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눈으로 시장을 그려라”… 3000조 엔비디아 일군 개척정신[이준만의 세상을 바꾼 기업가들]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 2024. 4. 23.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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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칩’ 엔비디아 CEO 젠슨 황
《요즘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주목받는 경영자는 단연코 검은색 가죽점퍼를 입고 다니는 엔비디아의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이다. 2013년부터 거의 모든 공식 석상에 가죽점퍼를 입고 나와 ‘쿨’하고 자유로운 느낌의 개인브랜딩(PI)에 성공했다.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가죽점퍼 때문만은 아니다. 젠슨 황이 1993년 창업한 엔비디아는 인공지능(AI) 붐을 타고 5년간 약 20배로 성장했다. 올해 4월 약 3000조 원의 가치를 지닌 회사가 됐다. 엔비디아는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에 이어 미국 증시에서 3번째로 시가총액이 큰 기업이다. 엔비디아는 과거 인텔과 MS가 PC 시장에서 대체 불가능한 독점적 지위를 누린 것처럼 AI 산업계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인텔과 MS는 각각 중앙처리장치(CPU)와 소프트웨어 시장을 장악하고 삼성, LG, 델 등이 PC를 판매해 얻는 대부분의 경제적 가치를 가져갔다. 엔비디아 역시 수많은 AI 회사가 선택하는 반도체를 생산하여 막대한 돈을 벌고 있다.》



실리콘밸리서 키운 창업가의 꿈


젠슨 황은 겸손한 유머와 간결한 논리로 복잡한 기술을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다. 미래 비전을 제시하며 직원들을 이끄는 전형적인 미국식 리더의 모습도 보인다. 대만계 이민자인 젠슨 황은 어떻게 미국을 넘어 세계시장을 장악한 혁신기업의 CEO가 됐을까.


1963년 대만에서 태어난 젠슨 황은 9세 때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학교에서 아시아계 이민자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학업에 매진해 16세에 오리건주립대에 들어갔고 전기공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에는 반도체 회사인 AMD와 LSI로직에서 일을 하면서 주경야독하였고 스탠퍼드대에서 전기공학 석사 학위를 땄다. 이 시기는 그의 인생을 드라마처럼 바꿔놓았다.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
실리콘밸리 거점대학인 스탠퍼드대는 기업을 세우고 자금을 유치하기 좋은 환경을 갖춘 세계 최고 창업의 요람이었다. 구글, 넷플릭스, 나이키, 엔비디아, TSMC 등 스탠퍼드대 졸업생이 창업한 기업의 시가총액을 모두 합하면 세계 10위권 국가의 전체 기업 시가총액 합보다 많다. 젠슨 황은 스탠퍼드대 학생과 졸업생이 서로 협력하는 창업 생태계에서 전 세계에서 모인 인재들과 어울리며 창업에 눈을 떴다.

젠슨 황이 AMD와 LSI로직에서 일한 경험은 그가 그래픽처리장치(GPU)라는 새로운 반도체 시장 기회를 포착하고 관련 전문가들과 인맥을 쌓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젠슨 황은 선마이크로시스템스에서 일하고 있던 크리스 맬러차우스키와 커티스 프림과 친분을 쌓으며 엔비디아를 공동 창업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이 창업한 이후 투자자를 찾으러 다닐 때 미국의 전설적인 벤처캐피털인 ‘세쿼이아’를 소개한 이가 젠슨 황이 근무했던 LSI로직의 대표였다. 한국이라면 ‘배신자’로 찍힐 수 있는 퇴사자를 벤처캐피털에 적극적으로 추천한 것은 실리콘밸리 창업 생태계의 개방성을 보여준다.

미국에서는 엔비디아처럼 동일한 산업군에서 새롭게 창업한 회사들을 스핀아웃이라고 부른다. 많은 경영학 연구에 따르면 이런 스핀아웃들은 산업 내 경험이 없는 신생 기업에 비해 월등히 더 높은 인적, 사회적, 기술적 자본들을 갖게 된다. 이에 따라 생존 확률이 더 높고 더 많은 투자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참고로 AMD는 현재 엔비디아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 회사다. AMD의 CEO도 대만에서 태어난 이민자 리사 수이며 젠슨 황과 멀지 않은 친척이라는 사실은 드라마틱하다.


