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교수까지 '주 1회 휴진' 으름장… 환자들 "목숨이 볼모인가" 절규

김표향 2024. 4. 23. 19:3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교수들 집단 휴진·수술 중단 속속 결의
증원 백지화 압박… 의료현장 혼란 조짐
환자들 "의사에 대한 신뢰 무너져" 비판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가 1주일에 하루 요일을 정해 외래진료와 수술을 모두 중단하기로 결정한 23일 대구 한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진료실 앞에 토요일 휴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대구=연합뉴스

전국 주요 병원 교수들이 사직을 강행하고 주 1회 외래진료와 수술을 중단하기로 결의하는 등 전공의에 이어 교수들까지 집단행동에 본격 가세하고 있다. 이달 말 대학별 의대 증원 규모 조정 마감을 앞두고 정부를 압박하려는 의도다. 사직 및 휴진 참여율을 예측하긴 어렵지만 제한적이나마 대형병원 ‘셧다운’이 현실화하면 의료현장에 혼란이 불가피하다. 환자들은 “목숨을 볼모로 의사들 요구를 관철시키려 하느냐”며 비판하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23일 온라인 총회 후 “예정대로 25일부터 사직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또 “주당 70~100시간 근무로 정신과 육체가 한계에 도달했다”며 다음 주 중 하루는 외래진료와 수술을 쉬기로 했다. 휴진 날짜는 대학마다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정기적으로 주 1회 휴진할지 여부는 오는 26일 정기 총회에서 다시 논의할 계획이다. 다만 휴진하더라도 응급실과 중환자실 등 부득이한 응급·중증환자 치료는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전의비에는 5대 상급종합병원(빅5 병원)을 수련병원으로 둔 서울대, 연세대, 가톨릭대, 울산대, 성균관대를 비롯해 전국 20여 개 의대 교수들이 참여하고 있다. 전의비와 별개로 이날 자체적으로 비대위 총회를 연 서울대 의대 교수들도 이달 30일부터 주 1회 정기 휴진을 결정했다. 서울아산병원 등이 속한 울산대 의대 교수들은 25일부터 사직하되 당장 병원을 떠나지 못하는 교수들은 다음 달 3일부터 주 1회 정기 휴진을 하기로 했다. 앞서 충남대병원·세종충남대병원은 가장 먼저 주 1회 휴진을 결의하고 26일부터 매주 금요일 휴진에 돌입한다.

최근 정부가 국립대 총장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의대 증원 규모를 최대 50%까지 대학별로 자율 조정하도록 허용했지만 의사들은 ‘원점 재검토’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서울대 비대위 언론대응팀장인 배우경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는 “최대한 증원하겠다는 대학들에 정원 조정 권한을 부여한 것을 의료계에 대한 양보로 보긴 어렵다”며 “올해 증원은 중단하고 의사들이 동의하는 의사 수 추계 기구에서 재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수들은 ‘의료진 소진에 따른 환자 안전을 고려한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이달 말 내년도 대학입시전형계획 변경안 제출이 임박하자 정부를 최대한 압박해 의대 증원 정책을 저지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대학들이 입시요강을 공식 발표하는 다음 달 말까지 주기적 휴진이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 달 전 교수 비대위 차원에서 취합하거나 의대 학장에게 제출된 사직서가 25일부터 효력이 발생하는지 여부를 두고 논쟁이 분분하자 우회적 방법을 택한 것이란 해석도 있다.

병원에 응급·중증환자 진료 인력을 남겨둔다고는 하지만 빅5 병원부터 지방 대학병원까지 일제히 휴진에 들어가면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비상진료체계에 상당한 혼란과 공백이 예상된다. 다만 일각에선 대형병원들이 응급·중증환자 위주로 운영 중이라 일반 외래 휴진과 비응급 수술 지연이 미칠 파장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23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과 환자, 보호자가 나란히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환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두 달 전 전공의들이 병원을 집단 이탈한 이후 교수들에게 진료 중단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기자회견과 호소문 형식을 빌려 수차례 읍소했는데도 기어이 환자를 등지는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지금 환자들은 전국 곳곳으로 흩어져 치료를 받는 등 비상 상황에 적응하며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데 환자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는 교수들을 보며 신뢰가 무너졌다”며 “진심으로 환자를 생각한다면 집단행동을 하더라도 응급실과 수술실은 지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켜야 하지 않냐”고 비판했다.

교수들이 사직과 진료 중단 명분으로 신체적·정신적 피로를 내세우면서도 정작 전공의들을 복귀시키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의료진 번아웃으로 환자들이 더 큰 위험에 노출될까 염려된다면 병원을 나간 전공의들이 돌아오도록 설득부터 해야 하지 않냐”며 “하필이면 이 시기에 몸이 아파서 환자가 됐다는 사실이 통탄스러울 뿐”이라고 했다.

암투병을 해 온 한 환자는 “의정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도 문제지만, 환자 목숨을 볼모로 잡고 요구사항을 관철시키려는 의사들은 최소한의 윤리마저 저버린 것”이라고 일갈했다. 이어 “환자들 사이에선 진짜 의사는 드라마 속 의사와 고 이태석 신부밖에 없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오간다”고 꼬집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