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율 역대 최저…분석 없고 예산 깎고 ‘진흥계획’만

양선아 기자 2024. 4. 24.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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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12개 정책과제
방향성 맞지만 ‘비독자의 독자 전환’ 청사진 없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3일 서울 종로구 세종라운지에서 열린 ‘세계 책의 날’ 행사에서 시민들에게 책과 꽃을 선물하고 있다. 문체부 제공

지난해 한국 성인 10명 가운데 6명은 1년 동안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등 독서율 하락폭이 심상치 않다. 국민독서실태 조사가 이뤄진 1994년 성인 연간 종합독서율은 86.8%였는데, 지난해 43%로 떨어지면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것.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독서 관련 예산을 대폭 삭감한 정부가 최근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을 내놨다. 백화점식으로 정책을 나열하기만 해, 추락하는 독서율을 방어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18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제4차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 2024~2028)을 보면, 핵심 정책 목표로 ‘비독자의 독자 전환’을 내세우고 있다. 문체부는 “인공지능(AI) 시대에 ‘질문하는 힘’과 ‘휴머니즘’을 길러주는 독서의 가치를 국민과 나누고, 비독자들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책 친화 기반을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4대 추진 전략과 12개 정책과제를 발굴했다”고 밝혔다. 4대 전략으로 △독서 가치 공유 및 독자 확대 △독서습관 형성 지원 △독서환경 개선 △독서문화진흥 기반 고도화를 들었고, 구체적인 정책 과제로는 비독자 유형별로 맞춤형 독서진흥, 독서 접점 확대, 독서소외인 독서습관 형성, 독서 거버넌스 구축 등을 제시했다. 정부는 이런 정책들을 통해 지난해 43%였던 성인 종합독서율을 2028년 50%까지 끌어올리고, 독서량은 2023년 3.9권에서 2028년 7.5권까지 올리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세운 ‘비독자의 독자 전환’이라는 핵심목표에 대해 전문가들은 방향성은 맞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정작 비독자가 왜 비독자가 됐는지 또 이들을 어떻게 독자로 전환할지에 대한 눈에 띄는 정책이 기본계획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기존 정책들을 백화점식으로 나열했을 뿐 독서진흥에 대한 정부의 강한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이전 5개년 기본계획 대비 눈에 띄는 신규 정책이나 중점 정책 계획이 없고, 여러 계획이 병렬적으로만 나열돼 있다. 앞으로 5년간 무엇에 중점을 두고 어떤 사업을 핵심으로 하려고 하는지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체부가 밝힌 제4차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의 4대 추진전략과 12개의 실행과제 그림. 문체부 제공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3일 서울 종로구 세종라운지에서 열린 ‘세계 책의 날’ 행사에서 황정민 배우와 책을 낭독하기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문체부 제공

독서문화진흥법에 따라 정부는 5년마다 기본계획을 수립해 시행해야 한다. 제3차 기본계획이 2023년까지였으므로, 정부는 지난해 연말이나 늦어도 올초에 제4차 기본계획을 발표해야 했다. 그런데 4월에서야 기본계획을 발표한데다, 이번 발표대로라면 비독자 특성과 독서 유인모델을 연구하고 이를 검증할 ‘독서활동 유도 시범 프로젝트’(가칭)는 올해 말까지 추진된다. 안찬수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상임이사는 “연구·검증에 1~2년 걸릴 테니 구체적인 정책은 그 이후에나 나온다고 봐야 한다. 3차 기본계획에서 잘된 점은 연속적으로 이어가고 문제점은 짚어서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했는데, 정책 대응에 지체 현상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기본계획에서 내년까지 교육부·여성가족부·행정안전부·법무부 등 여러 부처와 협업 과제를 발굴하겠다고 밝힌 것만 봐도, 당장 정책을 실행하겠다기보다는 앞으로 협의하고 논의를 하겠다는 것이어서 당분간 정책 효과를 체감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정책수립 과정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현장, 학계, 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상시적으로 협력해야 좋은 정책이 나올 수 있는데 그 과정 또한 원만하지 않았다. 안 이사는 “지난해 8월 말 독서 관련 예산 삭감 소식이 알려지면서 자문단 내부에서도 ‘예산도 없는데 뭘 할 수 있냐’며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공청회나 자문단 회의 등을 진행했지만 예산 삭감, 장관 교체 등 일련의 사태 속에서 의견수렴 과정 또한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2023 국민독서실태조사’ 보고서에서 밝힌 ‘최근 10년간 종합 독서율’ 추이. 문체부 제공

출판계에서도 이번 계획에 시큰둥한 반응이다. 박용수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 상무는 “공공대출에 대해 창작자 등에게 일정한 보상 또는 지원을 제공하는 ‘공공대출보상제도’에 대한 논의를 하겠다는 것 외에는 기존 정책을 짜깁기한 수준”이라며 “문체부가 정책 파트너인 출협과의 관계도 풀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떤 정책을 펼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문체부와 출협은 지난해 서울국제도서전 수익금에 대한 회계 처리 문제로 불거진 갈등을 여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이런 평가들에 대해 “기존 정책 평가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중복 사업이 많고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중앙정부는 캠페인과 비독자에 대한 연구, 큰 틀의 방향 제시에 집중하고, 지자체는 기본계획에서 쭉 나열한 다양한 정책들 가운데 지자체의 특성과 상황에 맞게 조합할 수 있도록 기본계획을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또 관련 예산 확보 방안에 대해서는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 구체적인 내용으로 사업계획을 내실화해 독서 예산을 확보하겠다”며 “재정 당국과 긴밀한 협의를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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