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군인이면서 어머니인 여자가 전쟁 영화 주인공일 때
다큐멘터리 영화 <Darvazeye Royaha>(페르시아어로 ‘꿈의 문’이라는 뜻)는 1989년생 이란 태생의 쿠르드족 여성 감독인 네긴 아마디가 시리아 북부 지역에서 ISIS에 대항하여 싸우는, 모두 여성으로 이루어진 쿠르드족 민병대에 들어가며 시작한다.
쿠르드족은 누구인가. 성경에 등장하는 메데인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뿌리 깊은 민족이면서 3000만명이 흩어져 사는 세계 최대의 나라 없는 민족. 쿠르드족은 터키, 이라크, 이란 등 주로 국경을 따라 이어지는 자그로스산맥 지역에 산다. 쿠르드족이 머무는 지역, 쿠르디스탄은 30만㎢로 한반도의 1.5배나 된다.
20세기 이후 터키 쿠르드족의 역사는 탄압과 대량 학살, 강제 동화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터키는 쿠르드족의 자치를 위해 30년간 싸워온 쿠르드 민병대를 테러 단체로 간주하며, 터키 인구 5명 중 1명을 차지하는 쿠르드인을 소수민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동화시키거나 말살하려고 시도해 왔다.
그러니까 쿠르드족은 디아스포라 중의 디아스포라다. 고향을 잃은 민족이 아니라 제대로 된 고향을 가져본 적도 없는 민족. 아마디의 영화는 그중에서도 쿠르드족 여성들을 찍은 것이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쟁에 대한 기존 관념을 와장창 부쉈다. 이 영화에는 전쟁에 대한 스펙터클이 없었다. 물론 전쟁터에서 찍은 영화이니 총알이 날아오고 폭탄이 터진다. 그러나 군복을 입은 채로 빨래하고 밥을 차리는 일상 속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다.
여군들은 빨래하고 밥을 해먹이고 서로의 머리를 빗겨주고 어쩌다 얻게 된 예쁜 드레스를 입어보고 부상당한 전우를 돌본다. 감독이 여군들이 집안일을 하는 장면을 화면의 중심으로 두고서야 새삼 알았다. 그렇다. 전쟁터에서도 누군가는 집안일을 해야 한다. 해도 해도 끝나지 않으며 잘해봐야 본전인 그 집안일을.
우리가 별일 없는 듯 반복되는 일상을 살면서도 동시에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며 당최 빠져나갈 수 없는 역사적 흐름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아마디 영화 속 인물들은 지루하지만 똑같아 보이는 매일과 그것을 지탱하는 단순하고도 평가절하된 여성들의 노동을 해내는 동시에 전쟁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이들은 군인이면서 어머니이기도 했다. 떡 벌어진 어깨, 다리를 벌리고 앉은 품새, 단호한 표정. 그 표정 뒤에 서 있을 그녀의 새끼들. 한 여자 안에 머무는 두 역할의 공존이 전쟁에 대한 내 머릿속 관념에 균열을 내는 듯했다. 두꺼운 중년 여성의 몸이 전쟁터에서 이토록 강인해 보일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영화를 본 곳은 2023년 베를린 영화제. 막이 내리고 제작진이 무대 위로 올라와 관객들과 대화를 나눴다. 영화에 큰 감명을 받은 이가 나뿐만은 아닌 것 같았다. 모든 질의응답이 좋았다. 그러다 마지막 질문으로 한 백인 여성이 손을 들고 유창한 영어로 아마디에게 물었다.
“감독에게 질문이 있는데요. 당신은 지금 쿠르드족의 이야기를 아주 서구적인, 바로 이곳 베를린에 와서 상영하고 있어요. 이것은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하나요? 우리가 당신의 영화로부터 어떤 메시지를 받기를 원하나요?”
질문을 들으며 이유를 콕 집을 수 없이 불쾌했다. ‘그래서, 뭐. 우리 보고 어쩌라고.’ 이런 태도라고 느껴져서 그랬을까? 그러나 아마디의 대답이 미묘한 불쾌감을 날려주었다.
“내가 영화를 통해서 하고자 하는 것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미디어에서 필터링된 전쟁과 여성이 아닌 전쟁의 진실한 모습을요. 내가 보여준 것으로 무엇을 할지는 내가 아니라 당신이 결정해야 할 문제입니다.”
답변이 끝나자 장내에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소수자로서 작품을 만들고 그것을 세상에 보일 때 처하게 되는 곤란을 돌파하는 멋진 대답이었다.
하미나 <아무튼, 잠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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