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물러섰는데 의대 교수들 사직서 내는 네 가지 이유

김명지 기자 2024. 4. 24.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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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의료 공백 장기화로 심적 육체적 고갈
② 치열해질 경쟁에 대한 부담
③ 정부 정책 추진 의지 불신
④ 의정 갈등 장기화에 감정 소모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 방침으로 전국 의대 교수들의 사직이 이어지고 있는 3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 /뉴스1

정부가 내년도 대입에서 늘리기로 한 의대 정원을 2000명에서 최대 1000명까지 줄일 수 있게 허용하고, 필수의료 지원 방안을 논의하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를 꾸리며 의사들에게 화해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의료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은 현장으로 복귀하지 않고 있고 의대생들의 휴학도 늘고 있다. 대학 병원에 남아서 환자를 지키던 교수들도 사직서를 철회하지 않는 등 의사들의 반발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지금도 전공의나 전임의는 몰라도 정년이 보장되는 의대 교수들이 진료 현장을 떠날 가능성은 작다고 보고 있다. 응급 환자와 희귀환자를 주로 보는 ‘필수의료’ 분야 의사들이 설마 환자를 떠나겠냐는 것이다. 정부는 의대 증원과 맞물려 추진하는 필수의료 대책으로 대학병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도 담았다.

의사들의 분위기는 좀 냉랭하다. 이미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소아신장분과 교수 2명이 의대 증원 정책에 반대하며 퇴직을 예고했다. 소아신장분과는 만성 콩팥병을 앓고 있는 체중 35㎏ 미만 소아에 대해 투석 치료도 하는 대표적인 필수의료과다.

의대 교수들은 전공의가 일시에 빠져나간 의료 공백을 채우는 것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정부에 대한 불신도 여전히 크다. 의료 공백 사태가 두 달째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이렇다 할 변화도 끌어내지 못하는 데 답답함을 호소했다. 정부의 태도 변화에도 의사들은 왜 대화에 나서지 않는 걸까.

① 의료 공백 장기화로 심적 육체적 고갈

의대 교수와 전국의 수련병원은 전공의들이 한꺼번에 병원을 떠난 이후 심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의대 교수들은 전공의들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해 짧게는 하루걸러 한 번, 길어도 사흘에 한 번꼴로 당직을 서고 있다.

한 의대 교수는 “30대에는 몰라도, 50대에 하루걸러 하루 당직을 서는 것이 현실적으로 너무나 힘에 부친다”고 말했다. 몸을 혹사해도 보상은 터무니없이 적다. 의료계에 따르면 의대 교수들의 당직비는 병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하룻밤을 꼬박 새우고, 그다음 날 외래 진료까지 보는 데도, 당직비가 15만 원 남짓한 곳도 대다수라고 한다.

수련병원들은 전공의 이탈로 수술 횟수와 입원 병상수를 줄이면서 당장 매출에 타격을 입고 있다. 대형 병원들은 하루에 10억~15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② 치열해질 경쟁에 대한 부담

의사들도 소속에 따라, 경제적 상황에 따라,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이 갈라진다. 내년도 대입에서 의대 신입생이 늘어나면 당장 가장 피해를 보는 당사자가 이제 막 의술을 배우는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매년 뽑는 전문의와 전임의 정원은 제한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의대생이 대거 늘어나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게 된다.

지금도 개인 병원을 열어도 의료 시장의 경쟁은 치열하다. 오히려 젊은 의사들에게 밀려 은퇴 시기가 빨라질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선다. 의대생과 전공의를 자녀로 둔 부모 중에도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대하는 강경한 입장이 많다는 게 관계자들의 평가다.

개원의가 주축인 대한의사협회는 의대 증원을 강하게 반대한다고 알려져 왔지만, 사실 개원의들은 이번 의료 사태에서 가장 피해가 적은 편이다. 병원을 열고 자리를 잡으려면 보통 5년이 걸리는데 자리를 잡은 병원 원장들은 오히려 의대 증원 정책을 반긴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부의 바람대로 10년 후 무더기로 의사가 배출되면, 싼값에 의사들을 고용할 수 있어 고용비를 아낄 수 있다는 것이다.

③ 정상화 노력 지지부진에 대한 불만

대학병원에 남아서 환자를 보는 의대 교수들은 대부분이 중증 응급환자를 진료하는 ‘필수의료’ 인력이다. 서울대 의대 공공의료센터 권용진 교수는 “지금 병원에 남은 의대 교수들은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있다”며 “정부가 총선이 끝났는데도 의료 사태를 빠르게 마무리 지을 생각은 하지 않고 사태를 질질 끌고 있는 것 같아 화가 난 의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의대 교수들은 당직 횟수나 보상은 접어두더라도 정부의 정책 추진 과정이 답답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순천향대 의대 한 교수는 “정부가 의대 교수들에게 ‘정부 편이냐, 의사 편 이냐’고 묻는데, 우리는 ‘환자 편’”이라며 “정말 환자를 위한다면 정부는 전공의 사직 처리를 하든, 의료계가 원하는 대로 원점 재검토를 하든 조만간 서둘러 결정을 내려서 이 사태를 정상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점진적인 의대 증원에 찬성하는 한 교수는 “정부의 정책 추진 과정을 보면 정말 너무나 답답하다”며 “도저히 손을 들어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의사와 대립을 멈추고 전공의들이 돌아오도록 사회가 분위기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임계점 다다른 정부에 대한 불신

두 달에 걸친 의정 갈등으로 의사들이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고 정부와 협상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가 확산했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어지면서 회의론이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것이다.

이번에 사직서를 냈다는 강희경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정부의 정책 추진 과정을 보면 “공들여 지은 탑이 공격받은 것 같은 심정이었다”고 털어놨다. 강 교수는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한다”면서도” 정부가 지금까지 내놓은 소아청소년과 대책 중 어느 것도 제대로 된 것은 없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정부 정책이 ‘괜찮다’라고 동의한다는 것 같아서 가만히 있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의대 교수는 “정부가 의사라는 직업의 가치를 망가뜨려서라도 이공계 등 다른 분야로 인재들이 몰리게 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직업의 안정성과 가치를 망가뜨리겠다고 공표하는 정부에 어느 누가 찬성표를 던질 수 있겠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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