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의대 증원, ‘30년 전 신설 의대’가 반면교사다
저는 강원대학교 의과대학 1회 졸업생으로 모교에 남은 내과 의사입니다. 1995년, 3년 뒤면 번듯한 의과대학이 완성된다는 정부의 약속만 믿고 입학한 4개 신설 의대 200명 학생 중 한 명이었습니다. 10개월 뒤면 49명이었던 강원대학교 의과대학 정원이 132명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난다고 하고 정부는 정해진 타임라인을 따라 신입생을 받을 준비를 재촉하는 지금, 한 신설 의대의 성장통을 반추해 봅니다.
30년 전에도 대학들은 전무한 의학교육 준비 상황에서 2년 의예과 기간이 있으니 3년 뒤면 차질 없는 교육이 가능하다며 의대생을 뽑았습니다. 교육의 질은 차치하고라도, 의예과 2년은 자연과학대학에서, 본과 1년은 축산대학에서 강의실을 빌려 공부했고, 카데바 해부 실습을 해야 할 시점까지도 의대 건물과 시설은 완성되지 않아 새벽 5시 학교 버스에 몸을 실어 서울 의대에서 출장 실습을 했습니다. 본과 3학년 임상 실습을 해야 할 때까지도 번듯한 수련병원이 마련되지 않아 역시 출장 실습을 받는 신세였으니, 학생으로서의 자괴감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하겠습니까.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의학교육은 그때보다 훨씬 전문화되어, 이론을 배우는 건 교육의 일부일 뿐, 술기 연마, 임상 증상에 대한 토론, 모의 환자와 실습, 그리고 본과 3·4학년은 수련병원에서 실제 환자에 대한 교수 밀착 지도가 이루어집니다. 이러니 교원, 실습 기자재, 강의동, 수련병원 모든 것이 기준에 맞게 준비돼야 하고, 교육 프로그램의 질뿐 아니라 학생 지원 서비스까지 포괄한 의학교육 인증 제도까지 운영되고 있는 것입니다.
강원 의대는 각고의 노력 끝에 2022년 전국 의대 중 7개교만 받은 ‘6년 인증’을 ‘한국의학교육평가원’에서 받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같은 해 설립되었던 학교들 중에는 부실한 의학교육, 수련병원 기준 미충족으로 폐과 후 사라지기도 하였으니, 3배수 가까운 증원을 준비 없이 받았을 때 과거 서남 의대 전철을 따르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요? 1995년에 그랬던 것처럼 3년 뒤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비될 것이란 상상 속 설계를 하는 이들은 그때도 그 자리에서 오늘의 선언을 책임질까요?
정부 방침대로 강원 의대가 2025년 132명의 신입생을 받은 후에도 49명이 정원인 현재 교육의 질과 똑같이 유지하려면 현재 162명인 전임 교원은 672명 수준으로 늘리고, 해부학 실습이 예정된 2027년까지 실습실 포함 교육 공간은 2.7배 확대돼야 합니다. 또한 병원 실습이 예정된 2029년까지 현재 632병상인 수련병원은 3123병상 수준이 돼야 합니다. 현재 서울 의대 신입생이 135명이니 교육과 실습에 필요한 교원과 병상 수는 그에 걸맞아져야 하는 게 이치겠지요. 그러나 작년 모교 병원 인턴으로 남은 졸업생은 23명에 불과했으니 132명의 졸업생이 생긴다고 한들, 모교 병원이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인데 지역에 인재를 남길 수는 있을까요? 강원 의대 출신으로 본교로 돌아왔던 교수 중 올 한 해 동안만 5명이 사직하였습니다. 고향과 같은 모교 병원으로 돌아왔던 인재들이 떠나는 이유를 먼저 돌아봐야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후배들이 지역에 남아 필수의료를 함께하기를 늘 바라왔습니다. 돌아보면 우리 동네 사람, 알고 보면 우리 동네 어르신인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함께 책임지기를 말입니다. 그러나 정교한 설계 없는 정원 늘리기로는 그 어느 것도 해결될 수 없을 뿐 아니라, 30년 전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입니다.
정치인의 상상만으로, 행정가들의 욕심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오래지 않은 역사를 반면교사 삼아 지역 필수의료를 살릴 길을 제대로 설계해야 할 때입니다.
최대희 강원대 의대 소화기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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