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허준이의 스승과 수학의 즐거움

도쿄/성호철 특파원 2024. 4. 24.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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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필즈상 수상자인 히로나카 헤이스케 하버드대 수학과 전 교수. 2024년 1월 중순, 도쿄 하라주쿠의 그의 자택에서 인터뷰했다./성호철 특파원

93세의 히로나카 헤이스케(広中平祐) 전(前) 하버드대 수학과 교수를 지난 1월 18일 일본 도쿄의 하라주쿠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만났다. 그는 1970년 ‘특이점 해소’라는 연구로 ‘수학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받았다. 일본 수학계를 이끈 히로나카 교수는 국내에선 한국인 최초 필즈상 수상자인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의 스승으로 더 유명하다. 허준이 교수는 2008년 잠시 서울대에 온 그의 수업을 듣고 수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석사 논문도 히로나카 전 교수의 특이점 연구를 응용한 내용이었다.

히로나카 전 교수는 “나 같은 고령의 ‘온보로’(고물)를 인터뷰해도 재미없을 텐데”라며 “요즘은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현관에서 그 말을 할 때만 해도 몰랐다. 인터뷰하는 100분 동안 히로나카 전 교수는 한 말을 반복했고, 때론 의미가 안 통하는 말도 했다. 천재 수학자의 총기(聰氣)와 기억도 93년이란 세월 앞에선 어쩔 수 없이 퇴색한 것이다.

긴 녹음을 여러 차례 재생한 것은 일본 최고 천재 수학자의 마지막 인터뷰가 될지 모른다는 아쉬움과 책임감 탓이다. 히로나카 전 교수는 “나와 맺은 관계가 허준이 교수의 필즈상 수상에 영향을 줬는지는 모르겠다”며 “다만, 나는 젊은 그에게 철저하게 수학에 몰두하라고 추천했다”고 말했다. “허준이 교수는 처음엔 수학이 아니라 문학 같은 데 관심을 보였는데, 수학이 참 좋다는 걸 알려줬다”고 했다.

히로나카 전 교수는 “수학은 참 재밌다”는 말을 20여 차례나 반복했다. 토막 난 그의 말을 이어 붙이면 이렇다. “본래 고등학교 때는 음악을 좋아했는데 교토대 입학하고 수학이 재밌다는 걸 알았다. 당시 수학자들은 정해진 방정식에 따라, 숫자로서 수학 문제를 풀었는데 재미없었다. 계산식에 얽매이지 않고 내 성격에 맞게 푸는 거야. 물고기를 요리한다고 하면 회를 치든 찜을 하든 물고기의 본질은 변하지 않아. 푸는 방식이 달라져도 물고기가 커지거나 작아지진 않으니까. 정해진 방정식에 구애받지 않고 조건을 빙빙 바꿔도 돼. 본질은 안 변하니까. 엄청 재밌어. 수식이나 숫자가 아니라 문장으로 수학 문제를 푼다고 할까. 특이점 연구는 그런 거야. 문제를 여러 측면으로 풀다 보면 뾰족하고 단단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보이는데 그게 특이점이야. 그걸 해소하는 거지.”

히로나카 전 교수의 좌우명은 ‘소심심고(素心深考)’다. 의미를 물었더니 “젊을 때 사인해 달라면 자주 썼던 글귀”라며 웃고는 다시 상관없는 다른 말을 했다. 소심심고는 소박한 마음으로 돌아가 깊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20대 청년과 같은 그의 웃음에 미리 준비한 ‘문과 고등학생에게 미적분을 가르쳐야 하나’라는 질문은 할 수 없었다. ‘수학은 참 재미있다’는 걸 아이들에게서 빼앗고 수포자로 만든 건 우리 사회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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