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 위주의 진상규명을 넘어서 [홍성수 칼럼]

한겨레 2024. 4. 2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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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관련자들의 일부가 처벌되었지만 형사처벌로 환원되지 않은 남은 과제들은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이라는 또 다른 시험대가 마련될 것 같다. 수사는 마무리되었지만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이라는 과제는 그보다는 훨씬 더 넓고 깊은 차원의 문제다.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를 맞은 지난해 10월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에서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관계자 및 추모객들이 특별법 제정 및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시청역까지 시민추모대회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홍성수 |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지난 4월16일은 세월호 10주기였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지금도 귓가에 맴도는 참사, 하지만 우리는 10년 동안 결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세월호 선장과 선원, 해경, 청해진해운, 한국해운조합, 인천항만청, 한국선급 등 인허가 관리 및 관리·감독기관이 강도 높은 수사를 받았고 결국 처벌되었다. 감사원은 감사를, 국회는 국정조사를 했으며,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등 3개의 조사위원회가 운영되었다. 시민사회와 학계, 언론계 등 각계각층이 진상규명, 피해자 추모와 지원 그리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진심을 다했다.

세월호를 넘어, 대형 참사나 사고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응 방식 전반에 대해서도 짚어볼 지점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형사처벌 위주의 진상규명이다. 우리는 큰 사건이 나면 거의 예외 없이 검찰에 사건 해결을 맡기곤 했다. 책임이 있는 자를 찾아내 처벌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형사처벌이 개인의 책임을 묻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가장 강력하고 중요한 방법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벌어지는 상당수 사건들은 어떤 개인의 작품으로 보기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다. 실제로 사고 규모가 클수록 인간이 통제하기 힘든 ‘시스템’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형사법도 이러한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 법 적용의 인적·물적 범위를 확대해왔지만, 그 본성상 어떤 특정 인간을 처벌한다는 고유의 목적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상규명을 형사법적 처벌에 의존한다면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기 어려워진다. 무엇보다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구조적 요인들이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세월호 참사와 같이 나쁜 관행들이 오랫동안 누적되고, 여러 인간들의 크고 작은 무책임 등이 교차하며 발생하는 대형 참사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구조적 요인을 해결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고 유의미한 교훈을 도출할 수 있는데, 책임 있는 사람만 찾아 처벌하려다 보면 중요한 의제들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고약한 것은 인간에게 형사법적 책임을 묻는 것조차 실패하는 경우다. 대형 참사의 관계자들이 줄줄이 무죄를 받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모든 관심이 수사와 처벌에 쏠렸는데 ‘무죄’가 나오게 되는 것만큼 당혹스러운 일이 없다. 형사법정은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실하게 입증된 경우에만 처벌할 수 있다는 원칙이 지배하는 곳이다. 구조적 문제들이 얽혀 있는 대형 참사에서 개인의 형사법적 책임을 입증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적·사회적으로 더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일수록 형사법정에서는 면책될 가능성이 높다. 형사법의 법리는 고위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고위 책임자들은 줄줄이 무죄를 받고, 말단 집행자들만 처벌되는 경우가 흔한 이유다. 무죄를 받으면 형사처벌만 면하는 게 아니다. 결국 무죄를 받아낸 피고인은 다른 법적 책임이나 징계, 정치적·사회적 책임에서도 면책되곤 한다. 판결은 ‘형사법상 무죄’임을 말한 것뿐이지만 사회에서 그 판결은 ‘아무런 잘못 없음’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죄 판결 이후에 문제의 구조적 요인에 대한 관심이 새롭게 제기되는 것도 아니다.

형사처벌 위주의 사건 처리는 진정한 문제 해결보다는 논란을 조기에 종식시키고 특정인을 처벌함으로써 자신의 정치적 책임을 벗어나려는 ‘권력자’에게 유리한 방식이라는 점도 기억해두어야 한다. 대중의 분노에 부응하는 외양을 띠지만,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라는 대중들의 진정한 열망에는 반한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적이기도 하다. 요컨대 사회가 형사법에 요구하는 것에 비해 법의 능력은 제한적이다. 이것이 그동안 엄중한 형사책임을 묻는 것에 집중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받아보곤 했던 이유다. 세월호 참사 역시 검찰 수사로 여러 사람이 처벌되었고, 세차례나 조사위가 설치되었지만 책임자 처벌을 위한 조사에 너무 치중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시험대에 서 있다. 세월호 참사 관련자들의 일부가 처벌되었지만 형사처벌로 환원되지 않은 남은 과제들은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이라는 또 다른 시험대가 마련될 것 같다. 수사는 마무리되었지만 여전히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이라는 과제는 그보다는 훨씬 더 넓고 깊은 차원의 문제다. 이태원 조사의 목적이 수사로 밝혀내지 못한 책임자를 추가로 찾아내기 위한 것만은 아니어야 하며, 수사 종료는 이태원 특별법을 반대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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