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어반스케치] 반복의 매너리즘-나의 아파트

경기일보 2024. 4. 24.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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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 불고 꽃비 내리더니 누리 가득 새 잎이 번졌다. 레인지의 연두부가 익는 동안 창밖을 본다. 부감법 형식의 멋진 장면이 사유 없이 노출됐다. 다닥다닥 붙은 방들이 벼랑 끝 바위에 집을 지은 카파도키아 괴르메의 비둘기집 같다.

전원 속에 살겠다던 나의 꿈은 30년째 이 아파트에 살아온 공허한 헛꿈이 됐다. 그래도 화단의 교목과 담 너머 가로수들은 봄마다 싱그럽다.

아침 요기로 달걀을 팬에 올린다. 먹는 것도 정성을 다해야겠지만 늘 성가시다. 조각가 류인이 아내에게 주문했다는 계란프라이가 떠오른다.

불의 세기, 기름의 양, 시간을 따져 마지막에 프라이팬 뚜껑을 덮어 달걀의 윗면을 살짝 익힌, 바삭하고 촉촉한 궁극의 계란프라이 하나를 얻기 위해 10개를 연달아 부쳤다는.

나는 수년째 계란프라이 하나 제대로 완성하지 못했다. 물리적 계란프라이가 아닌, 궁극의 작품을 얻지 못한 회한이다.

달래 향 가득한 된장찌개가 그립지만 아침마다 똑같은 조찬을 부뚜막에 기대어 선 채 때운다. 먹는다는 것은 끊임없이 일하고 추구하라는 엄중한 장치 같다. 오늘도 따뜻한 물 한 컵에 연두부, 낫토, 닭가슴살, 파프리카 4분의 1개, 계란프라이, 사과 4분의 1쪽, 그릭요구르트 하나를 먹는다.

반복되는 아침 의식이 귀찮고 싫지만 세월에 저항 없이 나는 일상의 패턴을 형식화한다. 피트니스센터까지 걸어가서 운동하고, 작업실에 걸어가서 종일 작업하다가 밤이 돼 귀가한다. 잠자는 나의 거룩한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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