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빈곤 아이들 "곰팡이 핀 반지하... 집이 더 괴로워요" [집이 무서운 아이들]

김은진 기자 2024. 4. 2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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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없는 방 낡고 좁아 건강 악영향...2021년 기준 ‘10만1천여 가구’ 추정
“대상 발굴·지원 체계 마련 시급” 지적
경기도내 아동주거빈곤가구에 대한 맞춤형 지원이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수원특례시 한 아동주거빈곤가구. 김은진기자

 

“엄마, 집에 들어가기 무서워요. 우리 집은 왜 곰팡이가 가득해요?”

23일 오전 10시 수원의 한 주택가. 허름한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다섯 식구가 살고 있는 집이 나온다. 성인 4명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작은 방, 화장실과 부엌의 경계가 모호한 거실, 곰팡이를 가리기 위해 여러 번 덧바른 벽지와 장판, 낮에도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이곳은 아홉 살 희진이의 집이다. 매일같이 고장나는 보일러 탓에 집에서도 양말을 두세겹씩 신어야 하며 추운 겨울이 되면 수돗물이 얼어 세수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 곰팡이가 핀 벽지 때문에 매일 밤 가려운 피부를 벅벅 긁어 희진이의 온몸엔 새빨간 상처가 가득하다.

여덟 살, 열 살인 지연이와 지혁이 남매에게 허락된 공간은 안성의 33㎡ 남짓인 한 주택. 비좁은 공간에 들일 수 있는 가구는 엄마와 몸을 포개고 잘 수 있는 매트리스가 전부인 상황에서 지연이와 지혁이의 방은 꿈도 꿀 수 없다. 환기를 시키기 위해 창문을 열면 담배 냄새가 좁은 집안에 가득 차 마음 편히 열 수 없다. 얼마 전 친구 집에 다녀온 지혁이는 요새 부쩍 말 수가 줄어들었다. 커다란 텔레비전이 놓인 아늑한 거실, 마음껏 놀고 공부할 수 있는 나만의 방, 방마다 놓인 침대와 가구. 지혁이가 태어나서 처음 본 아늑한 집이었다.

따뜻한 온기로 아동을 안전하게 품고 보호해야 하는 집이 취약계층 아동들에게는 가장 무서운 공간이 됐다. 주거 환경이 아동의 신체적, 정신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아동주거빈곤가구의 주거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경기도 등에 따르면 아동주거빈곤가구는 지하, 옥탑방, 쪽방 등 비주택이나 최저 주거 기준에 미달하는 곳에 거주하는 만 19세 미만 아동 가구를 의미한다.

이 같은 가구는 지난 2021년 기준 경기도내 10만1천657가구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후 실태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현재 정확한 현황도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 과거 통계도 명확한 조사가 아닌 가구당 비율로 예측한 수치인데,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경기도는 실태 파악에 나서지 않고 있다.

오현숙 서정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법적으로 정해진 주거 환경에서 지내지 못하는 아동 가구가 많지만 아직까지 잘 드러나지 못해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아이들이 좋은 집에서 자랄 수 없는 것에 대한 책임이 보호자에게만 있다고 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하루빨리 이들을 발굴해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은진 기자 kimej@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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