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강원 - 특별함 있는 강원도 농어촌살이] ⑤ 화천 간동면 블루베리 농원 ‘채향원’ 김응수 대표

안의호 2024. 4. 24. 00:0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첫 눈에 반한 푸른 열매와 운명적 만남 ‘베리 굿’
출장 간 러시아 연구소서 만난 블루베리
귀국 후 만난 박사에 재배법 등 전수받아
일상 벗어나 쉬러 온 화천 파로호 낚시터
인근에 꿈꾸던 블루베리 농장 부지 구입
대학 교수·대기업 임원 내려놓고 ‘귀농’
국내외 견학 등 공부해 황량한 땅 개척
시행착오 겪으며 얻은 재배기술 전파
2008년부터 축제 개최 등 지역과 상생
남북경제협력 공동사업 무산돼 아쉬움

화천 간동면에서 20년째 블루베리 농원인 채향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응수 대표에게 강원특별자치도, 특히 화천군은 생면부지의 땅이었다.

지금은 원과실인 블루베리를 비롯해 블루베리 와인과 식초, 김치까지 다양한 가공식품을 생산하면서 채향원은 김 대표의 성공 노하우를 배우려고 전국에서 많은 방문객이 찾아오는 ‘평생의 꿈을 실현한, 약속의 땅’이 됐지만 처음 정착 무렵만 해도 모든 것이 결과조차 장담할 수 없는 무모한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런 도전이 가능했던 것을 김 대표는 “두 가지의 운명적 끌림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첫 번째 끌림-낯선 곳에서 만난 블루베리

1957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 대표는 고향에서 대학까지 마치고 고등학교 교사를 하다 서울의 한 대기업으로 이직해 마케팅 업무와 마케팅 전략 컨설팅을 하며 해외 여러나라를 방문하며 견식을 넓혔다. 그런 방문지 중 하나인 러시아의 한 연구소를 방문했다가 만난 게 당시엔 이름조차 생소했던 블루베리였다.

연구소 옆 공터에 관상용으로 심어놓은 듯한 나무에 토끼똥만한 짙은 보라색 열매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이 신기해 연구원에게 “관상용이냐”고 물었다가 “약성이 뛰어난 과실수”라는 답변을 들었던 것을 김 대표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단다. 북방계 식물이라 추운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이 나무는 러시아인들이 ‘가정 상비약’ 개념으로 집마다 심는다고 했다.

블루베리와의 첫 만남이 너무 인상적이었기 때문에 당시엔 딱히 이유는 없었지만 나중에 만난 러시아 농업과학아카데미의 니콜라이 박사에게서 블루베리의 재배방법 등에 대해 배웠다. 화천에서 농장을 경영하면서 그때 배운 방법은 실제로 큰 도움이 됐다.


모든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김 대표의 인생철학 때문에 니콜라이 박사뿐 아니라 직장에서, 대학에서 만난 동료, 후배들도 농장에 급한 일이 있을 때마다 불원천리 원조의 손길을 보내준다.

이처럼 소중한 만남을 이어준 블루베리를 김 대표는 지금도 ‘나의 두 번째 연인’이라고 부른다.

▲ 채향원에서 생산한 블루베리 상품

#두 번째 끌림-북방계식물의 남방한계선에 걸쳐 있는 화천

대기업과 대학에서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산 김 대표에게 가끔은 일상을 벗어나 조용하게 쉴 곳이 절실했다. 인생의 중반을 넘기던 2000년대 초입, 지인의 소개로 찾은 쉼터가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에 있는 파로호의 한 낚시터였다. 주말이나 휴일이면 화천을 방문해 구만리 배터 인근의 빈 상가건물에 묵으며 빈 호수에 낚시 줄을 드리우고 물고기 대신 삶의 에너지를 가득 채우고 생활 터전인 서울로 돌아가곤 했다. 그 상가건물의 새 주인이 김 대표에게 이제부터는 사용할 수 없다고 일방적으로 통지할 무렵엔 이미 화천이라는 곳에 정이 깊이 들었다. 김 대표는 그때 그동안 꿈만 꾸던 블루베리 농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화천에서 실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북방계 식물인 블루베리를 재배할 수 있는 적지가 화천이라고 평소에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곧바로 농장 부지를 마련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고 배터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간동면 유촌리 용화산 자락에서 마음에 꼭 드는 땅을 찾았다. 서울에 거주하는 땅 주인 역시 장래 귀촌할 목적으로 소유하고 있던 땅이어서 팔기를 거절했지만 웃돈까지 주며 사정사정해 농장터를 구입했다. 2005년의 일이다. 대기업 임원으로, 대학교수로 일하던 자신의 시골행을 흔쾌히 허락해준 아내의 배포가 김 대표는 지금도 고맙다.

▲채향원을 찾은 방문객들이 체험공간에서 빵 만드는 실습을 하고 있다.

