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혁명 속 언론의 역할 더 중요… 이슈보다 진실 좇아 ‘품격’ 지켜야”[현안 인터뷰]

안진용 기자 2024. 4. 24. 09: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현안 인터뷰 - 김효재 언론진흥재단 이사장
가짜뉴스, 플랫폼 통해 무한생산
한번 유포되면 되돌릴 수 없어
시민이 구별해내는 교육 필요
‘AI시대 뉴스저작권 포럼’ 발족
‘콘텐츠 제값 받기’ 위해 준비
초등학교에 미디어강사 파견
지방 기자 연수 지원 등 추진
언론 신뢰 현저히 떨어진 시대
‘권력 감시자’ 본질 잊지말아야
언론인이자 행정가로서 40여 년간 현장을 누빈 김효재 이사장은 인공지능(AI)의 발달과 가짜뉴스의 범람을 우려하면서 언론이 ‘진실’을 좇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동현 기자

“혁명적 변화의 시기, 전 세계 언론이 당황하고 있습니다.”

가짜뉴스의 범람, 인공지능(AI)의 진화, 그리고 유튜브 등 유사 언론의 등장. 김효재(72)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은 언론의 지위와 위상이 유례없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상황을 이같이 진단했다. 신문기자를 시작으로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과 국회의원 등을 거치며 언론인이자 행정가로 40년 이상 활동한 전문가의 우려다. 이런 미디어 환경 속에서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하는 국내 유일 미디어 월간지 ‘신문과방송’이 지난 1일 창간 60주년을 맞았다. 1964년 ‘신문평론’이라는 이름으로 출범했으나 1976년 11월호부터 ‘신문과방송’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12년 사이 언론으로서 방송의 역할이 증대됐다는 방증이었다. 그리고 다시 48년이 흘렀다. 지금도 여전히 언론의 중심을 ‘신문과방송’이라 할 수 있을까? 이 무겁고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지난 19일 김 이사장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내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만났다.

―60년 전과 비교해 신문과 방송의 역할은 바뀌었나.

“언론의 역할은 과거와 지금 모두 같다. 다만 언론이 처한 환경을 정확히 봐야 한다. 기성 언론의 매체력은 현저히 감소했다. 인쇄매체와 영상매체를 거쳐 이제 모바일로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 60년을 기준으로 볼 때, 지난 59년의 변화와 최근 1년의 변화는 질적·양적으로 전혀 다르다. 기계가 언론을 대체하는 수준까지 왔다. 혁명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인데, 정작 언론이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정확하지도 않다. 그래서 지금은 전 세계 언론이 당황하면서 대응책을 모색하는 시기다.”

―현재 언론이 놓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진실이다. ‘이것이 팩트인가’라는 궁극적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한다. 진실을 토대로 한 언론의 책임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요즘 언론이 양적으로 많아졌는데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품격은 떨어진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통상 스마트폰을 통해 뉴스가 전파되는데, 어느 집안의 가정사를 다루는 등 가십에 집착한다. 책임 있는 언론사들이 이렇게 품격을 지키지 않으면서 남들을 탓할 순 없다. 진실보다 중요한 덕목은 없는데 이슈만 좇는 형국이다.”

―언론이 취재해 진실을 담은 뉴스와 가짜뉴스가 혼재되고 있다.

“가짜뉴스는 인류 시작 이래 계속 있었다. 서동요가 대표적인 가짜뉴스가 아닌가. 결정적인 차이는 ‘운반 수단’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과거의 가짜뉴스가 1회적이었다면, 요즘은 기계를 통해 무차별·무제한으로 반복 재생산한다. 아무리 ‘거짓말이다’라고 알리고 다녀도, 그런 진실은 순식간에 날아가 버린다. 그래서 지금은 가짜뉴스를 대하는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일단 가짜뉴스가 유포되면 이를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가짜뉴스를 접한 대중이 이를 진짜뉴스와 가려낼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도와야 한다. 그리고 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

―생성형 AI의 등장도 언론 환경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향후 어떤 시장이 펼쳐질까.

“예측하기 어려운 분야다. 그동안 기계는 인간의 기사 작성을 돕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챗GPT 등은 다르다. 기자들이 피땀 흘려 만든 텍스트를 무한 반복해 익힌 후 이를 또 다른 형태의 콘텐츠로 가공해 내놓고 있다. 여기서 ‘이 텍스트의 저작권자가 누구인가’라는 문제가 대두된다. 그래서 뉴욕타임스(NYT)를 비롯해 전 세계 언론이 AI의 뉴스 콘텐츠 활용에 대해 ‘돈을 내라’고 하고 있다. 미국 법원에서 이를 두고 재판 중인데 그 결과에 따라 뉴스가 제값을 받을지 여부가 판가름날 거다.”

