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바보야, 문제는 경제가 아니고 개혁이야”
“장기적으로 우린 모두 죽는다(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 단기적 처방이 없어도 장기적으로는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경제학자 케인스가 사용한 촌철살인이다. 그런데 이 명언은 마치 단기적 수요 관리 정책이 모든 경제 문제의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양 지나친 기대감을 주는 데 자주 인용된다. 특히 요즘은 선진국이든 후진국이든 단기적 수요 관리 정책을 선호하다 보니, 장기적 변화의 대응에 뒤처지게 되고 외부 충격에도 취약해진다. 가장 대표적 사례는 1992년 미국 대선에서 클린턴 진영의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유명한 선거 구호다. 클린턴은 미래를 위한 경제 체질 개선보다 지금 당장 유권자가 처한 경제적 어려움 해소를 강조했고, 결국 이겼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정책 당국도 단기 처방을 좋아한다. 경제성장을 결정하는 공급 측면의 정책은 수요 관리를 중심으로 한 재정·금융 정책보다 어렵고 정교한 구조 개혁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구조 개혁은 노동, 교육, 연금, 의료, 기술, 제도 등 그 분야가 무엇이든 경제 주체의 고통 분담을 요구한다. 개혁의 효과도 장기간에 걸쳐 나타난다. 따라서 “당장 먹기엔 곶감이 좋다”고 단기 정책이 대세를 이루면서 기후변화, 노령화, 기술 변화 등 장기적 대응 과제들은 우선순위에서 종종 밀려난다. 반면에 단기적 대증요법의 결과로 인플레, 임금 상승, 재정 건전성 악화가 나타난다. 이는 필연적으로 잠재성장률의 지속적 하락으로 귀결되는데, 실제 IMF는 중·장기 세계성장률이 1990년 이래 최저가 될 것으로 경고하기도 했다. 사람으로 치면, 병의 원인을 치료하지 않고 대증요법만 지속하다가 저항력과 면역력이 바닥을 친 셈이다.
더구나 저성장이 계속돼 경제 주체가 성장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리고 축소 지향적 경제행위를 하게 되면, 정책을 처방해도 약발마저 듣지 않는 ‘이력효과(hysteresis)’가 나타난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우리 경제도 이미 경제 주체들이 저성장에 익숙해지는 이력효과가 우려된다는 점이다. 지난해 1.4% 성장에 이어 올해에도 2% 초반에 머물 전망이다. 세계 경기 사이클과 괴리가 크다는 점에서 잠재성장력 고갈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저성장의 이력효과에 빠지면 정부가 금리 인하나 조세 감면 등 수요 관리 정책을 강화해도 기업이 선뜻 투자에 나서지 않는다. 소비도 마찬가지여서, 가계가 저성장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소비를 줄이기 시작하면 정책의 가성비가 급락한다.
지금 우리 경제는 저성장의 이력효과가 일시적으로 그치느냐, 고착화되느냐는 갈림길에 서 있다. 수요 중심의 케인스 경제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함께 공급 중심의 구조 개혁으로 잠재성장률을 높여야 할 시기다. 우선 경제적 통치술(economic statecraft)로서 구조 개혁을 위한 포괄적이면서도 세심한 전략이 필요하다. 개혁의 방향과 과제에 대한 경제 주체들의 컨센서스를 확보하고, 제도와 정책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과 전열 재정비가 요구된다. 차세대 성장 동력의 육성, 연구·개발 투자의 확대, 과학기술 인력의 양성 등 미래를 준비하는 중·장기적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지금 구조 개혁에 나서지 않으면 우리 경제의 지속 가능성은 담보할 수 없으며 결국에는 민주주의 체제가 지탱할 수 없다. 지금 선택하는 정책의 축적이 대한민국의 미래다. 클린턴 화법으로 결론을 내리자면, “바보야, 문제는 경제가 아니고 개혁이다(It’s not the economy, but the reform, stup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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