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로마 유리기 100점'이 갖는 의미는?

대구CBS 이재기 기자 2024. 4. 24.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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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금관총 내부의 모습이다. 축조 당시의 축조방법을 재현해놨다. 이재기 기자


경주시 신라왕궁터와 왕들의 무덤에는 실크로드를 통해 동서를 오간 유리기(器)와 조각품 등 유물들이 광범위하게 발견되고 있다. 신라시대 왕들의 무덤이 무더기 발견된 대릉원고분군에는 200기에 이르는 왕과 왕족의 무덤이 있고 이 가운데 서봉총, 금관총, 금령총, 월성로 가 –13호, 황남대총 북분과 남분, 호우총, 천마총, 교동 68번지 고분 등 발굴이 이뤄진 고분군에서 발견된 유리기만 해도 중국과 일본을 압도할 만큼 그 숫자가 많아 신라는 개방과 교류를 중시한 글로벌 무역국가였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경북대 박물관에 따르면 경주 왕릉에서 발굴됐거나 부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로마 유리기 숫자는 100여개나 된다. 월성로가 13호묘에서 로마 파상문 유리배 2점이 출토됐고, 경주시 노서동 금관총에서 로마 유리기(고배)와 파수 등 4점이 발견됐다.

박천수 경북대 박물관장은 20일 유라시아 실크로드 인문학 최고위과정의 경주 고분군 답사에서 "금관총은 5세기 말에 만들어졌으며, 왕릉으로 추정되는 봉황대고분과 관련된 왕족묘다"며 "이 고분에서는 왕비릉인 황남대총 북분에 필적하는 4점의 로마 유리기가 출토된 점이 주목된다"고 말했다.

경주 최대규모의 고분 황남대총. 이재기 기자


금령총 반점문완 2점, 황남동에 위치한 천마총(=황남동 155호분) 구갑문(거북문양) 유리배 등 로마유리기 2점, 서봉총의 로마 망목문(網目文)유리배, 유리완륜 등 2점의 로마 유리기가 출토됐다. 경북대 유라시아 실크로드 인문학 최고위과정 경주답사자료집에 따르면 망목문배는 전형적인 로마  유리기이며 주로 북방 초원지대에서 발견되는 파상문, 망목문을 시문한 유형이다. 이로써 4세기 후반 로마 유리기가 초원로를 통해 이입된 것을 알 수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황남대총은 규모나 출토 유리기 숫자면에서 신라고분군 중 군계일학이다. 황남대총(경주시 황남동)은 쌍분으로 길이 120m 직경 80m 높이 22.2m로 신라 최대의 고분이다. 이 곳에서는 실크로드를 통한 국제교류의 흔적들이 무더기로 나왔다. 파편을 포함해 유리기 8점(남분), 5점(북분)이 출토됐고 이 가운데 1점은 사산조 페르시아 유리기로 판단됐다.

경주 왕릉에서 발굴된 로마유리기. 경주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이재기 기자


미추왕릉지구에서는 사람 얼굴 모양이 그려진 로마 유리주(琉璃珠)가 출토됐는데, 인물이 백인의 특징을 보이고 형태는 다르나 인물문주가 지중해 일대에서 제작된 것에서 로마유리의 전통에 따라 제작된 것으로 추정됐다.

박천수 관장은 "신라의 대릉원고분군은 5세기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장대한 능원의 규모뿐 아니라 한반도 내에서 특이한 구조인 적석목곽분이라는 묘제와 금제 장신구가 주목돼 왔다"며 "그래서 신라문화의 기원이 초원 기마민족문화에 있는 것으로 추정돼 왔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대릉원고분군에서는 기존에 출토된 유리기 수를 환산하면, 발굴되지 않은 왕릉을 포함하면 동아시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100점 이상의 로마 유리기가 부장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현재의 계림로를 조성할 당시 길 한 켠에서 발견된 '계림로14호묘'에서는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보검이 출토돼 그 유래를 둘러싼 논란이 일기도 했다. 경북대 박물관은 '누금기법이 흑해 연안의 그리스계 공인에 의해 제작된 BC 4~5세기 스키타이 금제품에 동일하게 적용된 것으로 볼 때, 그리스계를(기법을) 계승한 훈족이 양자를 결합해 제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분포는 헝가리, 루마니아로부터 흑해연안에 집중적으로 분포하며 동쪽으로는 천산산맥 일대를 거쳐 신라에 이입된 것이다'고 분석한다.

계림로 14호묘에서 발굴된 보검. 스키타이인들이 만든 금제품으로 그곳의 사람이 신라시대에 소장한 채 신라를 방문했던 것으로 추정됐다. 이재기 기자


박천수 관장은 보검의 유래와 관련해 "계림로14호묘의 피장자는 훈족의 후예 또는 중국 키질석굴의 공양자상에 보이는 소그드인으로 추정된다. 근래 경주 월성에서 소그드인 토우가 출토된 점에서 후자의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문물 뿐아니라 인적교류도 활발히 이뤄진 증거라는 것이다.

경주박물관에는 경주와 지중해 동부연안간 문화적 교류의 흔적을 보여주는 돌조각물이 설치돼 있다. 안압지관 입구에 배치돼 있는 '연주사자공작문석'으로 경주 서경사 또는 흥륜사 소재설이 있다.

연주사자공작문석. 경주박물관 야외에 설치돼 있는 조각상이다. 부조를 탁본해 보면 공작 2마리와 나무가 배치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레바논의 국기에 이 문양이 구현돼 있다. 맨 오른쪽 원 안에 사자가 조각돼 있다. 이재기 기자


돌에 새겨진 3개의 원형 문양은 꽃 나무 두 마리의 공작 사자 등으로 미뤄, 사산조 페르시아 계통이라는 견해가 있다. 사자공작문석은 페르시아계 인물들의 경주 정착설과 통일신라문화의 국제성을 보여주는 유물이란 해석을 가능케 한다.

성덕왕릉의 전경이다. 이재기 기자


이와 함께 경주 유적지에서는 인도와 서역문화의 흔적인 사자상과 서역인물상(像)도 교각과 왕릉 석주 등지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되고 있다.

경주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사자상이다. 이재기 기자


불국사 다보탑에 사자상이 안치됐고, 경덕왕 19년 월성을 비롯한 신라궁궐을 드나들기 위해 축조된 월정교와 춘양교에는 남쪽과 북쪽 입구에 사자 석주가 만들어졌으며, 경덕왕릉과 원성왕릉, 흥덕왕릉에도 사자상이 배치됐는데 이는 당 황제릉에 보이는 왕릉을 수호하는 사자상을 본뜬 것으로 추정됐다.

원성왕릉에 세워져 있는 호석이다. 머리카락이 곱슬이고 머리띠를 두른데다 헤라클레스의 방망이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미뤄 서역인상이며 턱에는 수염이 조각돼 있다. 이재기 기자


박 관장은 이같은 유물을 근거로 "아소카 석주를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고대 그리스. 동쪽으로는 통일신라에 이르기까지 해양 실크로드를 따라 '사자석주문화'가 공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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