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부터 해결하고 걱정해라”… 거친 세상 홀로 서라는 말씀 생생[그립습니다]

2024. 4. 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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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내가 평생 대화를 나눈 시간을 합하면 아마 겨울 하루 정도나 될 것이다.

다만 삼한사온처럼 반복되는 아버지의 술주정은 내게 불안과 공포를 줬다.

내게는 무뚝뚝하기만 한 아버지였지만, 아버지에게는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뚝심이 있었고 탁월한 문제 해결 능력이 있었다.

아버지는 힘들게 일을 마무리하고, 내게 "걱정은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해도 된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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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나의 아버지(이동순·1934∼2009)
추석 때 고향에 내려가서 찍은 사진. 뒷모습의 어머니가 고추를 널고 있고, 아버지가 나의 큰 아이와 함께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집에서 기르던 개도 찍혔다.

나는 아부지를 마신다/어릴 적, 내게 들이댄 면도칼/등을 내리치던 가죽혁대/마시고 죽으라고 건네준 파리약 병//술을 마실 때마다/술이 나를 마실 때마다/지금도, 나는 아부지를 조금씩 마신다/입안에 남은 쓴 파리약 냄새

-이인철 시 ‘술’의 부분

아버지 영정 사진.

아버지와 내가 평생 대화를 나눈 시간을 합하면 아마 겨울 하루 정도나 될 것이다. 젊어서 특무대에서 군대 생활을 한 아버지는 과묵하고 말술을 마셨다. 술을 마신 아버지는 가족에게 폭력적이었다. 그나마 아버지가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은 잔잔한 일상이었지만 다정하진 않으셨다. 다만 삼한사온처럼 반복되는 아버지의 술주정은 내게 불안과 공포를 줬다. 나의 아동기에 따스한 아버지의 사랑은 없었다.

아버지에 대한 감동과 평생 교훈도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아버지는 군대를 제대하고 동네 저수지 공사, 하천 제방 공사 등 토목사업을 하셨다. 방학이면 공사현장에 아버지랑 같이 출근했다. 초등학생인 나는 아버지 참모였다. 사람들은 흙 한 동이를 저수지 둑에 쏟고 갈 때마다 내게서 전표 한 장씩을 받아 갔다. 월말이면 사람들이 일하고 받은 전표를 가지고 와서 돈으로 바꾸어 가는데 그 업무를 아버지는 내게 시켰다. 초등학생인 내게 사람들은 꼬마 사장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작은 사업도 넘어질 때가 있었다. 저수지를 완성하고 하도급을 받은 공사보다 사람들에게 지급할 인건비가 더 많았다. 적자였다. 아버지가 가진 재산으로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아버지는 돼지를 여러 마리 잡고 술을 준비했다. 저수지 공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집 마당에 자리를 잡고 둘러앉아 잔치를 즐겼다. 아버지가 사람들을 주목시키고 공사가 적자 난 것에 대한 설명과 미안하다는 말과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사람들은 웅성거리다가 아버지에게 적자가 나지 않는 범위에서 인건비를 지불해 달라고 의견을 모았다. 내게는 무뚝뚝하기만 한 아버지였지만, 아버지에게는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뚝심이 있었고 탁월한 문제 해결 능력이 있었다. 아버지는 힘들게 일을 마무리하고, 내게 “걱정은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해도 된다”고 하셨다. 아버지의 그 말은 내가 살면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많은 도움이 됐다. 그때의 아버지 모습이 다시금 떠오른다.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걱정 먼저 하지 말고 문제를 해결하고 걱정해도 된다.

아버지는 술 때문에 끝내 광주 대학병원에 입원하셨고, 집에는 어른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돈이 없어서 고등학교를 갈 수 없게 되자 농림고등학교 근로장학생으로 들어갔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해 대학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없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농협에서 대출을 받아 등록금을 내주면 군대에 갔다 와서 갚겠다고 했으나, 아버지는 이를 거절했다. 그때부터 나는 집을 나와 홀로서기를 시작했고,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을 다녔다. 그때의 경험이 시의 소재가 됐고 사업을 하며 견디는 힘이 생겼으며 인간관계를 알게 됐다.

내가 일찍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세상을 견딜 수 있는 힘 덕분이었다. 대학 때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배운 인간관계와 직업의 다양성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탁월한 문제 해결 능력과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 등은 아버지가 몸소 실천을 통해 알려주셨다. 삶을 살아가면서 가장 힘들 땐 순창으로 간다. 산소에 누워 있는 아버지와 소주를 나눠 마신다. ‘아버지 같으면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하겠어요?’라고 묻는다. ‘문제부터 해결해 놓고 걱정해라.’ 아버지 말씀이다.

아들 이인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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