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엑스레이] [17] 모두가 김훈이 될 수는 없다
노래 못하는 가수를 좋아한다. 가수가 노래를 못하면 어쩌냐고? 더 정확히 말하자. 나는 노래 좀 못하는 가수도 좋아한다. 1990년에는 미국 가수 폴라 압둘을 참 좋아했다. 노래를 참 못했다. 휘트니 휴스턴은 다큐멘터리에서 이렇게 저격한 적도 있다. “걔는 음반에서도 음정이 틀린다고요.”
요즘은 역시 미국 가수인 라나 델 레이를 좋아한다. 데뷔 시절부터 라이브 못하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그는 올해 한국 걸그룹 르세라핌이 참가한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헤드라이너(대표 출연자)를 맡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공연을 두고 “매가리 없는 보컬로 분위기를 조졌다”고 썼다.
폴라 압둘은 대신 기막힌 댄스 감각으로 명반을 남겼다. 라나 델 레이는 대체 불가능한 분위기와 작곡 실력으로 매년 그래미 후보에 오른다. 모든 성공한 가수가 절창을 할 줄 아는 건 아니다. 모두가 휘트니 휴스턴인 세상은 볼륨이 지나치게 높아 견디기 힘들 것이다.
한국만의 특이한 유행이 있다. 라이브 공연에서 ‘MR(Music Recorded) 제거’ 버전을 만들어 공유하는 유행이다. 반주를 제거하고 순수한 보컬만 따서 평가하는 것이다. 르세라핌 코첼라 공연도 MR 제거 버전이 돌며 곤욕을 치렀다. 좋은 가수를 만드는 건 무엇인가. 고음을 잘 지르는 차력인가. 그렇다면 동네 노래방에서 소찬휘 노래를 제일 잘 부르는 사람이 가수가 되어야 한다. 가수를 만드는 건 성대만은 아니다. 사람 끄는 매력과 무대 장악력 등 많은 요소가 결합해 성공적인 가수를 만든다.
MR 제거를 다른 분야에도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배우 외모를 제거하고 순수한 연기력만 평가하는 것은 가능할까. 글에서 잔재주를 제거하고 평가하는 건? 마크 트웨인은 “부사를 뺄수록 좋다”고 했다. 단문으로 유명한 김훈은 “주술 관계만으로 글을 쓰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그들에 따르면 나는 글러 먹었다. 어쩌겠는가. 모두가 휘트니 휴스턴이 될 수 없듯이 모두가 김훈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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