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다닌 서울대병원 소아신장과가 진료 멈춘다네요"…엄마는 울었다

CBS노컷뉴스 나채영 기자,CBS노컷뉴스 박인 기자 2024. 4. 2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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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청소년과 소아신장분과 교수 2명 사직 의사
"죄송하다, 8월에 사직한다"
"아픈 아들 데리고 2년을 다닌 병원…어디로 가나요"
의료 공백 불안에 환자·가족 '한숨'
"갈등 해소 기다렸지만 진료 멈춰"
"정부는 논의를 하고 있는 게 맞나"
23일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과 진료실 앞 게시판. 지연시간 50분을 공지하고 있다. 나채영 기자


엄마는 게시판을 보고 연신 한숨만 내쉬었다. 아픈 15살 아들이 다닌 병원이 진료를 멈춘다는 내용 앞에서 그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란 말만 반복했다.

정부와 의사 단체의 갈등이 장기화되며 의과대학 교수들의 사직 예고가 이틀 앞으로 다가온 23일 오전,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진료실 앞은 아이들과 보호자로 붐볐다.

게시판에는 '지연 시간 50분'이란 안내 문구가 표시됐다. 이 상황에서 엄마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대기 뿐.

진료라도 받을 수 있는 오늘은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는 진료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한씨(56)의 아들은 신증후군을 앓고 있다. 단백질이 부족해져 몸이 붓는 병이다. 아들은 단백질이 소변에 나올 때마다 주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해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아야 한다.

한씨는 아들을 데리고 2년 간 이 병원을 다녔다. 그런데 진료가 멈춘다고 한다. 한씨는 "4월 2일에 왔을 때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라고 써 있었다"라며 "3개월에 한 번씩 2년을 다닌 병원이다. 그런데 8월까지만 진료를 한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앞서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산하 소아신장분과 교수 2명은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하며 사직 의향을 밝혔다. 서울대병원 강희경, 안요한 소아신장분과 교수는 진료실에 '사직 안내문'을 붙이고, "8월 31일이 사직 희망일"이라며 '믿을 수 있는 다른 병원으로 환자들을 보내고자 한다'고 공지했다.

한씨는 이제 당장 아들을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고민이다. 한씨는 "선생님이 추천하는 병원은 (집에서) 너무 멀어 어디로 갈지 고민이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낫는 병이 아니고 꾸준히 안고 가야 하는 병인데 의사 선생님이 이러니까 갑갑하다"며 "여기서 옮겨야 하면 다시 또 검사를 해야 한다"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였다.

7살 딸의 정기 혈뇨 검사를 위해 병원을 찾은 최씨(43)도 걱정이 깊다. 최씨는 "우선은 지금 진료를 받을 수 있어 다행인데, 몇 달 후에는 진료를 못 받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걱정이 된다"면서 "빅5 병원에서 교수님들이 사직서를 반 이상 내셨다는데, 다른 곳으로 가도 그 병원도 마찬가지 아니겠느냐"며 고개를 저었다.

최씨는 정부와 의사 모두에게 아쉬운 마음 뿐이다. 그는 "의사가 사람들을 고치겠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손 내놓고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며 "정부도 핵심은 소아과, 필수의료 부분에 인력이 부족한 것인데, 거기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는 게 맞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텅빈 연세세브란스병원 암센터 진료대기석. 박인 기자


같은 시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암병원에서도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들의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폐암 말기 투병 중인 이씨(68)는 "지금 이렇게 사표를 쓰고 나중에 병원이 올스톱 되면 누가 책임을 지는 것인가"라며 "정부는 어떤 대책을 하기 전에 당장 국민들이 불안하지 않게 만들어줘야 자기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들이 환자 곁을 쉽게 떠날 리 없다는 기대도 공존한다. 경남 창원에서 올라온 70대 혈액암 환자인 나모씨는 "제가 의사 선생님을 20년 가까이 봤는데, 25일에 사표를 쉽게 내고 나갈 리가 없다"며 "쉽사리 사표를 내고 나갈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날이 이어지는 정부와 의사단체의 갈등은 환자들의 바람과는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이날 오후 온라인 총회를 열어 "예정대로 오는 25일부터 사직은 시작된다는 것은 재확인 했다"며 "정부의 사직 수리 정책과는 관계없이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비대위는 다음 주에 하루 휴진하고 '주 1회 진료 셧다운' 여부는 다음 정기 총회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비대위는 "주당 70~100시간 이상 근무로 교수들의 정신과 육체가 한계에 도달했다"며 이 같이 밝혔다.

다만 서울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는 그보다 앞서 열린 내부 총회에서 결정한 대로 오는 30일부터 '주 1회 셧다운'에 돌입할 방침이다. 비대위 관계자는 "오는 30일에 휴진하고, 이후에는 일주일에 한 번 휴진한다"고 설명했다.

울산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도 내부 총회 결과에 따라 다음 달 3일부터 일주일에 한 번 휴진할 방침이다.

정부와 의사단체의 갈등이 이어지면 가장 이르고, 직접적인 피해는 환자들에게 간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중증 질환자들은 숨죽이면서 정부와 의사들에게 두 달이라는 충분한 시간과 타협을 통한 해결책을 찾도록 양보와 인내심으로 기다려왔지만, 그 결과는 중증질환자의 고통과 희생에 대한 어떤 배려도 없는 모습을 보였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순간에도 중증질환자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치료가 가능한 3차, 2차 심지어 요양병원도 찾아다니고 있다"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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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나채영 기자 nana@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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