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경제민주화 열망한 민심에 부응해야
22대 국회 개원이 한 달 남짓 남았다. 이번 총선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이기도 했다. 2022년 6월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정부는 성장-복지의 선순환을 경제운용 목표로 제시하고, 민생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선정했다. 총선 기간에는 무려 24차례의 민생투어를 통해 대통령이 방문지역의 개발정책과 숙원사업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하지만 여당은 패배했다. 왜 그랬을까?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무엇보다 국민의 절박함을 헤아리지 못한 정책이 민심을 돌아서게 했다.
코로나19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의 3고로 민생경제가 어려워지고 있지만, 정부는 감세정책과 긴축정책으로 일관했다. 소득주도성장을 민간주도성장으로 대체하고, 민생회복을 강조하면서도 정책은 ‘줄·푸·세’로 회귀했다. 부자 세금을 더 깎아주고, 전봇대 뽑듯이 규제를 철폐하며, 법질서를 강조했다. 때로는 보이는 손이 시장의 순기능을 방해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2년의 성과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2023년 경제성장률이 전년 대비 1.2%포인트 하락했음에도 정부 부문의 국내총생산에 대한 성장기여도는 0.1%포인트 떨어졌다. 재정의 경제안정화 기능이 취약한 상태에서 재정을 긴축적으로 운용한 결과이다. 2023년에는 45조7000억원에 달하는 예산 불용이 발생했고, 2024년 중앙정부 총지출(본예산 기준)은 역대 최저의 증가율(2.8%)을 기록했다. 성장세가 약화되면서 계층 간 소득 격차가 확대되고, 가계부채가 늘면서 중상위층의 적자 가구 비율도 증가했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2023년 4분기 시장소득 5분위배율(소득 상위 20% 계층의 평균소득을 소득 하위 20% 계층의 평균소득으로 나눈 값)이 전년 동기보다 상승하여 계층 간 소득 격차가 확대됐고, 재산소득이 소득의 양극화를 주도했다. 상위 20% 소득계층의 적자 가구 비율은 7.3%이지만, 하위 20% 소득계층은 55.8%에 달했다.
한편 2023년에는 무려 56조4000억원의 세수결손이 발생했다. 세수결손은 실질경제성장률과 GDP 디플레이터를 높게 전망한 결과이고, 그 이면에는 낙수효과에 대한 낙관적 기대가 자리잡고 있었다. 하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관행,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성별 임금 격차, 기업지배구조 등이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낙수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대규모의 세수 오차는 재정의 효율적 운용은 물론 거시경제의 안정과 성장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현재 한국경제는 재정중독이 아니라 재정결핍으로 신음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2년 정부의 총지출과 총부채는 각각 GDP 대비 28.7%와 53.8%로 선진국 평균 40.9%와 71.1%를 크게 밑돌고 있다. 반면에 2023년 3분기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가계부채는 GDP 대비 101.5%로 선진국 평균 70.8%를 크게 웃돌고 있다. 재정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가계 빚이 늘어난다. 작금의 한국경제가 처한 현실은 민생경제의 회복과 구조개혁을 위한 조세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양극화와 불평등 해소, 저출생 대책, 사회안전망과 세수기반 확충, 자산과세 정상화, 기후위기에 대응한 탄소세, 비정상 초과이윤에 대한 횡재세, 연금개혁과 의료개혁, 교육예산 제도 개편, 전국민고용보험제도의 확대, 지역균형발전을 견인하는 재정분권, 사회적 수요에 부응하는 재정운용 거버넌스 등은 22대 국회에서 다루어야 할 조세재정 분야의 주요 과제이다.
조세법률주의하에서 조세재정체계의 개편은 입법권과 예산심의권을 보유한 국회의 소관이다. 시장경제가 효율과 성장을 추구한다면,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불평등의 해소는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핵심 과제이다. 양극화와 불평등을 방치하면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어 경제의 존립 기반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그래서 1원 1표의 원리는 1인 1표의 원리로 보완되어야 하고, 대한민국 헌법 제119조 2항(일명 경제민주화 조항)에서는 상생의 원리를 명시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은 상생을 위한 개혁조치를 과감히 추진하라는 것이고, 그 중심에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다. 22대 국회가 민심에 부응하는 정책으로 국민의 선택에 응답하기 바란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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