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시렁] 코로나 학번 틈에 잠입한 아저씨, 산악부 면접 보다

윤성중 2024. 4. 24.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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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동아리 박람회를 가다
산에 가서 등산만 하고 오는 건 싫은 남자의 등산 중 딴짓

"최근 당신을 설레게 한 건 무엇이었습니까?"

나는 지금껏 이 질문을 여러 사람에게 했다. 질문을 받은 사람 거의 모두 머뭇댔다. 그중 "모르겠다"고 답한 사람이 무려 90%를 차지한다. 머리가 살짝 어지럽고,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가고 싶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가슴이 쿵쾅거리면서 심박수가 치솟아 곧 폭발할 것같은 상태를 설렘에 빠졌을 때 나타나는 생리 현상이라고 해도 될 텐데,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경험과 기분은 확실히 아무 때나 가질 수 없다. 그러니까 '설렘'은 보석 같은 감정이다. 이것에 가격을 매기면 얼마일까? 나는 최근 오랜만에 설렘을 느꼈다. 근 5년 만이었는데, 5년 동안 내가 번 돈이 5억 원 정도니까, 지난 5년 동안 이 설렘을 위해 살았다는 기분까지 들었으니, 설렘의 가격은 5억 원이라고 하자! 그렇다. 설레는 기분을 얻은 순간 나는 부자가 된 것 같았다.

봄이었다. 거리에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기분이 좋아서 사무실로 들어가기 싫었다. 산에 가는 것도 좀 그랬다. 땀이 나서 면바지가 젖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면바지가 젖으면 기분이 나쁠 것 같았다. 나는 점심을 먹고 홍익대학교로 갔다. 교정을 걷는 대학생들의 표정을 보면 기분 좋은 상태가 오래 지속될 것 같았다.

정문 오른쪽이 시끌시끌했다. 테이블이 여러 개 펼쳐져 있었고 테이블마다 학생들이 모여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어떤 학생은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불렀고, 어떤 학생은 쌓아놓은 기왓장을 손으로 내리쳐 깼다. 그걸 본 다른 학생들은 소리를 질러댔다. 체육관 앞은 아주 시끄러웠다. 실내로 들어가는 입구에 '동아리 박람회'라고 쓰여 있었다. 흥미로웠다. 기분이 아까보다 더 좋아졌다. 축제가 열리는 행사장에 온 것 같았다. 한껏 고양된 기분이 나를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나는 홍익대 재학생처럼 행동하기로 했다. '산악부에 가입해 보자!' 나는 대담해졌고 산악부 테이블을 찾아 두리번댔다.

얼마 안 가 산악부라고 쓰인 테이블 앞에 섰다. 테이블 위에는 로프와 헬멧, 주마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썰렁했다. 꽁지머리를 한 남학생이 나를 쳐다봤다. 그가 말했다.

"어서 오세요. 산악부 가입하려고요?"

얼떨떨해진 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네." 그러자 꽁지머리 학생이 설명했다.

"산악부에 가입하면 클라이밍을 해요. 백패킹도 하고요."

그는 나를 의심하는 기색 없이 말했다. 갑자기 자신감이 솟구쳐 꽁지머리 학생에게 질문을 퍼부어댔다.

"산에 매주 가나요? 백패킹이나 암벽등반도 하나요? 회원이 몇 명이죠? 술을 자주 마시나요?"

그가 대답했다.

"네, 산에 가긴 하는데, 여기는 클라이밍반이랑 산악반이랑 나뉘어 있어요. 클라이밍반은 주로 실내 암장에서 운동을 하고요, 산악반은 백패킹을 하거나 암벽등반을 해요. 지금 재학생 회원은 40명 정도 돼요. 그중 자주 나오는 사람은 10명 정도 되고요. 술은 자주 안 마셔요. 아주 가끔 모였을 때 조금 하는 정도요."

나는 놀라는 척하면서 다시 물었다.

"재학생이 40명이나 된다고요? 그럼 졸업한 사람들도 있나요?"

그가 대답했다.

"네, 졸업한 형들도 가끔 만나는데, 거의 보질 못했어요."

꽁지머리 학생이 나에게 질문했다.

"실례지만 나이가 몇이죠? 몇 학번이에요?"

나는 거짓말을 했다.

"스물아홉 살이에요. 18학번 법학부요."

그는 기뻐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반대로 나는 신이 나서 산악부에 가입하겠다고 했다. 꽁지머리 학생이 테이블에 놓인 QR코드를 가리켰다.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스캔하니 산악부 입회 신청을 할 수 있는 문서가 나왔다. 질문 사항에 따라 답변을 기입하고 '신청하기' 버튼을 눌렀다. 완료. 꽁지머리 학생이 말했다.

