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반전 운동 닮아가는 ‘反유대주의’ 美학생 시위

뉴욕/윤주헌 특파원 2024. 4. 2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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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명문대 중심 전역 확산
22일 오후 8시 30분 미국 뉴욕 맨해튼 뉴욕대 인근에서 집회를 벌이던 학생들이 경찰에 연행됐다./AFP 연합뉴스

22일 오전 6시 미국 뉴욕 맨해튼 뉴욕대 인근 굴드 광장. 이른 새벽부터 이스라엘에 반대하고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대 수십 명이 몰렸다. 뉴욕대 학생과 교직원이 주축인 시위대는 대학 측이 이스라엘 유관 기업과 관계를 끊고 이스라엘 텔아비브 캠퍼스를 폐쇄하라는 내용의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저녁이 되며 더 많은 사람이 모여들면서 대규모 폭동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자 오후 8시 30분 뉴욕 경찰은 시위대에 “지금 당장 해산하지 않으면 체포한다”고 경고 방송을 했다. 그럼에도 해산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경찰이 진입해 인간 사슬을 만들고 있던 시위대 수십 명을 체포해 포승으로 묶어 경찰차로 호송했다.

지난해 10월 발발한 뒤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하마스(팔레스타인의 이슬람 무장단체) 전쟁의 불똥이 미국 대학가로 튀면서 캠퍼스가 극심한 분열과 혼란으로 얼룩지고 있다. 작년 말과 올해 초 학내 반유대주의 움직임에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논란에 휘말려 명문대 두 곳(하버드·펜실베이니아대) 총장이 잇따라 물러난 후폭풍이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학내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특히 학교 당국이 친팔레스타인 시위대에 대한 단호한 대응 방침을 고수하면서 공권력의 캠퍼스 투입도 잦아졌다. 이런 일련의 상황이 대학 캠퍼스에서 촉발된 베트남전 반대 시위로 미국 사회와 정치권이 혼돈에 빠졌던 1960년대 후반을 연상케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뉴욕대에서 11㎞ 떨어진 아이비리그 대학인 컬럼비아대는 네마트 샤피크 총장의 긴급 결정으로 이날 모든 수업을 화상으로 진행했다. 또 남은 학기 동안 학생들에게 대면 수업과 원격 수업 중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코로나가 다시 창궐하지도 않았는데 비대면 수업으로 회귀한 것은 학교가 시위대의 충돌로 쑥대밭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날 유대인의 대표적 명절인 유월절이 시작됐는데, 캠퍼스에 며칠째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머무르고 있어 충돌 가능성이 우려돼 왔다. 샤피크 총장이 “현재 우리 캠퍼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때문에 깊은 슬픔에 빠졌다”고 간곡하게 호소할 정도로 학내 분위기는 일촉즉발 상황이다.

반세기 지나도 변치않는 정신 - (왼쪽 사진)1968년 11월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의 주 의사당 앞에서 학생들이 '베트남에서 당장 나가라(Get out of Vietnam now)' 등의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반전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 전역을 휩쓴 반전 시위의 여파로 민주당 소속 린든 존슨 당시 대통령은 대선 출마를 포기했고,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후보가 압도적으로 승리하며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오른쪽 사진)22일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캠퍼스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집회에 참석한 시위대가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지난 17일 네마트 샤피크 컬럼비아대 총장이 연방 의회에서 반유대주의 행동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한 뒤 학내 친팔레스타인 시위가 격화하고 있다. 물리적 충돌로 캠퍼스 치안이 우려되자 컬럼비아대는 22일 모든 수업을 화상으로 대체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UPI 연합뉴스

코네티컷주(州)의 아이비리그 대학인 예일대에서도 뉴욕의 대학들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날 오전부터 학생들이 주축인 친팔레스타인 시위대가 이사회와 면담을 요청하며 학내 광장을 무단 점거한 뒤 최소 47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매사추세츠공대(MIT)·에머슨대·터프츠대 등에서도 친팔레스타인 시위대가 조직됐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이런 행동은 ‘학내 공권력 투입’이라는 미국에서 보기 드문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각 대학 당국이 친팔레스타인 시위를 일제히 무단 점거로 규정하고 원칙 대응을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샤피크 총장은 지난 17일 연방 하원 교육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우리는 반유대주의적 위협, 이미지 및 기타 위반 행위를 용납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이런 발언에 반발한 팔레스타인 지지 학생들은 다음 날 총장을 비난하고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를 열었는데, 이때 100여 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물리적 충돌로 캠퍼스 치안이 우려된다는 명분이긴 했지만, 지성과 자유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미국 대학 캠퍼스에 공권력이 투입된 것은 수십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이후 각 대학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가 벌어질 때마다 경찰이 출동해 과격 시위자들을 체포·연행하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는 작년 10월 7일 하마스의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한 뒤, 명문대 총장들의 줄사퇴를 불러온 학내 갈등이 진정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격화되는 현실을 보여준다고 미 언론들은 지적한다. 흑인 최초 총장이었던 클로딘 게이 총장이 중도 퇴진한 하버드대에서도 후폭풍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대학 본부는 최근 학부 소속인 팔레스타인 연대위원회에 “올해 봄 학기 남은 기간 모든 조직 활동을 중단하라”고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번 주에는 기숙사와 인접한 ‘하버드 야드’ 대부분을 폐쇄하면서 “허가받지 않은 텐트를 설치하거나 건물 입구를 막으면 징계한다”고 공지해 학생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서부의 명문 스탠포드대도 최근 팔레스타인 시위대를 학내 치안 위협으로 간주하고 시위대를 해산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다.

이번 사태는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베트남전 반대 시위의 확산으로 미국 사회와 정치권이 격랑에 휩쓸렸던 1968년 상황과 흡사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해 4월 30일 뉴욕 경찰이 컬럼비아대에 들어가 시위대를 강경 진압하고 연행해 가는 등 베트남전 철군 요구 반전 시위대가 공권력에 진압되는 상황이 잇따라 벌어졌다.

그해 격렬하게 벌어진 베트남전 반대 시위는 미국 대선 결과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됐다. 베트남 전황 악화와 국내의 거센 반전 시위라는 악재에 직면한 민주당의 ‘현직’ 린든 존슨 대통령은 아예 대선 출마를 포기했다. 그해 대선에서 법질서 회복과 베트남전의 질서 있는 종결을 공약으로 내건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이 보수·반전 표심을 모두 끌어안아 민주당의 휴버트 험프리 당시 부통령에게 압승을 거뒀다. 집회·시위 권리를 강조하는 진보 노선을 추구하면서 아랍계·유대인 표심을 모두 의식해야 하는 민주당과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현 상황이 지속될 경우 대선의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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