―그 반작용으로 유력 플랫폼들이 뉴스 콘텐츠를 아예 배제시키려는 움직임도 있다.

“챗GPT를 비롯한 플랫폼들에 ‘뉴스 콘텐츠를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고 하니, 각 플랫폼이 아예 뉴스 콘텐츠를 배제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구글의 경우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뉴스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각 나라가 이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다. 유럽연합(EU)의 경우 거대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강력한 제재 플랫폼 법안을 내놨다. 반면 미국은 자국의 기업이 보유한 플랫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산업적 측면에서 함부로 제한하지 못하는 모양새다. 우리는 묘하게 중간에 끼어 있다. 다른 국가와 달리 토종 플랫폼 기업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 나라의 변화를 면밀하게 살펴본 후 사안별로 정교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재단이 최근 ‘AI시대 뉴스저작권 포럼’ 발족식을 가졌다. 향후 어떤 활동을 하나.

“뉴스 콘텐츠의 제값을 받자는 취지다. 땀 흘려 만든 뉴스를 플랫폼들이 공짜로 쓰고 생성형 AI에 활용하는데 ‘얼마만큼 썼는지 정확히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 신문협회의 주장이고, 재단 역시 그 주장이 맞다고 본다. 궁극적으로는 플랫폼의 이익을 대변하는 거대 로펌과의 전쟁이 될 것 같다. 미국도, 우리 언론도 뉴스 콘텐츠를 지키고 제값을 받기 위해서는 플랫폼이 내세운 변호인들과 큰 전쟁을 한판 벌여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언론 재단은 여러 유관 단체와 힘을 합쳐 대응하기 위해 이 포럼을 만들었다.”

―재단은 뉴스 정보를 활용한 대화형 AI인 ‘빅카인즈 AI’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는 생성형 AI와 어떻게 다른가.

“빅카인즈는 이른바 ‘환각 현상’(생성형 AI가 절대적 정확성보다는 통계적으로 추정치를 추구하면서 발생하는 오류)이 없는 AI다. 몇몇 AI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면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한다. 끝까지 파고 내려가면 근거가 없는 주장일 때가 많다. 하지만 빅카인즈는 철저하게 기사를 기반으로 답을 찾기 때문에 답변에 근거가 있다. 다만 규모가 아직 작다. 1990년 이후 기사 8200만 건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아직 AI라고 보기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현재 확보된 기사를 바탕으로 정확한 답변을 해줄 수는 있지만 아직은 규모 면에서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그래서 각 언론사의 디지털화를 지원하면서 더 많은 데이터를 축적한 빅카인즈를 준비하고 있다. 관련 예산도 편성했다.”

―가짜뉴스나 AI 문제는 방통위에서도 이제 자주 다루고 있다. 앞서 방통위원에 이어 언론진흥재단을 맡게 되면서 시너지 효과가 날 것 같다.

“방통위는 규제 기관, 법집행 기관이다. 반면 이곳은 진흥 기관이다. ‘언론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를 고민한다는 측면에서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언론사에 입사해 신문기자로 활동하다가 40여 년이 흐른 후 언론을 돕는 공직을 맡게 된 것이 영광이다. 제가 기자 생활할 때 기자와 언론사를 바라보는 시각과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부정적 여론이 적잖은 것에 대해 선배 언론인 출신으로서 약간의 죄스러움도 있다.”

―재단이 올해 새롭게 추진하거나 강화하는 언론진흥 사업은 어떤 것인가.

“AI 시대에 발맞춘 저작권 보호, 미디어 교육을 역점 사업으로 삼고 있다. 요즘 저출산 문제가 국가적 과제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초등학교에서 하교 후 아이들을 돌봐주는 늘봄학교를 진행하는데, 여기에 미디어 강사를 파견하려고 한다. 또한 지방 언론사들을 도울 방안을 찾고 있다. 언론인들의 견문을 넓히기 위한 해외 연수도 늘리고 있는데, 정작 지방사의 지원은 뜸하다. 워낙 인력이 적기 때문에 연수를 보낼 여력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언론인들이 전 세계에 나가 공부를 하고 이런 내용을 전파하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지원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정부광고 집행은 재단의 주요 업무 중 하나다. 현 재단의 정부광고 집행 방향성과 기준은 무엇인가.

