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째 ‘지평리 전투’ 알리는 변호사… 양평군이 맥 잇는다

김수언 기자 2024. 4. 2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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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리를 사랑하는 모임’ 김성수씨, 양평서 몽클라르 장군 이야기 강연

“양평 지평리 전투는 또 하나의 인천 상륙작전이었습니다. ‘푸른 눈의 이순신’ 몽클라르 장군이라는 영웅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후세에 전하고 싶습니다.”

23일 오후 6시 30분 경기 양평군 용문면 다목적 청사에서 ‘지평리 전투와 몽클라르 장군’이라는 주제의 강연이 열렸다. 초등학생부터 6·25 참전 용사들까지 100여 명이 1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강연 내내 귀를 기울였다. 강연자는 ‘지평리를 사랑하는 모임’(지평사모) 대표를 맡고 있는 김성수(81) 변호사. 6·25전쟁 때 양평에서 프랑스 대대를 이끌었던 고(故) 랄프 몽클라르(1892~1964·프랑스) 장군과, 그가 승리로 이끈 ‘양평 지평리 전투’를 알리는 데 15년째 힘을 쏟고 있다. 지평리 전투는 당시 연합군 반격의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23일 오후 6시 30분 '지평리 전투와 몽클라르 장군' 주제 강연이 열린 경기 양평군 용문면 다목적 청사. 초등학생부터 6·25 참전 용사까지 참석자들이 강연에 앞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 앞줄 왼쪽부터 정희주 전 대우자동차 상용차 부문 사장과 전진선 양평군수, 김성수 변호사. 이날 강연을 맡은 김 변호사는 지평리를 사랑하는 모임 대표를, 정 전 사장은 이 모임 이사를 각각 맡고 있다. /양평군

김 변호사는 강연에서 “몽클라르 장군과 이순신 장군은 희생정신과 충실한 사명, 공포를 극복하는 용기 등 유사한 영웅 코드가 있다”면서 “몽클라르 역시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한 것처럼, 스스로 중령으로 강등해 대대장으로 한국에 와서 싸웠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지평리가 프랑스의 노르망디, 마지노처럼 한국의 문화유산이 됐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나서서 장군을 계승하고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강연은 양평군이 추진하는 ‘양평다움 찾기 프로젝트’의 출발점이었다. 양평군의 정체성을 찾는 시작이 ‘지평리 전투’라는 것이다. 전진선 양평군수는 “지평리 전투는 빛나는 승전의 역사로, 역사 속에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도전과 응전의 양평 역사”라고 했다.

6·25전쟁 중인 1951년 2월 지평리 전투가 시작된지 5일 뒤 전선을 방문한 맥아더(맨 오른쪽) 사령관과 만나고 있는 몽클라르(맨 왼쪽) 장군. /지평리를 사랑하는 모임

지평리 전투는 1951년 2월 13~15일 미군 23연대와 프랑스 대대 등 5000여 명이 남하하는 중공군 3개 사단 약 3만명을 상대로 승리한 싸움이다. 당시 국군과 유엔(UN)군은 중공군이 참전한 이후 장진호 전투에서 패배하고, 1·4후퇴로 서울을 빼앗겼다. 하지만 몽클라르 장군이 이끄는 프랑스군과 미군은 지평리에서 수많은 중공군의 포위 공격을 백병전으로 막아냈다.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을 지켜낼 수 있었던 전투로 기억된다.

제1·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프랑스 육군 중장이었던 몽클라르 장군은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대급 병력 600명을 이끌고 한국에 왔다. 참전을 위해 스스로 계급을 중령으로 3단계 낮췄다. 그는 곧 태어날 딸에게 “자유를 위해서 싸우는 프랑스군을 위해 참전했다는 이야기 선물을 주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김 변호사가 몽클라르 장군에게 반한 것은 지난 2009년부터다. 각종 소송 자료나 도서 등을 보관하기 위해 양평 용문역 앞에 있는 한 상가를 빌려 서고(書庫)를 만들었다. 김 변호사는 “(서고의) 바로 옆 동네가 지평리였는데, 서울과 양평을 오가면서 한 전적비(戰跡碑)를 봤다”며 “양평 사람들도 잘 모르고 있어서 지평리 전투를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지인 10여 명을 모아 ‘지평사모’를 만들었고, 아무런 대가 없이 지평리 전투 관련 자료를 복원하고 정리해 외부에 알리기 시작했다. 지평사모는 수소문 끝에 몽클라르 장군의 딸 파비엔느를 찾아 2010년 한국에 초청했고, 2013년엔 파비엔느씨가 쓴 몽클라르 장군의 전기(傳記)인 ‘한국을 지킨 자유의 전사’를 국내에서 출판하기도 했다. 2016년 6월에는 서울에서 몽클라르 장군의 사진과 유품 등 30여 점을 모아 추모전도 열었다. 모두 지평사모 회원들 사비로 추진한 사업들이다.

그 결과 작년 10월 국가보훈부는 양평 지평리의 자전거길 3421m를 ‘몽클라르의 길’이라고 명명하고, 초입에 기념 조형물을 세웠다. 6·25전쟁에 참전한 프랑스군 3421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양평군 관계자는 “김 변호사 등 지평사모의 노력으로 지평리 전투와 몽클라르 장군은 양평을 대표하는 역사문화 콘텐츠가 됐다”며 “앞으로는 지평사모가 해오던 일을 양평군이 나서서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양평군은 이번 프로젝트와 함께 지평리 전투의 역사를 담은 가칭 ‘양평역사박물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또 전투 참전국인 한국·프랑스·미국·중국을 아우르는 ‘지평리 전투 국제학술심포지엄’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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