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은 잔인하다[박희숙의 명화 속 비밀 찾기](7)

2024. 4. 24.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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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1791~1792년, 캔버스에 유채,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대부분 부모가 가장 신경을 쓰는 건 자녀 양육이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주변에 조언을 구하고, 책도 읽어보지만 정답은 없다. 아이들 성향이 각기 다르므로 자신의 자녀에게만 맞는 교육 방법을 찾기도 쉽지 않다.

부모가 노력해도 아이들의 성향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남자아이들은 칼, 총, 자동차, 로봇 등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하고, 여자아이들은 인형 놀이를 좋아한다. 남자아이들은 여럿이 모여 하는 운동을 좋아하고, 여자아이들은 활동적으로 움직이기보다는 정적으로 놀기를 좋아한다. 특히 여자아이들이 인형 놀이에 빠지는 이유 중 하나는 인형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어서다.

여자아이들의 성향에 맞는 놀이를 그린 작품이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의 ‘꼭두각시’다.

4명의 아름다운 소녀가 손으로 넓은 천을 잡아당기며 광대탈을 쓰고 있는 소년을 튕기고 있다. 천 위에서 하늘을 날고 있는 소년의 팔다리가 제멋대로다. 소년의 팔다리를 보면 광대탈을 쓰고 있는 인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중에 떠 있는 인형은 무게감도 없어 보인다.

인형은 밀짚으로 제작된 것이다. 인형이 착용하고 있는 광대탈, 옷, 긴 양말과 신발은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는데 이 복장은 귀족 가문 남자의 모습이다.

인형을 바라보고 있는 소녀들의 얼굴에는 즐거움이 넘쳐흐르고 있다. 소녀들이 머리에 쓰고 있는 모자와 앞치마 그리고 장식이 없는 치마는 그들이 신분이 낮은 하녀라는 것을 나타낸다. 커다란 천 하나로 인형을 튕기며 노는 소녀들의 모습은 그들이 장난감이 없는 하류층 계층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숲 사이로 보이는 건물은 귀족 가문의 집이다. 소녀들이 놀고 있는 공터는 귀족 가문의 영지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소녀들의 즐거워하는 모습은 현실과 반대로 자신들의 의지대로 귀족 인형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프란시스코 고야의 이 작품에서 소녀들이 의도한 대로 공중에서 움직이고 있는 인형은 제도에 범주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귀족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인형이 광대탈을 쓰고 있는 것은 진실보다는 가면을 강요당하는 귀족의 삶을 의미한다.

고야는 어린아이들을 좋아해 동심을 담은 작품을 여러 점 남겼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작곡가 엔리케 그라나도스는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피아노 모음곡 <고예스카스>를 완성했다.

아이들이 그냥 재미 삼아 노는 것 같아도 우리네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때가 있다. 우리는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것 같지만, 한 번도 자신의 의지대로 혹은 마음대로 살지 못한다. 어린 시절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누군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꼭두각시 같은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박희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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