실패 위험 두려워 않는 조직문화

창업가는 많지만 젠슨 황처럼 성공하기는 무척 어렵다. 혁신가로서의 전략적 선택들이 스타트업을 세계적 혁신기업으로 키운 원동력이다. 첫째, 젠슨 황은 기존 시장에서 경쟁하지 않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려고 노력했다. 창업 초기 GPU를 통해 PC 게임 시장의 성장을 견인하는 역할을 했고 블록체인, 딥러닝, AI 등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현재 시장이 없더라도 많은 사람이 불편함을 겪는 주요 문제들을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면 노력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선택이 미래에 엄청난 수요를 창출할 것으로 믿었다. 현재가 아닌 미래를 바라보는 눈으로 남들과 다른 독창적 가치를 제공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매진했다.

둘째, 미래지향적 사업관에 따라 위험을 감수하는 조직 문화를 만들었다. 엔비디아는 많은 실패를 경험했지만 결국 AI 반도체 시장의 지배자가 됐다. 젠슨 황이 조직 전체에 심어놓은 실패에 대한 ‘회복력(Resilience)’과 ‘실패에 대한 내성(Tolerance for Failure)’을 강조하는 조직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젠슨 황은 “실패에 대한 내성이 없다면 새로운 실험을 하지 못하고, 실험하지 않는다면 혁신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학계에는 실패에 대한 내성이 많은 투자자가 있는 기업이 더 많은 기술적 혁신을 이룬다는 연구들도 있다.

스타트업처럼 팀원들과 메일 소통

마지막으로 엔비디아를 수많은 아이디어가 유기적으로 결합해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조직으로 만들었다. 한 조직이 기술적 혁신을 하려면 기존 기술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애플은 전화기, 터치스크린 아이팟, 인터넷 소통 기술들을 조합해 스마트폰 시장을 개척한 아이폰을 개발했다. 최근에는 많은 기업이 레이더, 카메라, 초음파, 데이터 처리 및 데이터 전송 등 기존 기술들을 새롭게 조합해 무인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고 있다. 젠슨 황은 “위대한 아이디어들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 그런 아이디어들이 활성화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는 수평적 조직을 구성하고 직원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쉽게 공유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있다. 일례로 젠슨 황은 업무시간의 상당 부분을 직원들과 소통하는 데 쓴다. 부사장급부터 팀원까지 직접 e메일로 소통하고 사업 현안 및 기술적 문제들을 챙긴다. 50명이 넘는 매니저들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아 임직원들이 사장에게 의견을 쉽게 전할 수 있게 한다. 직원들에게 중요한 업무 결정을 직접 내릴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고 다양한 의견이 실제 사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조직을 운영한다. 젠슨 황은 3000조 원이 넘는 기업을 ‘세상에서 가장 작은 거대 기업’, ‘스타트업과 같은 거대 기업’처럼 운영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한국의 엔비디아-젠슨 황 나오려면

세계적인 기업가는 우연히 나오지 않는다. 한국 기업가 중 실패를 겁내지 않고 과감하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이미 존재한 시장에서 작은 성공을 쉽게 가져가기 위해 뻔한 시장에 뻔하게 진출하는 건 아닌가. 대기업들이 요식업, 건설업에 뛰어드는 모습은 혁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자본이 풍부한 대기업들이 모험적인 시장 개척자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도맡아 줘야 한다. 우리나라 스타트업에서 이런 도전적인 모습이 보인다는 점은 다행이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순간 새로운 조합의 혁신은 기대할 수 없다. 비슷한 사람을 뽑아 비슷한 교육을 통해 비슷한 직원들을 만들어 내면 효율성을 높일 수는 있지만 이런 과정에서 기업이 만들 수 있는 새로움은 사라진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똑같은 일을 계속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했다. 유사한 사람들만 모아놓고 새로움을 기대하는 것 역시 우스운 일이다. 혁신기업이 지배하는 시대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활용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조성해 나가는 것이 시대에 걸맞은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준만 서울대 경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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