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우울을 간직하며 산다’는 것[꼬다리]

2024. 4. 24.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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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30일 인천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 앞 언덕에 학생을 포함한 시민들이 416개의 바람개비를 설치하고 있다. 전지현 기자



노란 바람개비가 떠오르는 4월이다.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의미의 노란 바람개비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어느덧 10년이 지났다.

4월이면 괜히 주변의 안부를 묻게 된다. 세월호 참사 10주기인 올해는 더욱더 그렇다. 세월호 참사일 이틀을 앞둔 지난 주말, 세월호 참사 작가기록단이 10주기를 맞아 펴낸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는 책 모임에 다녀왔다. 2024년의 봄은 어쩐지 주변인들과 감정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책에는 그간 언론 인터뷰에 나서지 않았던 생존자 한수영씨 이야기가 나온다. 한씨는 세월호를 주제로 다룬 다큐멘터리나 영화가 나오면 거의 다 챙겨본다고 말한다. 직접 겪은 일이니까 보고 싶고, 어떤 이야기를 담았을지 궁금해서 챙겨본다고 했다. 보면서 슬퍼지기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하는데, 그는 그것을 “좋은 우울”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 일부를 옮겨본다.

“그래도 되게 좋은 우울이에요. 예전에는 세월호와 관련된 영상을 한 번 보면, 그걸 다시 보는 일이 거의 없었어요. 요즘은 계속 보게 돼요. (중략) 이것 역시 애도의 한 과정일 수 있겠네요. 지금의 감정도 느끼고 그때의 감정도 떠올리면서, 우울함이나 슬픔을 밀어내기보다는 제 안에 간직하게 돼요. (중략) 저에게는 이게 세월호를 잘 기억하는 방법이에요.”

한씨는 또 대학 시절 “슬프고 우울한데 밝은 척하거나 연기를 한 건 아니었지만, 눈치를 보는 밝음이랄까. 세월호가 언급되면 잘 모른다는 듯 가만히 있고, 안산이 화제로 떠오르면 화장실에 간다거나 다른 장소로 옮겨갔다”라고 고백한다. 세월호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었다.

한씨를 인터뷰한 박민진 작가는 “‘좋은 우울’, ‘눈치를 보는 밝음’… 슬픈 모순으로 얽힌 통합의 흔적은 어떻게든 삶을 충실히 살아가고자 했던 한수영의 분투가 빚어낸 결과다”고 해석했다.

책 모임에서 한 참여자는 “부끄럽다”라고 말했다. 슬픔이 너무 커서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감정을 나누는 일을 주저한다거나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것마저 편을 가르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굳이 나서지 않는 주변인을 많이 봐왔던 터였다. 생존자 스스로 ‘좋은 우울’이라고 명명하기까지 ‘분투’했을 시간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고 열 번째 맞는 봄에 우리가 나눌 수 있는 감정이 ‘부끄러움’이라니. 저절로 고개가 떨구어졌다. 세월호 참사 10주기인 지난 4월 16일엔 ‘세월호 특조위 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학배 전 해수부 차관에 대한 재상고심 선고가 있었다. 대법원은 윤 전 차관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차 구한 법원의 판단은 같았다. 조금이라도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을까. 부끄러워야 할 당사자가 어디 이뿐이겠나.

감히 ‘좋은 우울’을 조금이나마 이해해보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현재를 지나가 본다. 10년 전엔 비가 많이 내렸는데, 올해 4월 16일엔 오전에 비가 내리더니 오후엔 그쳤다. 눅눅한 미세먼지는 걷히지 않았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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