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심화하는 고령화 대비 못하면
사회 혼란과 갈등 더 심각해져
연금개혁은 단지 첫걸음일 뿐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 한 남성이 노인요양시설에 침입해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다. 이 남성은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노인들이 정부 재정을 축내고 청년들의 기회를 빼앗고 있다며, 자신의 행위가 사회의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은 75세 이상 노인의 자발적 죽음을 국가가 지원하는 전대미문의 정책을 시행한다.
나문희와 김영옥, 박근형이 호흡을 맞춘 올해 개봉작 ‘소풍’은 아름다운 산길 초록 풍경을 담은 따뜻한 느낌의 포스터나 제목과 달리 죽음을 선택할 권리라는 무거운 주제를 건드린다.
힘겨운 삶의 무게를 견디며 키워낸 은심의 아들은 사업을 한다며 평생 모아둔 재산을 다 탕진하고, 마지막으로 남은 집문서까지 욕심을 낸다. 이제 기억력마저 옛날 같지 않다는 걸 깨달은 은심은 60년 만에 고향을 찾아 학창시절 단짝이었던 금순과 함께 16살의 추억을 만끽하지만 가슴 한편이 아리다.
젊은 시절 추억은 아름답지만, 마주하는 현실은 치매에 걸린 뒤 가족에게 버림받고 요양원에 꽁꽁 묶여 있는 친구와 급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한 친구의 장례식,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기력을 잃고 있는 자신이다. 은심과 금순은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 고민한다.
유엔 등에 따르면 세계 인구는 2022년 11월 기준으로 80억명을 돌파했고, 2037년이면 90억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하지만 이는 우리나라와는 무관한 얘기다. 남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한 최빈개도국에서 1분에 240명의 아기가 태어나는 동안 선진국에선 1분에 25명의 아기만 태어난다.
우리나라의 출생률은 선진국 중에서도 바닥이다. 지난해 0.72명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에도 못 미친 우리나라의 연간 합계출생률은 올해 0.6명대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아기 울음소리가 그치면서 젊은 세대인 생산연령인구 100명당 부양해야 할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2022년 40.6명이 됐고, 2058년엔 100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22일 연금개혁특별위원회 공론화위원회는 새로운 국민연금 개혁안을 제시했는데, 고갈 시한을 늦출 뿐 영구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연금뿐만 아니라 최근 많은 사회문제가 인구 변화에 기인한다. 청년 실업, 치매, 노인 빈곤, 그리고 안락사 문제까지….
선진국의 출생률 감소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언제부턴가 우리나라가 인구 감소로 미래에 사라질 ‘선두 국가’로 전 세계에서 이름을 알리게 된 책임에서 정부는 자유롭지 않다.
‘플랜75’의 주인공은 75세 노인뿐만 아니라 이들을 죽음으로 안내하는 젊은 공무원, 고독하게 죽음을 맞을 노인들을 위로해 주는 젊은 전화 상담사, 그리고 삶을 마감한 이들의 유품을 정리하는 외국인 노동자 모두다. 죽음에 내몰린 노인과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야 하는 청년세대의 고민, 이를 지켜보는 외국인 노동자를 통해 영화는 변화에 직면한 우리 사회를 보여준다.
두 영화 중 한 영화는 이미 현실이고, 다른 한 영화는 생각보다 가까운 시일 내에 우리가 맞닥뜨릴 모습인지도 모른다. 출생률 감소의 위험을 간과한 것과 마찬가지로 고령화 심화에 대비하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더 심각한 혼란과 갈등의 늪에 빠질 수 있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대비가 시급하다. 연금개혁은 그 시작일 뿐이다.
엄형준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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