"입회 면접을 볼 거예요. 아마 회장이 연락할 겁니다."

나는 알겠다고 하고선 체육관에서 나왔다.

쿵쾅대는 가슴을 안고 나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회사 막내 기자(조경훈 기자는 작년에 대학교 졸업했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경훈아, 나 방금 홍익대학교 산악부 입회 원서 썼어. 면접 봐야 한대.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줘."

조경훈 기자는 웃었다. 그는 즉석에서 대본을 만들었다.

"선배, 선배는 지금 18학번이고요.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군 입대를 한 거예요. 제대를 하고선 코로나가 터져서 호주로 유학을 갔고요, 작년 말에 귀국해 이제 막 학교에 다시 온 겁니다. 아, 호주 어디서 공부했냐고 물으면 '퍼스'라고 대답하면 될 것 같아요. 그러면 더 이상 캐묻지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거긴 별로 유명하지 않거든요."

나는 알겠다고 했다. 조경훈 기자에게 '코로나 학번'에 관한 정보도 얻었다. 코로나 학번은 코로나가 발병한 이듬해인 2020년부터 대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을 말하는데 20~21학번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 시기에 복학한 15~19학번도 코로나 학번이라고 할 수 있다. 조경훈 기자에 따르면, 이들은 학교 다니는 게 딱히 재미있지 않았다. 강의실은 텅텅 비어 있었고, 도서관만 문을 열었는데, 그마저도 거리두기 제한 때문에 학생들이 드문드문 열람실에 앉았다. 자취방에서 친구들이 모여서 하는 이야기의 거의 대부분은 "코로나 대체 언제 끝나냐?"거나 혹은 취업 관련 대화였다. 그때를 회상할 때 떠오르는 배경색은 늘 우중충한 회색이다. 비는 내리지 않고 컴컴하기만 한 우울한 회색빛 구름. 조경훈 기자가 덧붙여 설명했다.

"그때와 지금은 극과 극이에요. 지금은 들썩들썩 댑니다! '미친' 분위기예요."

얼마 후 스마트폰으로 문자가 왔다.

"안녕하세요, 산악부 면접 오늘 6시 20분에 시간 괜찮을까요? 학생회관으로 오시면 됩니다."

나는 가겠다고 답장했다. 기다리면서 내내 초조했다. 손과 발이 가만히 있질 못했다. 면접 보기 30분 전, 나는 사무실에서 나와 택시를 탔다. 쏜살같이 홍대 정문으로 갔다. 떨렸다. 뛰지 않았는데도 숨이 찼다. 나는 계속 크게 숨을 내쉬고 뱉었다. 오후 6시 10분. 학생회관 산악부실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두 명의 학생이 큰 테이블 뒤에 앉아 있었다. 나는 쭈뼛대며 그들에게 말했다.

"저, 면접 보러 왔는데요."

그들 중 한 명이 말했다. "앉으세요."

내 옆에 의자가 세 개 더 있었다. 두 명이 더 면접을 보러 온다고 했다. 나는 이전보다 더 떨었다. 한쪽 손과 발이 떨리는 게 그들에게 들킬까봐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가 내뱉었고, 손으로 다른 손을 꽉 붙들었다. 면접을 보러 온 또 다른 학생 두 명이 동아리방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내 옆에 나란히 앉았다. 면접관이 말했다.

"산악부 지원해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자, 이제 면접을 보겠습니다. 먼저 공통 질문으로 자기 소개 부탁합니다."

내가 첫 번째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법학부 18학번, 2학년에 재학 중인 윤성중입니다."

면접관의 표정은 무심했다. 옆에 앉은 학생들도 대답했다.

"22학번 경영학과 ○○○입니다."

"24학번 미술대학 자율전공 ○○○입니다."

이어서 면접관이 말했다.

"그럼, 등산반에 지원한 분 먼저 이야기 들어볼게요. 등산반 지원 이유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등산반에 지원한 경영학과 학생이 대답했다.

"음, 음. 평소에 등산하는 거 좋아하는데요, 보통 혼자 갔습니다. 이번에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게 됐어요. 같이 등산 좋아하는 분들끼리 산에 가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 지원했습니다. 서울에 있는 산은 거의 다 가봤고, 한라산은 아직 못 가봤습니다. 올해 한라산 가는 게 목표입니다."

면접관이 또 물었다.