#농장 만들기와 블루베리 공부

덜컥 땅을 구입했지만 당시의 농장부지는 10여년간 비어 있던 낡은 집과 부서진 외양간, 동네분이 김장하려 심어둔 100여포기의 배추가 심겨져 있는 황량함 그 자체였다. 농장을 만들겠다고 작정은 했지만 블루베리 재배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어서 그해 겨울, 전국의 블루베리 농장과 해외 농장을 견학하며 본격 공부를 시작했다.

또한 각 농장에서 얻어온 묘목이 춥고 긴 화천의 겨울을 견딜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야외에 이식해 기르며 내한성을 실험했다. 실험한 묘목은 모두 멀쩡해 자신감을 얻었다. 이듬해 봄에는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 진입로 포장 등 농장을 본격적으로 조성했다. 또한 국내에서는 묘목을 구입하기 힘들어 삽목기술을 배워 일본에서 구입해온 블루베리 가지로 묘목을 길렀다. 당시 간동농협에서 김 대표의 채향원을 블루베리 육묘 시범포장으로 지정해줘 육묘에 큰 도움을 받았다. 화천군과 산림청 등 관계기관도 새로 도입하는 작목이라 많은 도움을 줬다.

이같은 도움에 보답하기 위해 김 대표는 육묘장에서 생산한 묘목을 지역 주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줬다. 혼자보다는 함께 가야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시 나눠준 묘목의 상당수는 첫해 겨울에 모두 고사했다. 알고보니 김 대표가 가르쳐준 재배법 대신 블루베리 농업을 먼저 시작한 남쪽 농가에서 배운 기술(평지가 아닌 이랑에 심는 방법)을 적용해 뿌리가 얼어죽었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된 농사기술의 필요성을 절감한 김 대표는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농장을 개방해 재배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김응수 대표는 과일을 수확하는 여름에 정기적으로 가족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블루베리 농장 채향원

2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김 대표는 블루베리로 전국에서도 내로라하는 일가를 이뤘다. 덕분에 2011년엔 강원농업인정보화경진대회에서 동영상 부분 대상을, 2014년엔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을 수상하는 등 상도 많이 받았다. 또한 지역주민들과 함께 성공하는 농장이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2008년부터는 농장에서 ‘화천 블루베리축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지역의 예술활동가들과 함께 음악회와 전시회 등 소소한 공연·전시행사도 진행하고 있다. 여름철 열매 수확기에는 학교나 단체, 가족단위 체험행사도 운영한다.

이같은 노력 덕분에 20여년 전만해도 생소했던 블루베리는 이젠 일반인들도 쉽게 떠올리는 웰빙푸드로 자리매김했다. 채향원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블루베리 식빵과 잼·청·식초 등 다양한 가공상품을 생산하고 있다.

지난 1월 열린 화천산천어축제에서는 채향원에서 생산한 블루베리 김치가 처음 소개돼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채향원 가공식품 중 엉뚱하게 시작했지만 농장의 대표 상품으로 자리매김한 블루베리 와인은 강원도민일보 이수영 논설위원의 제안으로 시작했다. 농장 운영 초반이던 2009년, 농한기인 겨울철에는 6개월 이상을 비생산적으로 보내야 하는 상황에 대해 고민하던 김응수 대표에게 개인적 친분으로 농장에 놀러왔던 이 위원이 “블루베리로 와인을 만들어보는게 어떻겠냐”고 제안한 것. “만들었다가 안 팔리면 둘이 나눠 마시면 안 되겠냐”며 웃으며 주고 받았던 말이 계기가 돼 3년이 지난 2011년 실제 상품으로 출시했다.

▲김응수 대표가 채향원의 와인공장에서 제조공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접경지라서 더 절실한 꿈

김응수 대표는 지난 정부 남북경제협력 움직임이 본격화할 때 블루베리 재배사업을 남북공동사업으로 진행하는 방안을 제안해 실행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 된 것을 아직도 가장 아쉬운 일로 생각하고 있다. 원래 북방계 식물인 블루베리는 영하 30도까지의 추위도 견딜 수 있는 내한성 작목인데다 일교차가 클수록 맛있는 과일을 생산할 수 있는 작목이라 남북교류작목으로는 최적의 품목이기 때문이다.

강원도 북쪽에서 양질의 블루베리를 생산하고 남쪽인 화천에서 그것으로 가공식품을 만드는 구상을 한 김 대표는 이를 ‘한반도 블루베리’라 명명, 지금도 구체적인 실현계획을 가다듬고 있다.

김응수 대표는 “저는 채향원은 주주들의 것이라고 늘 생각하기 때문에 자식들에게도 농장을 물려받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고 말했다”며 “채향원이 블루베리의 모든 것이 되는 장소로 키우기 위해 앞으로도 전력질주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의호 eunsol@kado.net

 

#블루베리 #운명적 #간동면 #김응수 #화천군

Copyright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