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만나서 얘기해볼까? [K콘텐츠의 순간들]

복길 2024. 4. 24.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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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는 출연자들의 ‘이념’을 게임의 도구로 사용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는 것’이 목적의 전부였던 기존 서바이벌 쇼와는 다른 점이 많다.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출연자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웨이브 제공

내가 휴대전화 화면에 집중할 때마다 친구는 단속하듯이 말한다. “트위터 좀 관둬.” 꽤 오래 전부터 들어왔던 말이지만 말투에서 느껴지는 뾰족한 가시 때문에 나는 번번이 “왜?” 하고 반문한다. 친구가 생각하는 트위터는 ‘나와 비슷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로만 클러스터를 형성할 수 있는 편협한 SNS’다. 올해로 트위터 계정을 운영한 지 9년째인 나는 친구의 이런 해석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늘 작은 변명을 한다. ‘사람에겐 때때로 편협함이 필요해!’

나는 편협하다. 그건 오늘의 뉴스를 다른 커뮤니티의 필터로 보고 싶지 않다는 말로도 대신할 수 있다. 나는 가급적 내 기분을 내가 만든 트위터 타임라인 안에 가두려 한다. 나는 나와 같은 지점에서 분노하고 긍정하는 의견만 보기를 원하며, 의미 있다고 판단되는 논쟁만 하기를 원한다. 좌표가 너무 다른 의견은 그것에 왜 동의할 수 없는지 생각하기 이전에 마주하는 것조차 싫어서 기피하게 된다. 편협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남의 궤변을 견뎌야 한다고? 그보다 끔찍한 일은 없을 것이다.

웨이브 오리지널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이하 〈더 커뮤니티〉)는 나처럼 편협한 사고를 안락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겐 ‘끔찍한’ 예능이다. 〈더 커뮤니티〉는 출연자 12명이 제한된 공간 안에서 정해진 룰을 따르고 매일 주어지는 미션들을 수행하면서 최후의 승자가 상금을 획득하는 서바이벌 쇼다. 하지만 비슷한 포맷인 〈더 지니어스〉 〈소사이어티 게임〉 등과 달리 이 쇼는 출연자들의 ‘이념’을 게임의 도구로 사용한다. 〈더 커뮤니티〉는 인간의 가치관을 정치·계급·젠더·개방성 총 4개 영역으로 나눈다. 출연자들은 사전 테스트를 통해 ‘좌파와 우파’ ‘서민과 부유층’ ‘페미니즘과 이퀄리즘’ ‘개방과 전통’ 항목으로 ‘사상 점수’를 부여받는데, 이는 다른 출연자들에겐 노출되지 않는다. 그래서 출연자들은 상대의 화법과 행동, 습관을 유추해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려 하고, 동시에 그들을 견제하며 자신의 정체성도 최대한 숨기려 한다.

〈더 커뮤니티〉의 초반 에피소드는 ‘페미니스트’ ‘차별주의자’ ‘금수저’ ‘자수성가형 인물’ 등 각자가 살아온 환경에 따라 어떤 가치관이 형성되었으며, 또 그 가치관이 인물들의 행동에 어떻게 드러나는지 관찰하는 데에서 흥미를 발견한다. 숨기려 하지만 결국 드러나는 출연자들의 정치적 관점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이입할 인물을 선택하게 되고, 인물 간의 갈등 상황에서 각자가 가진 이념이 어떤 판단을 내리는지, 또 그것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확인하며 쾌감을 얻는다.

익명 채팅방 통해 확인되는 ‘편견의 기호’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출연자들이 익명 채팅을 하고 있다. ⓒ웨이브 제공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는 것’이 목적의 전부인 기존 서바이벌 쇼와 달리 〈더 커뮤니티〉는 모든 출연자가 ‘공동체의 유지’와 ‘공동의 이익’을 위해 선택하고 행동한다. ‘이기는 것’보다 ‘왜 이겨야만 하는지’와 같은 토론이 밤마다 열리기 때문일까? 아니면 매일 얼굴을 맞대고 함께 커뮤니티를 꾸려야 하기 때문일까? 커뮤니티를 유지하려는 출연자들의 행동은 그들이 가진 이념과 구분되어 나타나고, 그 경계가 사라진 틈을 타 출연자들은 완전히 대척점에 있다고 여긴 사람과 손을 잡기도 하고, 나와 가장 닮은 사람이라 생각했던 이를 배신하며 타인과의 거리를 자유롭게 좁히고 넓히는 경험을 한다.

〈더 커뮤니티〉는 자신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것이 금기나 다름없는 한국 사회를 거울처럼 비추는 예능이다. 그 근거는 이 쇼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익명 채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참가자들은 매일 밤 각자의 방에서 익명 채팅에 참여한다. ‘데이트 비용을 많이 내는 남성이 더 섹시하다’ ‘국가 발전에는 유능한 독재자가 필요한 시기가 있다’ 등 사람들이 감정적인 논쟁을 할 만한 주제가 던져지면, 평화로웠던 현실의 커뮤니티와 달리 익명 채팅방은 금세 과격한 의사 표현과 상대에 대한 조롱이 난무한다. 〈더 커뮤니티〉는 이 익명 토론들을 통해, 그 자체로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된 인터넷 익명 ‘커뮤니티’의 이름이 현실과 동떨어진 편견의 기호로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시킨다.

그러나 동시에 이 프로그램은 모든 이들의 입장을 ‘다름’으로 인정해야 하기에, ‘혐오’마저 하나의 주장으로 받아들이며 의견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될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혐오를 방관한다. 물론 ‘하마’ 같은 출연자가 그것이 혐오인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며 성공적으로 방어하지만, ‘모든 생각을 존중한다’는 이 기계적인 세팅은 자칫 약자와 그의 연대자들이 희생과 투쟁으로 만들어온 가치를 원점으로 돌릴 수 있다. 관점을 이유로 질서를 후퇴시키는 의견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정체를 숨겨야 하는 공간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이념을 관철하기 위해 상대에게 적대감을 품고, 내가 믿는 것을 다소 지저분한 방식으로 주장하곤 한다. 그러나 내가 적대심을 가졌던 이념과 가치가 한 사람의 얼굴 그리고 그 얼굴이 가진 이야기가 되어 눈앞에 나타난다면? 생각보다 갈등은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로 쉽게 해소된다. 〈더 커뮤니티〉의 출연자들이 보여준 이런 행동 양상은 그들의 속마음 인터뷰와 함께 겹쳐지면서, 사회의 갈등이 복잡할수록 그 해결법은 익명 공론장이 아닌 사람 간의 직접적 대화에 있음을 말한다. 다른 이들의 삶과 생각을 느끼고 그 차이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것은 내게도 세상에도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준다. 내 연인이 다른 사람의 깻잎을 떼주어도 되는지에 관한 논쟁도 즐겁지만, 가끔은 이렇게 너무 무거워서 피하고만 싶은 주제를 파고들어보자. 〈더 커뮤니티〉는 그것이 생각보다 그렇게 피곤하거나 힘들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종영했다.

복길 (자유기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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