"저희 산행은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진행할 거예요. 격주로요. 필참! 꼭 참석해야 하고요. 시간 괜찮을까요?"

경영학과 학생이 대답했다.

"네, 금토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다음, 면접관이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저기, 선배님, 혹시 산악부에는 왜 가입하고 싶으세요?"

나는 대답했다.

"네,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산에 가는 사람들 많이 봐서요. 학교에도 그런 모임이 있을까 싶어 찾아봤는데, 오늘 아침 보니까 있더라고요! 아까 설명 참 잘 해주셨어요."

면접관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질문했다.

"저희가 암벽반이랑 등산반이랑 구분이 되어 있는데, 혹시 등산에 더 관심이 많으신가요? 입회 신청서엔 암벽반에 들고 싶다고 쓰셨는데(암벽반은 실내 클라이밍 활동을 주로 한다)."

나는 말했다.

"아, 저는 둘 다 하고 싶습니다! 익스트림한 거 좋아합니다!"

면접관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다음, 면접관은 미술학도를 보면서 질문했다.

"클라이밍반에 지원하셨는데, 홍대하고 강남 둘 중 어디에서 클라이밍하기 더 편하세요? 클라이밍장에 갈 때 돈이 좀 드는데, 개인 지출을 해도 상관없으세요?"

미술학도가 대답했다.

"저는 아무 데나 다 좋습니다. 제 돈 내고 가도 상관없어요."

면접관이 말했다.

"저희가 준비한 질문은 다 끝났고요. 궁금하신 게 있을까요? 결과 발표는 금요일이에요. 전화로 연락드릴게요."

동아리방 안이 잠잠해졌다. 면접이 짧게 끝나 실망한 나는 손을 들어 말했다.

"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면접관은 놀랐다는 듯 눈이 동그래졌다.

"네, 말씀하세요."

"저, 떨어질 수도 있나요?"

면접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면접관이 근엄하게 말했다.

"지금 클라이밍반이랑 등산반이랑 나눠서 배분을 하긴 할 건데, 한쪽에 너무 몰리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나는 또 질문했다.

"지금 혹시 몇 명 지원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면접관은 당황한 것 같았다. 면접관이 말했다.

"10명? 아니, 아니! 지금 말씀드리긴 좀 그렇고요. 두 반 합해서 20명 정도 뽑을 겁니다. 지금 간당간당하네요."

이어서 나는 대답했다.

"저는 아무 반이나 좋습니다! 사람 적은 반에 넣어주세요!"

면접관이 웃었다. 나도 웃었다. 이어서 면접관이 말했다.

"이제 면접은 끝났고요, 저희끼리 어떻게 할지 얘기를 좀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나와 경영학과 학생, 미술학도는 우물쭈물 동아리방에서 나왔다. 떨렸던 손과 발이 진동을 멈췄다. 다시 대학생이 된 것 같았다. 낮에 본 파란 하늘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에필로그>

면접을 마치고 나는 곧바로 다시 동아리방으로 들어가 신분을 밝혔다.

그들은 황당해 했다. 그러면서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다음은 홍익대 산악부 대장 21학번 신경철 학생과 나눈 대화를 요약한 것이다.

현재 홍익대학교 산악부 재학생 회원 수는 40명 정도 된다. 하지만 그중 산에 다니거나 동아리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학생 수는 5명 정도다. 지금 회원 수가 많아진 건 코로나 시대가 끝나고 클라이밍장(실내 암장) 이용자들이 늘어난 덕분이다. 회원 수가 많지만 회원끼리 자주 만나지는 않는다. 동아리방에서 음주 행위는 금지됐고, 학생들조차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추세다. 회원간 유대가 옛날처럼 끈끈하지 않다. 홍익대학교 산악부는 한때 재학생 회원 수가 줄어 기수가 끊어지다시피 했다. 2018년쯤엔 동아리방이 없어졌다가 졸업생 회원들의 노력으로 작년에 학생회관 4층에 작은 방을 얻었다(달리기 동아리가 쓰던 방이었다).

내가 진짜 홍익대학교 18학번 재학생이었다면 그는 나를 산악부 신입회원으로 뽑았을까? 물어보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 합격했을 거예요. 2학년이라면 앞으로 산악부 활동을 오래 할 수 있을 테고, 또 우리가 하자는 것,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잘 따라올 것 같았어요. 아, 그리고 기자님이 우리 학교 학생이 아니라는 의심은 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학교에 만학도가 꽤 있으니까요. 대신 어떻게 수년간 휴학을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긴 했어요."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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