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시작이었지만, 전부는 아니니까요”

곽진산 기자 2024. 4. 23.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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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비영리단체 ‘운디드 힐러’ 만들어 활동하는 세월호 생존자 이윤진씨
2019년 10월 운디드 힐러 활동가들이 제작한 아동용 그림책. 이 그림책은 나무를 통해 아이들에게 트라우마에 대해 알려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운디드 힐러 제공

“10년이면 정말 긴 시간이잖아요. 그런데 아직도 저는 그날이 다가오면 신체가 반응해요. 감정 조절도 안 되고 그렇죠. 생각해보면 10년 동안 저는 크게 변한 건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단체로서는 성장했죠.”

이윤진(27·가명)씨는 2014년 4월16일 세월호에서 빠져나와 살아남은 단원고 2학년 학생 중 한 명이다. 그 뒤로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는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만, 이씨는 자신이 몸담은 ‘활동’ 얘기를 할 때는 밝은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세월호 10주기이지만, “이 얘기를 더 많이 하고 싶다”며 이씨는 용기를 내 언론 앞에 섰다. <한겨레21>은 2024년 4월4일 서울 동작구의 한 카페에서 이씨를 만났다.

타인의 고통에 손 뻗다

이씨가 ‘회장’이란 직함을 갖고 활동하는 단체의 이름은 ‘운디드 힐러’(Wounded Healer)다. 2018년 여름 이씨를 포함해 총 4명의 세월호 생존자가 참여해 만든 비영리단체다. 상처 입은 치유자란 뜻을 가진 운디드 힐러는 본인들이 입은 상처를 도구로 사용해 자신과 타인의 상처를 돌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 심리 치료는 있었지만, 트라우마를 앓는 이들 각자에게 딱 맞는 치유 프로그램이 없었던 것이 활동을 시작한 계기였다.

“트라우마를 겪으면 신체 반응이 나타나는데, 아이들은 그걸 이상하다고 생각하죠. 저희는 그게 정상적인 반응이며 치유의 시작이라고 말해요. 우리도 그랬으니까요.” 이씨가 말했다. 운디드 힐러가 주로 찾아가는 이들은 트라우마를 겪는 아동·청소년이다. ‘상처를 입은’ 활동가 본인들도 세월호 참사 당시 청소년이었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은 직접 인형을 만들어 트라우마를 겪는 아이들을 위한 인형극을 하는 것은 물론, 트라우마 교육용 그림책도 제작했다. 최근에는 청소년을 위한 자아 탐색용 보드게임도 시판을 앞두고 있다. “과거, 현재, 미래로 나눠 시간여행을 하면서 질문에 대답하는 거죠. 아이들 스스로 더 알아보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이씨가 직접 개발한 보드게임 시제품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 보드게임을 통해 코로나19 이후로 만나기 어려웠던 아이들도 더 만나려 한다. 또 활동가들이 직접 아이들의 멘토가 되는 멘토링 활동도 계획하고 있다.

2022년 1월 운디드 힐러 활동가들이 인형극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인형극 프로젝트는 트라우마 사건을 경험하고 힘들어하는 아동·청소년을 위해 진행됐다. 운디드힐러 제공

세월호 10주기에 맞춰 경기 안산 단원고 인근에서 열리는 세월호 참사 행사에도 동행했다. 이번 동행이 특별한 이유는 매년 4월 이맘때면 2주간 활동가들이 자체 휴식을 해왔기 때문이다. 서로 간단한 안부 외에는 연락도 하지 않는 것이 암묵적 약속이었다. 이씨는 “그날 뭔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며 “올해는 용기를 냈다”고 했다. 이들은 참사 이후 단원고 생존 학생들이 머물렀던 문화공간 ‘쉼표’에 ‘안전지대로의 초대’란 이름으로 공간을 조성했다. 편안한 음악과 다과가 제공되는 이 공간에선 누구나 편안하게 쉴 수 있다.

이씨는 운디드 힐러의 향후 활동에 세월호 참사가 꼬리표로 붙지 않기를 원한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가 이 단체를 하게 된 계기는 분명히 맞아요. 그런데 아직도 단체를 설명할 때면 이 참사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거예요.”

이씨는 운디드 힐러는 여러 곳에 필요하다고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활동에 참여하는 이도 늘었지만, 미래를 고민해야 할 고작 20대 초반이 모였기에 도중에 떠난 이도 있었다. 다만 지금은 세월호 참사 생존자뿐 아니라, 어떤 참사도 겪지 않은 이들도 활동가로 참여하는 단체가 됐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그는 생존자의 경험이 아닌, 활동가로서의 포부를 밝히길 원했다. 직장 생활을 병행하면서 아직 이 활동에 더 많은 시간과 열정이 필요하다는 이씨는 “단체 활동이 지속 가능하다면 이 활동에 전념하고 싶다”고 했다.

“모두를 대변할 순 없죠”

“제가 나서서 무슨 말을 하는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 배에서 살아난 학생은 저 말고도 많아요. 그들 중 일부는 어떤 이유에서든 말하지 않는 이유가 있겠죠. 제 말이 그들 모두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요.” 그러면서도 이씨는 웃으며 말했다. “활동에 대해선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죠.”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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