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비어 있기에 모든 것을 담은 마당

관리자 2024. 4. 2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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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주어진 빈 시간은 하루를 더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현대 건축구조에서 이런 여백의 공간이 로비와 계단참(층계의 중간에 있는 좀 넓은 곳)이라면 우리의 옛 외부 공간인 마당도 그러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서양과 일본·중국은 초청장이 없으면 잔치에 참여할 수 없도록 문을 닫아놓지만 우리는 오히려 잔칫날에는 온종일 집 안마당과 바깥마당을 차단하고 있는 대문을 활짝 열어 두 마당이 통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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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에 있는 연경당 안마당. 이규혁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주어진 빈 시간은 하루를 더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우리는 시간 사이 여백마다 피로나 긴장을 풀고 지난 일을 돌이켜보거나 해야 할 일을 점검한다. 현대 건축구조에서 이런 여백의 공간이 로비와 계단참(층계의 중간에 있는 좀 넓은 곳)이라면 우리의 옛 외부 공간인 마당도 그러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사전에 ‘집의 앞이나 뒤에 평평하게 닦아놓은 땅’이라고 표기된 마당은 조성된 장소에 따라 명칭과 의미가 다르다. 대문 안에 있으면 안마당, 대문 밖에 있으면 바깥마당이라 부른다. 바깥마당을 지나면 넓은 들판으로 펼쳐지는 들마당이 산으로 울타리를 이루며 우리 눈에 들어온다. 방을 나오면서 대청·안마당·바깥마당·들마당으로 점점 확대되는 공간을 체험하게 된다. 이렇게 점점 확대되는 공간 경험이 우리 민족에게 더 작게 만들기를 지향하는 일본과는 다른 확대 지향 문화를 안겨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안마당·바깥마당·들마당은 모두 내 소유의 공간이지만 마당마다 다른 의미가 있다. 안마당은 내 가족만을 위한 사적인 공간이라면 바깥마당은 마을사람에게 내어준 개방 공간이다. 그래서 이웃집 아이들이 바깥마당에서 뛰어놀고 어른들도 모여 윷놀이를 하며 웃고 떠들며 친목을 나누는 개방의 공간이 된다. 그리고 넓은 들판의 들마당은 소유 공간이지만 들판을 끼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품앗이하는, 즉 모두의 삶을 위한 공동의 생산 공간이다. 그러하기에 이웃집이 추수하면 모든 마을 사람들이 자기 하던 일을 다 내려놓고 함께 모여 도와준다.

한국의 마당은 중국 아니 일본과 달리 인간이 꾸밀 수 있는 장식과 멋스러움을 최대한 제어한 비어 있는 공간이다. 아이들이 윷놀이·구슬치기·고무줄놀이 등을 하면 놀이마당이고, 아버지가 타작하고 고추를 말리면 생산마당이다. 또한 결혼과 회갑 등 잔치가 있으면 축제마당이다. 서양과 일본·중국은 초청장이 없으면 잔치에 참여할 수 없도록 문을 닫아놓지만 우리는 오히려 잔칫날에는 온종일 집 안마당과 바깥마당을 차단하고 있는 대문을 활짝 열어 두 마당이 통하도록 한다. 그래서 두 공간 사이를 드나드는 데 아무런 절차 없이 누구나 오갈 수 있다. 누구에게나 열린 잔치이기에 지나가는 허름한 나그네든, 거리의 각설이든 잔치마당에 들어와 함께 즐거워하며 음식도 먹을 수 있다.

이러한 공간 개념은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특징이다. 한마디로 마당은 비어 있기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있고 사람들의 열린 공간이며 함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나누었던 생활문화의 공간이다.

이규혁 건축가·한옥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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