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체기계 30년 전문가 "사회복지 기여하는 기술개발"

정영희 기자 2024. 4. 24.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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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장춘만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성실함 무기로 쌓아 올린 연구 성과
장춘만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사진 = 정영희 기자
한 분야에 30년 이상 몸 담은 이들을 흔히 베테랑이라고 부른다. 단순히 일을 오래 지속한 것을 넘어 직업을 진심으로 대하고 사랑해야 하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단어다.


'송풍기 연구' 하나로 혈혈단신 일본행


유체기계의 베테랑 장춘만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박사)은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송풍기나 펌프 등으로 대표되는 유체기계 연구에 인생의 절반을 매진했다. 다양한 종류의 기계 중에 유체기계를 선택한 건 주로 제품의 부품으로 사용돼 존재감이 작지만 건축, 환경 분야에 빠져선 안 되는 기술인 동시에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매력이 있어서다.

처음부터 연구원에 자리잡은 건 아니었다. 그는 석사 졸업 후 LG전자 연구소에 입사해 10년 동안 에어컨 송풍기를 개발했다. 지금이야 어디서든 무소음 에어컨과 선풍기를 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가장 핵심으로 꼽힌 것이 소음 저감이다.

국내에는 이를 전문으로 설계하는 학자가 없어 해외로 눈을 돌렸다. 지금도 글로벌 판매 1위를 지키고 있는 일본 '다이킨'(Daikin)사와 연구 협력을 진행했던 규슈대에서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출국 6개월 전부터 매일 새벽 어학당에 출근도장을 찍어 생존 일본어를 습득했다. 그렇게 규슈대에서 기계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데 이어 한국의 전임강사에 해당하는 문부과학교관 조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까지 해냈다.
장춘만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사진=정영희 기자


실용성 중심 연구… 교과서에 실리는 영광


장 박사가 연구 주제를 정한 기준은 명확하다. 일회성 연구로 끝나지 않고 사회에 긍정 영향을 줄 수 있는 것들이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생활환경 신사업 관련 연구개발과 활용에 집중해 왔다.

최근까지 학교 내 미세먼지 농도를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수준까지 낮추는 공기청정과 환기, 냉·난방 통합시스템을 개발하는 연구에 공을 들였다. 현재 모든 학교의 교실에 공기청정기가 설치돼 있지만 냉·난방기를 동시에 켜는 경우 심한 소음이 발생하는 데다 전기요금이 많이 발생한다. 무엇보다 활동성이 높은 학생들의 특성상 실내에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는데 환기가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장 박사는 "보통의 초등학교 교실 2개 만한 실증 테스트베드를 구축해 설비 성능을 평가하는 시간을 2년 정도 보냈다"며 "성장기 초등학생들에게 고농도의 미세먼지가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 연구 목적"이라고 소개했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 기술 개발에도 관심이 많다. 아파트가 높아질수록 1층의 쓰레기장까지 내려가는 일이 더욱 불편해졌다. 음식물을 분쇄해 물과 함께 배출하는 '디스포저'는 현행법상 전체 음식물 쓰레기의 20%만 배출해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거나 인증을 받지 못한 제품은 전부 불법이다.

장 박사는 각 가정의 싱크대 옆 투입구에 음식물 쓰레기를 넣기만 하면 바로 지하 집하장으로 이동해 수거 차량으로 반출되는 진공이송관시스템을 개발했다. 합법적으로 편리하게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다.

그는 "쓰레기 저장조의 악취나 주변 오염은 생활 환경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어서 음식물 처리 기술은 사회복지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남편이 아내를 위해 해야 하는 1순위가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라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며 웃었다.
장 박사가 참여한 '에너지·환경 통합형 학교미세먼지관리 기술개발사업단' 과제 학교 실증 테스트베드의 모습./사진 제공=한국건설기술연구원
연구 활동이 늘 계획대로 순조롭게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1년을 바쳐도 정부로부터 거절 당하는 일이 종종 있다. 장 박사는 꾸준한 노력으로 막힌 연구의 길을 뚫어왔다. 그야말로 자타공인 'FM'이다.

그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결석을 한 번도 안 했다"며 "연구원이 된 후에도 문제가 안 풀리면 풀릴 때까지 반복하는 방식으로 성실함을 습관화했다"고 말했다.

중학교 과학 교과서에 전문가로 소개되는 이색 경험도 했다. 2007년부터 5년 간 도로터널에 사용되는 전기집진기를 개발했는데, 이 같은 이력을 눈여겨본 당시 과학교과서 집필진이 연락해온 것. 연구 현장이 터널이기에 분진마스크를 착용해도 얼굴에 새카만 먼지가 내려앉는 것은 부지기수였다. 야간에 진행하는 성능평가 특성상 밤낮이 바뀌는 일도 있었지만 그만한 성과가 있었다고 장 박사는 회상했다.

환경자원순환 스마트 기술 국제워크숍을 처음 추진한 것도 그다. 2008년부터 환경·자원순환기술 관련 산·학·연 관계자와 정부·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을 위한 정보교류의 장을 만들었다. 매년 수백명의 국내·외 전문가들이 모여 기술 토론을 진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낀다.
장춘만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사진=정영희 기자


연구 외길 인생, 퇴직 후 2막은


올해에는 디지털트윈 기반의 건물용 펌프시스템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펌프설계 기술을 정보통신(ICT)이나 인공지능(AI)과 접목, 공공건물의 효율적인 관리 기술을 확보하는 내용이다.

그에게 퇴직 이후의 꿈을 물었다. "연구원도 직업의 일종이니 지금까지 돈을 벌기 위한 연구를 했지만 앞으로는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무료로 기술을 지원하는 봉사를 하고 싶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더 먼 미래에는 연을 날리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희망이 있다고. 연 또한 공기 흐름을 잘 파악해야 멀리 날릴 수 있는 공기역학의 한 분야다. 평생 몸담은 직업에 대한 애정이 돋보였다. 한강 둔치에서 점으로 보일 만큼 높이 나는 연과 얼레를 돌리는 장 박사를 볼 수도 있겠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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