이라 도파민이 폭발하는 게 아닙니다. 이야기를 쥐었다 폈다 하며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만드는 구아다니노의 감각적인 연출 덕분입니다. 사실 이 감독의 영화는 드라마(‘아이 엠 러브’)든, 로맨스(‘콜 미 바이 유어 네임’)든, 호러(‘서스페리아’)든 섹시했죠. 욕망과 본능으로 범벅된 MZ판 ‘쥴 앤 짐’에서 구아다니노 감독은 작심한 듯 날뜁니다. 그 결과 구아다니노의 작품 중 가장 흥미진진하고, 짜릿하며, 재미있는 영화가 탄생했습니다.

◇단순한 스포츠 영화가 아니다

아트(마이크 파이스트)와 패트릭(조시 오코너), 테니스 챌린지 리그 결승에서 만난 두 남자가 치열하게 시합을 펼칩니다. 둘은 테니스를 함께 시작한 절친. 13년 전 US오픈 주니어 대회에서 만난 타시(젠데이아)를 동시에 좋아하며 갈등이 생깁니다. 처음 승자는 패트릭이었어요. 결승에서 친구인 아트를 꺾은 그는 타시로부터 ‘전리품’인 전화 번호를 받습니다. 둘은 사귀지만 오래가지 못합니다. 타시의 통제를 자유분방한 패트릭이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죠. 반대로 패트릭의 안일한 한량 기질을 목표지향적 완벽주의자인 타시가 못 버텼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사이를 파고든 아트는 타시와 결혼해 두 번째 승자가 됩니다. 재능을 믿고 모험성 플레이를 즐기는 패트릭과 달리 성실하게 확률 테니스를 구사하는 아트는 타시에게 코칭을 받고, 세계 최고의 테니스 선수로 거듭납니다. 통제하는 타시와 의존하는 아트는 잘 맞는 한 쌍이 되지만, 아트가 테니스에 대한 열정을 잃으면서 삐걱댑니다.

아트와 패트릭 모두 이번 테니스 대회에서 확실한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톱랭커인 아트는 이른바 ‘양학’(양민학살)을 통해 슬럼프를 극복해야 하고, 하부리그를 전전하는 패트릭은 상금을 타야 합니다. 그런데 둘 모두 그보다 중요한 목적이 있습니다. 타시 앞에서 승자가 되는 것이죠. 둘 모두 선수로서, 남자로서 승자임을 타시에게 증명하려고 합니다. 타시를 처음 만났던 13년 전 이후 이어진 둘의 기나긴 랠리가 끝을 향해 달려갑니다.

◇2시간 넘게 테니스만 치는데 왜 자극적일까

2시간 11분인 영화 러닝타임 내내 아트와 패트릭의 테니스 경기가 이어지지만 흥미진진하고 자극적입니다. 감정이 끓어오르다 분출하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유는 플래시백 속 과거의 사건이 테니스를 치는 현재에 영향을 주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지배와 복종, 자유와 통제, 질투와 연민 등의 관계에 대한 문제가 뒤섞이며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으로 이끄니, 관객은 그다음을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3년에 걸쳐 일어난 세 남녀를 둘러싼 결정적 사건과 당시 인물의 감정 상태가 현재 인물에게 그대로 투영됩니다. 거울처럼요. 말없이 테니스를 치고 있지만 인물들의 시선과 행동만으로 매 순간 인물의 감정이 관객에게 꽂힙니다. 특히 패트릭과 아트, 타시, 세 남녀의 시선이 맞부딪침과 엇갈림에 주목하면 테니스 랠리보다 치열하게 13년간 농축된 세 남녀의 감정이 수렴하고 발산하는 게 느껴집니다. 결국 이 테니스 시합은 13년을 이어온 이들 관계의 압축판이자 마침표인 셈이죠.

경기가 진행될수록 쌓이는 과거사와 이로 인해 응축되는 감정으로 세 남녀는 점입가경에 놓입니다. 인물의 감정이 고조되는 만큼 관객들의 심장 박동도 덩달아 빨라집니다. ‘소셜네트워크’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했던 트렌트 레즈너의 전자음 사운드가 한몫합니다. 타이브레이크에서 펼쳐지는 마지막 랠리는 아예 카메라가 테니스공인 양 이리저리 튑니다. 그야말로 무아지경입니다.

침대 위에서 한 여자를 사이에 둔 두 남자의 모습은 영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이것은 누구의 랠리인가

표면적으론 당연히 아트와 패트릭입니다. 그런데 둘은 경기 내내 타시를 의식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남자의 연결고리는 갈등의 도화선이었던 타시입니다. 세 남녀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가진 건 언제나 타시였습니다. 두 남자는 욕망의 대상인 타시의 마음을 얻으려는 도전자(챌린저)에 불과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이 테니스 경기의 주도권은 타시가 쥐고 있었습니다. 두 남자는 타시를 두고 13년간 힘겨루기 혹은 재롱잔치를 해왔던 거죠.

그런데 마지막에 둘은 타시라는 구속에서 해방돼 둘의 테니스를 칩니다. 어떻게 벗어났을까요. 힌트가 있습니다. 13년 전 세 남녀가 호텔 방 침대에 나란히 앉았던 순간, 타시는 “테니스는 관계”라고 선언합니다. 테니스를 치면서 상대방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된다면서요. 타시에 따르면, 아트와 패트릭은 서로 테니스를 친 게 아닙니다. 타시를 의식하기 바빠 서로를 탐구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을 맞으며 둘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집중합니다.

그런데 타시도 이들이 서로 테니스-관계를 맺길 내심 바랐던 것 같습니다. 영화 초반에 복선이 있습니다. 다시 세 남녀가 호텔 방에 함께 있었던 13년 전으로 되돌아가 보죠. 침대에 앉은 타시의 양옆에 두 남자가 쪼그려 앉고, 이들은 키스를 시작합니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점점 두 남자가 키스를 하고, 타시는 두 남자의 주고받음을 흥미롭게 지켜봅니다. 타시는 두 남자가 테니스 치는 것, 다시 말해 서로에게 열중하며 무언가를 주고받는 관계 맺음을 지켜보길 원했던 것 아닐까요. 모두의 본능이 충족되는 절정의 순간, 영화는 쿨하게 끝이 납니다. 갑작스럽게 끝난다고 생각하는 관객들이 분명 있겠지만, 개인적으론 최고의 결말이었습니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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