“정부광고 집행은 공공의 영역이기 때문에 투명하고 공정하게 해야 한다. 재단은 방향성을 갖기보다는 광고주의 요구에 충실하려 한다. 재단은 광고를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광고주의 요구를 대행할 뿐이다. 재단의 광고 취급액이 제일기획, 이노션 등에 이어 4위라고 하더라. 그만큼 책임도 크다. 재단의 경우 공공의 영역에서 움직이는 것이니 당연히 공공성에 초점을 맞춘다.”

―언론 위기의 시대, 언론이 궁극적으로 할 일은 무엇일까.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현저히 떨어졌다. 어찌 보면 대중은 언론의 ‘객관성’이 싫은 거다. 대중은 점점 더 믿고 싶은 것만 보고 듣는다. 언론의 드라이한(중립적인) 평가 자체가 싫은 거다. 그런 대중의 입맛에 맞춰 언론도 저마다 정파성을 띠는데 이를 극복해야 한다. 과거에도 언론사마다 성향은 보였지만, 기본적으로 언론은 권력의 감시자여야 한다. 나팔수가 되면 안 된다. 이렇게 원론적인 답변밖에 할 수 없지만, 이런 본질을 찾기 위해 환경 변화에 당황하는 언론들도 그에 발맞춰 대응책을 찾고 있다. NYT를 비롯해 몇몇 유력 매체가 이런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하듯 우리 언론도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

뉴스읽기 공모전·팩트체크 대회… ‘가짜뉴스 분별’ 교육 강화

■ 재단의 ‘AI시대 대응’ 사업

무분별한 인공지능(AI)의 활용과 가짜뉴스의 확산은 진실의 눈을 가리고 언론에 대한 신뢰도를 추락시키는 주된 요인이다. 특히 AI로 정교하게 조작된 가짜뉴스를 진짜뉴스와 단숨에 가려내는 건 쉽지 않다. 김효재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은 결국 교육에서 나온다고 강조한다.

그 일환으로 재단은 ‘뉴스읽기 뉴스일기 공모전’이나 ‘청소년 뉴스 체커톤 대회’를 꾸준히 개최하고 있다. 이는 학창시절부터 ‘읽는 힘’을 길러주고 진실을 찾는 눈을 뜨게 하기 위함이다.

김 이사장은 “가짜뉴스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다면 예방이 답이다. 유포를 막자는 것이 아니다. 사용자들이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 즉 가짜뉴스를 가려낼 수 있는 근육을 길러줘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계산기가 나오며 암산 실력이 약해지고, 내비게이션이 생기며 독도법이 사라지듯, 스마트폰 때문에 책을 읽는 힘이 약화되고 있다. ‘읽는다’는 것은 액티브한 행위인데 ‘본다’는 것은 소극적이다. 스마트폰의 화면은 그림에 가깝다. 무심코 보면서 스크롤을 올리면 다 잊어버린다. 그래서 뉴스를 보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비판적 안목을 초등학교 때부터 길러줘야 한다”고 말했다.

재단은 이런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 하반기에는 경기도교육청과 손잡고 학교에 가서 미디어 강사들이 관련 교육을 실시하는 프로그램을 시범적으로 운영하려 한다. 다음 달에는 이를 위한 양해각서(MOU)도 체결한다. 시범 사업이 제대로 작동하면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핀란드는 교육을 통해 가짜뉴스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는 데 성과를 거둔 국가로 손꼽힌다.

김 이사장은 “핀란드는 10년 전부터 ‘멀티리터러시’라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초·중·고교에서 관련 내용을 배우는 과목을 신설하고 해당 교육을 의무화했다. 한 연구 기관에 조사에 따르면, 핀란드 청소년들의 가짜뉴스 판별 능력이 세계 1위라고 한다. 한국도 그런 교육이 필요한 때”라면서 “이제는 딥페이크를 이용해 영상으로도 가짜뉴스가 생성된다.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를 이용한 가짜뉴스로 소동이 나지 않았나? 이처럼 가짜뉴스는 더 정교해지고 있고, 사전 단속이 불가능의 영역에 가깝다. 쫓아다니며 막을 수는 없지 않나. 결국은 사전 교육이 답이다”라고 강조했다.

△1952년 충남 보령 출생 △고려대 사회학과 졸업 △조선일보 논설위원 △18대 국회의원 △청와대 정무수석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