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소년이 겪은 '아픔의 서사' : 소년의 서

이민우 기자 2024. 4. 24.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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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리터러시+
형제복지원사태의 기억
근현대사 아픔의 흔적들
광주를 꼭 닮은 서점
소년의 서의 인권서적
'소년의 서'는 광주극장 옆 영화가 흐르는 골목길에 문을 열었다.[사진=더스쿠프 리터러시]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아픔으로 남아있는 건 그때의 사건을 여전히 풀지 못해서다. 5.18광주민주화운동, 형제복지원 사건. 폭력적인 공권력이 개입한 이 사건을 두고 수많은 사람들은 사과와 인정, 반성을 원했다. 또 누군가는 그 사건을 직접 기록하고 나섰다. 광주 독립서점 '소년의 서'는 그런 아픔이 서사처럼 흐르는 곳이다.

광주의 시간은 1980년에 멈춰 있습니다. KTX를 타고 송정역에 내리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5·18광주민주화운동입니다. 광주는 5월 18일이 되면 많은 가게가 문을 닫습니다. 그날 제사를 지내야 할 소상공인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광주에는 유난히 근현대사의 모습을 볼 공간들이 많습니다.

이번 더스쿠프 리터러시팀이 찾은 곳은 광주극장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광주극장 옆 골목길입니다. 광주극장은 1935년 10월 1일에 열어 지금까지 운영 중인 단관극장입니다. 한번에 단 하나만의 영화를 상영한다는 뜻인데, 지금은 예술영화만 상영하는 곳이 됐습니다.

아직도 손으로 영화 포스터를 그리고 있어서인지 '수제' 포스터를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런 작품 같은 포스터들은 광주극장 옆 골목길까지 이어집니다. 바로 영화가 흐르는 골목이라고 불리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그리고 그 골목에 서점이 있습니다. 바로 '소년의 서'입니다.

'소년의 서'는 광주를 닮았습니다. 2013년 서울변방연극제에서 예술감독을 하고 있던 임인자 씨는 「우리는 난파선을 타고 유리바다를 떠돌았다」란 작품을 만납니다. 형제복지원사건 피해생존자 한종선씨의 이야기를 담은 실험다큐극입니다.

[사진 | 더스쿠프 포토]

형제복지원은 1975년에서 1986년까지 운영한 우리나라 최대 강제수용소였습니다.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하계 올림픽을 앞두고 장애인과 부랑인을 단속해 수용하겠다는 목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전두환 정권의 협조 아래 부산시와 경찰이 잡아간 사람의 70%는 일반인이었습니다. 구타와 굶주림으로 공식적으로 사망한 사람은 657명에 이릅니다.

형제복지원은 1987년에 실체가 밝혀진 후 사라졌지만 이후 제대로 된 처벌이나 진실 규명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2012년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한종선씨가 진실 규명 운동을 펼친 후에야 폭력의 역사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살아남은 아이」란 책은 그때 세상에 나왔습니다. 한종선씨와 언론학자 전규찬 교수가 글과 그림으로 사건을 증언·기록하고 인권운동가 박래군씨가 함께 저술했습니다.

임인자씨는 「살아남은 아이」를 널리 알리고 싶다는 마음에 책방을 열었습니다. 그게 바로 '소년의 서'입니다. 여기엔 '아직 과거인 소년 소녀가 미래에 와서 오늘을 봅니다 그날의 책을 함께 읽습니다'란 표어가 붙어 있습니다. 한종선씨의 어린 날로 대표되는, 그날을 살고 있는 잊힌 과거,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소년의 書(글 서)'로 만나는 공간이 바로 이곳이죠.

실제로 서점에서는 「살아남은 아이」를 만나 볼 수 있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퀴어, 5·18광주민주화운동, 과거사 등 잊힐 수 있는 아픔을 담은 책이 이 공간에 모여 있었습니다. 과거의 아픔을 가진 소년의 글귀들이 가득 모여 있다는 겁니다.

소녀의 서에서 볼 수 있는 5‧18 등 인권을 다룬 책들. [사진=더스쿠프 리터러시팀]

저에게 광주는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발포된 총알의 화약 냄새가 아직 사라지지 않은 공간입니다. 반면 '소년의 서'는 1980년대에 살았던 소년들이 사라지지 않고 당시의 사회문제를 증언하고 글을 쓰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이곳에선 과거와 현재를 잇는 '아픔의 서사'가 흐릅니다.

인문사회·예술서점이면서 1980년대 우리 역사의 아픔 속에 잊힌 소년의 편지처럼 느껴지는 작은 독립서점 '소년의 서'. 광주에 들렀다면 이곳에서 소년의 글을 읽어보면 어떨까요?

이민우 더스쿠프 기자
lmw@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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