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 갈등’ 봉합 한미그룹, 경영권 매각할까

문상현 기자 2024. 4. 24.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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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약품그룹 오너 일가의 분쟁이 일단락됐다. 그러나 갈등의 핵심 배경인 상속세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오너 일가의 경영권 통매각 가능성이 관측되는 이유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한미약품 본사.ⓒ연합뉴스

올해 초부터 재계 관심을 받은 한미약품그룹(한미그룹) 일가의 갈등은 ‘경영권 분쟁 역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였다. 별세한 회사 창업주의 배우자-장녀(모녀 측), 장남-차남(형제 측) 연합전선이 꾸려져 대립했다. 재무적 투자자가 아니라 주력 사업(바이오)과 거리가 먼 전략적 투자자(OCI그룹)와 손잡고 회사 지배구조 개편, 경영권 장악을 시도한 것도 전례 없는 일이었다(〈시사IN〉 제861호 ‘모자의 난 부른 한 지붕 두 가족 전략’ 기사 참조).

한미그룹 분쟁의 승자는 형제 측이 되었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 결과다. 지분 대결이 펼쳐진 3월28일 정기주주총회가 임박한 시점까지, OCI그룹과 통합을 추진한 한미그룹 모녀 측 지분은 35%, 반대하는 형제 측 지분은 28.42%였다. 그러나 주총을 사흘 앞두고 형제 측이 지분을 40.57%로 늘리면서 역전했다. 분쟁 과정에서 줄곧 중립을 지키던 한미그룹 2대 주주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지분율 12.15%)이 형제 편에 섰다.

모녀 측은 곧바로 반격했다. 그룹 경영 주도권을 가지고 있던 모녀 측은 주총 직전 형제들을 회사 임원직에서 해임했다. 지분 7.66%를 가진 국민연금공단이 모녀를 지지하면서 모녀 측 지분도 42.66%로 늘었다. 한미그룹 사우회도 모녀 편에 섰다. 주총 당일 모녀 측과 형제 측이 최종 확보한 지분은 44.39%(모녀 측) 대 41.88%(형제 측). 모녀 측이 우위에 섰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주총에선 형제 측이 제시한 안건 5개(신규 이사 선임 주주제안 5건 등)가 각각 51~52% 안팎의 찬성표를 얻었다. 모녀 측 안건(신규 이사 선임안 6건 등)에 대한 찬성은 모두 47~48% 수준에 머물렀다. 형제 측이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과반(9명 중 5명)을 확보하면서 경영 주도권을 쥐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과 한미그룹 측에 따르면, 결정적으로 승패를 가른 건 특수관계인, 특히 모녀 측 우호 지분에 포함돼 있던 오너 일가의 일부 친인척(약 3.03%)의 이탈표로 추정된다. 실제 주총 바로 전날 친인척 일부가 형제 측을 지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 바 있다. 당초 캐스팅보터로 평가된 소액주주들은 참여도가 낮았고, 이해관계에 따라 쏠림 없이 형제 측과 모녀 측으로 갈렸다고 분석됐다.

3월21일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임종윤 한미약품 대표이사(왼쪽)와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 이들은 그룹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과반을 확보하면서 경영 주도권을 쥐었다.ⓒ임종윤 측 제공

형제 측은 4월4일 첫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를 열었다. 대규모 인사가 단행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으나 형제 측은 갈등을 빚은 모친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한미사이언스 대표)과 장녀 임주현 한미그룹 부회장의 직을 그대로 유지했다. 형제 측 장남인 임종윤 이사는 제약·바이오를 담당하는 한미약품 대표이사에, 차남 임종훈 이사는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에 선임하기로 했다. 차남은 모친 송영숙 회장과 한미사이언스 공동대표를 맡게 되었다. 사실상 가족 간 갈등 봉합이다.

형제가 모녀에게 손 내민 까닭

형제 측이 모녀 측에 손을 내민 이유는 상속세 문제 해결을 위한 동맹으로 해석된다. 당초 이번 한미그룹 갈등은 창업주의 갑작스러운 사망,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 대규모 상속세 납부를 앞두고 현금 여력이 없는 오너 일가의 문제 등에서 출발했다. 송영숙 회장도 상속세 재원 마련을 고심하다가 OCI그룹과 통합을 결정했다고 직접 밝힌 바 있다. 송 회장 및 자녀들이 부과받은 상속세는 총 5400억원. 송 회장이 2200억원, 자녀 3명이 각각 1000억원 안팎이다.

상속세는 하나의 납세의무를 여러 사람이 함께 짊어지는 연대 납부 대상이다. 공동상속인 중 한 명이 상속세를 내지 못하면, 세무 당국은 다른 상속인의 재산을 압류하거나 담보로 받은 주식을 반대매매 할 수 있다. 장남 임종윤 사장은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올해분 상속세를 납부했다. 차남도 납부 예정으로 알려졌다. 형제 측이 상속세를 모두 내도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모녀 측이 상속세 납부 대안으로 OCI그룹과 통합을 주도했다. 하지만 통합이 무산되고, 형제 측은 연대 납부 의무가 있는 만큼 이제 모녀 측 상속세도 해결해야 한다. 가족 간 갈등 봉합이 불가피한 이유다.

상속세는 회사가 아닌 오너 일가 각자가 개별적으로 자금을 유치해야 한다. 오너 일가는 주식담보대출을 이미 한계치까지 받은 상황이라 현재로선 회사 지분 매각이 유일한 대안이다. 실제 주총 직후 상속세 문제를 풀기 위해 형제 측이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와 손잡고 지분을 매각할 것이라는 전망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형제 측은 말을 아끼지만, 금융투자업계에선 특정 사모펀드와 형제 측의 구체적 가격 협상 내용 등이 알려지고 있다. 주총에서 형제 측을 지지한 한미그룹 2대 주주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 특수관계인(친인척)의 지분 매각 관측도 나온다. 형제 측이 주총 전 자신들이 승리할 경우 신 회장과 친인척의 지분을 비싼 값에 매각할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해, 이들이 형제 측에 섰다는 해석이 있다.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왼쪽)과 임주현 부회장(오른쪽)은 올해 초부터 한미그룹과 OCI그룹 통합을 추진해왔으나 3월28일 주총 표 대결에서 그룹 통합이 최종 무산됐다. ⓒ연합뉴스

다만 글로벌 사모펀드는 통상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있는 회사의 경우 지분 일부만 사지 않는다. 회사 지배력을 가진 지분 수준, 즉 경영권 거래를 요구한다. 추후 문제없이 비싼 가격에 매각하기 위해서다. 현재 형제 측과 모녀 측이 보유한 지분을 따로 떼면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다. 글로벌 사모펀드에게서 추후 지분을 되사거나 경영권을 보장하는 방식 등 안전장치를 마련하려면 가족 간 협력이 필요하다.

형제 측 주도로 한미그룹 오너 일가 지분을 글로벌 사모펀드에 매각하면 ‘통매각’ 수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우선 형제 측이 글로벌 사모펀드에 주식을 다시 사들일 수 있는 조건을 붙여서 매각하고, 추후 경영권을 다시 매입해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현재로선 한미그룹 오너 일가가 상속세 납부 후 경영권을 되사올 만큼의 현금이 생기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형제 측이 상속세 문제를 해결한 뒤 다른 전략적 투자자(SI)를 끌어와 경영권을 다시 사들이는 방안을 택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 경우 사실상 OCI그룹과 통합하는 대안에서 달라지는 게 없는 만큼 비판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한미그룹은 상속세 재원 마련을 포함해 그룹 경영 방향에 대해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라고 밝혔다.

문상현 기자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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