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가 포도농가 다 죽인다더니... 韓, ‘명품 샤인머스캣의 나라’ 됐다
美·中·EU·아세안과 FTA 맺은 건 한국뿐
무역 규모, 日 턱밑 추격
2004년 우리나라 첫 FTA(자유무역협정)인 한·칠레 FTA가 발효될 당시 포도는 ‘뜨거운 감자’였다. 국내 5대 소비 과일인 포도가 관세 철폐 대상에 포함되자 포도 재배 농가에선 ‘우린 이제 끝났다’는 말이 나왔다. 2003년 37만6000t이던 포도 생산량은 칠레산 포도가 국내시장에 밀려들어 오면서 2006년 33만t으로 줄었다. 하지만 이대로 끝나지는 않았다. 2006년 우리 농가는 일본에서 ‘샤인머스캣’ 묘목을 들여와 개량을 시작했고, 2017년 중국을 시작으로 수출에 나섰다. 2010년 188만달러(약 26억원)인 포도 수출은 지난해 24배인 4469만달러까지 불었다. 이제 우리와 FTA를 체결한 싱가포르,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등에서 한국산 샤인머스캣은 명품 과일로 꼽힌다. 2005년 1000㎡당 연간 312만원이던 포도 농가 소득은 2020년 598만원으로 늘었다. 포도 농가를 다 죽인다던 FTA가 소득을 늘린 것이다.
◇20년 만에 일본의 85%까지 추격
23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나라별 무역 규모와 수출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8위를 기록했다. 우리 수출과 수입을 합한 무역 규모는 1조2752억달러(약 1757조원)로 일본(1조5028억달러)의 85%에 달했다. 우리나라가 FTA에 막 뛰어들던 2003년, 일본의 무역 규모는 우리의 2.3배에 달할 정도로 격차가 컸었다. 우리가 3배 이상으로 늘어나는 동안 FTA에 소극적이었던 일본은 증가세가 크지 않았다.
FTA는 정체기에 접어들었던 우리 수출 시장을 확대하기 위한 승부수였다. 1983년 무역(수출+수입) 규모에서 세계 12위, 수출과 수입은 각각 13위와 14위로 15위 안으로 진입했지만, 이후 20년 동안 그 어느 항목도 한 자릿수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섭게 성장하던 중국이 해마다 순위를 높이는 상황에도 우리는 G7(7국)과 네덜란드·벨기에·홍콩 등 중계무역 강국의 벽을 좀처럼 넘어서지 못했다. 2003년 당시 외교통상부에 근무했던 조수정 고려대 교수는 “이대로 가다간 톱10 진입이 어려울 것이라는 위기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칠레에 이어 2006년 싱가포르 및 EFTA와 FTA가 발효됐고, 초(超)세계화 흐름 속에 아세안(2007년), 인도(2010년), EU(2011년), 미국(2012년), 중국(2015년) 순으로 FTA가 발효되며 2017년엔 무역(9위)·수출(6위)·수입(9위) 모두 톱10을 기록함과 동시에 1인당 GDP(국내총생산)도 3만달러 벽을 돌파했다.
◇세계 85% 확보… 미·중·EU와 모두 체결은 유일
우리나라는 칠레를 시작으로 21건의 FTA를 59국과 맺으며 세계 GDP의 85%를 ‘경제 운동장’으로 확보하고 있다. 중계무역국인 싱가포르(87.3%)에 이어 2위다. FTA 선진국으로 꼽혔던 칠레(3위)도 제쳤다.
우리나라는 G2(미국·중국)를 비롯해 EU, 아세안 등 주요 경제권과 모두 FTA를 체결한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한 통상 전문가는 “FTA 협상은 분야별로는 일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윈윈하자는 것”이라며 “우리는 농업 부문이 개방에 대한 반발이 거셌음에도 국익 차원에서 양보하며 큰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보호무역주의가 확대되는 가운데에도 FTA는 우리 무역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그동안 촘촘하게 짜놓은 FTA망은 WTO(세계무역기구) 체제가 사실상 와해한 상황에서 교역의 통로가 되고 있으며, 미국이 IRA(인플레이션감축법)와 같은 장벽을 쌓는 국면에서도 FTA 상대국으로서 혜택을 누리게 하고 있다. 조상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과거 빠르게 FTA를 확대한 것이 지금과 같은 탈(脫)세계화 국면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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