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로맨스 스캠’ 구제 안돼 또 운다

한예나 기자 2024. 4. 23.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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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성규

의류 사업을 하는 A씨(30)는 이달 초 언어 교환 앱을 통해 홍콩에 산다는 여성 B씨와 채팅을 주고받았다. B씨는 “남자 친구와 헤어져서 힘들다”거나 “나도 의류 사업을 하고 싶은데 돈이 없다”라며 A씨와 친해졌다. 그는 A씨에게 온라인 게임용 아이템 매매 사이트 주소를 알려주며 “이곳에서 같이 돈을 벌어보자”고 했다. 이 사이트 계좌 번호로 돈을 입금한 뒤 아이템을 사고팔아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었다. A씨는 “맨 처음엔 B씨가 20만원을 내 계좌로 입금해줬고, 채팅을 통해 B씨와 친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진짜라고 믿었다”며 “수차례에 걸쳐 3000만원 정도를 입금했는데도 자꾸 돈을 더 보내라고 해서 사기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성규

◇로맨스 스캠 피해 두 달간 185건

사랑인 척 위장한 사기 행각을 뜻하는 ‘로맨스 스캠’ 범죄가 일상에서 번번이 일어나고 있다. 로맨스 스캠은 로맨스(사랑)와 스캠(사기)의 합성어다. 범죄자들은 주로 소셜미디어(SNS)에서 이성에게 접근해 호감을 얻은 뒤 돈을 뜯어낸다. 호감형 외모의 인물을 계정 사진으로 내세우고, ‘당신이 마음에 든다’ 등의 말로 사람을 홀리는 것이 특징이다.

외로운 중장년층이 쉽게 표적이 되지만, 소셜미디어 활용에 능숙한 2030대도 예외는 아니다. 직장인 이모(29)씨는 지난 15일 데이팅 앱에서 만난 남성에게 1800만원가량을 뜯겼다. 그는 “잘생긴 젊은 남성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걸어두고, ‘밥은 잘 먹었냐’ 등의 일상적인 대화도 많이 해서 의심할 건더기가 없었다”고 말했다.

관련 범죄가 늘어나자 경찰청은 올해 2월부터 로맨스 스캠 범죄를 별도 항목으로 분류해 통계를 내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사이버 사기의 기타 항목에 포함했다가 따로 떼어내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 2월부터 3월까지 두 달간 접수된 로맨스 스캠 신고 건수와 피해액은 각각 185건, 188억원에 달한다.

피해자들은 피해를 당한 사실이 창피해서 수사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본인 탓을 하며 숨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에서 만난 사람에게 사기를 당한 40대 여성 C씨도 그중 한명이다. 이혼을 준비하고 있던 C씨는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라고 본인을 소개한 남성과 매일같이 연락하고 사진 등을 주고받았다.

C씨는 그의 추천에 따라 주식 투자를 하다가 마지막엔 약 1억원을 그에게 보냈다고 한다. 이후엔 그와 연락이 끊겼다. C씨는 “연락이 끊기고 나서야 사기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창피해서 자식이나 지인들에게 알리지도 못하고 너무 힘들다”고 했다.

◇계좌 지급 정지는 적용 안 돼

보이스 피싱처럼 피해 확산을 막을 최소한의 대처법이 마련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전화를 이용한 사기 범죄인 보이스 피싱이라면 피해자는 사기꾼의 계좌를 동결하는 ‘계좌 지급 정지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현행 통신사기 피해 환급법에 따르면 보이스 피싱 피해자가 금융회사에 계좌 입출금 금지를 요청하면, 금융사는 즉각 지급 정지를 해야 한다. 하지만 로맨스 스캠은 이런 지급 정지 제도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로맨스 스캠은 피해자가 아니라 경찰이 요청하는 경우에만 은행이 지급 정지를 해준다.

전문가들은 이런 신종 범죄에 발맞춰 제도적 보완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지난 2020년 로맨스 스캠 피해가 발생할 경우 계좌 지급 정지 등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는 ‘다중 사기 범죄 방지법’이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지급 정지 제도 대상을 확대할 경우, 사적인 앙심 등을 품고 다른 사람의 계좌를 사기 계좌라고 주장하며 지급 정지를 요청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반론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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