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탐구의 동기, 맹신은 경계 [김용석의 언어탐방]
김용석 | 철학자
영화 ‘파묘’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오컬트 또는 오컬티즘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예전에는 이런 장르의 영화를 괴기영화, 공포영화 등으로 불렀던 것 같은데, 요즘은 ‘오컬트 영화’라고 분류하기도 한다. 오늘날 오컬트라는 말은 매우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오컬트의 역사 또한 방대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우리말 사전에는 오컬트를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적이고 초자연적인 현상 또는 그런 현상을 일으키는 기술”이라고 정의한다. 이에 따르면 오컬트는 과학적인 것 ‘밖에’ 있는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것들은 많다. 오늘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지 못할 뿐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익히 들어봤을 마법, 점성술, 연금술뿐만 아니라, 초기 기독교의 영지주의, 유대교의 카발라, 헤르메스주의, 신지학 등 말 자체도 생소하고 그 말뜻을 파악하기 어려운 것들도 많다. 영매, 강신술 등 심령주의를 오컬트와 구분하기도 하지만 이들을 포함하면 그 목록은 한참 길어진다. 과학 밖의 세상은 의외로 광활하다.
그럼에도 이들 사이의 공통점을 포착하면 그 뜻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 공통점은 오컬트의 어원적 의미에 있다. 우리말 외래어가 된 영어 오컬트(occult)는 라틴어에서 유래한다. 라틴어 타동사 오쿨로(occulo)는 씨앗 따위를 심고 흙으로 덮다, 감추다, 숨기다 등의 뜻을 지녔고, 이 말의 분사형 오쿨투스(occultus)는 감춰진, 숨겨진, 비밀스러운 등의 의미로 쓰였다. 지식의 차원에서 보면 명사로서 오컬트는 ‘숨겨진 것에 대한 앎’을 뜻하며, 또한 그런 지식을 향한 인간의 의지를 보여주는 말이다.
좀 더 들어가 보면 역사적으로 오컬트라는 말은 우선 ‘숨겨진 것’을 가리켰고, ‘숨긴 것’을 암시했으며, ‘숨은 자’를 은유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세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면 오컬트의 개념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오컬트 개념에서 ‘숨겨진 것’의 의미를 보자. 서구 르네상스 시대는 문예부흥기이자 오컬트 학문이 번성하던 시기다. 그만큼 앎에 대한 욕구도 컸던 때다. 오늘날 오컬트를 정의하고 비판할 때 ‘초자연적’이란 수식어를 쓰지만, 16세기 유럽에서 점성술과 연금술을 탐구했던 학자들은 오히려 ‘자연적인 것’의 핵심에 도달하고자 했다.
그들도 오늘날의 과학자처럼 가시적 현상 이면에 숨겨진 자연법칙을 찾고자 노력했다. 그 법칙으로 물리 현상을 총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다만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충분한 증명을 거치지 못한 결과물이었을 뿐이다. 중세 때에 자기적 현상은 알려져 있었으나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성(磁性)은 오컬트, 곧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그 무엇으로 치부되었다.
17세기에 뉴턴이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가시적 현상 이면에 숨겨진 만유인력을 주장했을 때 동시대 사람들은 그의 이론을 오컬트라고 비판했다. 라이프니츠를 비롯한 당대의 많은 과학자들이 그랬듯이 뉴턴도 연금술에 심취했는데, 그것이 신비해서가 아니라 자연의 더 깊은 원리를 밝혀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지식의 역사는 빠르게 흘러 18세기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오컬트 학문은 더 이상 과학의 개념과 양립할 수 없게 되었다. 19세기 산업화와 함께 과학·기술이 양적 질적으로 급속히 발전하면서 전통적 오컬트 영역은 점점 더 신비화되어갔다. 19세기 말에 일부 오컬트 운동은 종교적이자 교조적인 성격을 띠어갔다. 오컬트는 오컬티즘이 되어갔다. 오컬티즘이란 말은 19세기 후반부터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컬트 전문가들은 두 개념을 구분해서 사용한다.
둘째, ‘숨긴 것’이라는 관점에서 오컬트를 살펴보려면 고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피타고라스학파를 비롯해 고대 그리스의 학파들은 지식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공개된 지식, 곧 외부에 노출하는 지식과 내부 구성원들 사이에서만 전수하는 지식으로 나누었다. 전자를 ‘엑소테리코스’, 후자를 ‘에소테리코스’라고 했는데, 각각 그리스어로 ‘밖으로’와 ‘안에서’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후자는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학파 내부에 숨긴 ‘비전의’(esoteric) 지식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컬트인 것이다. 비전된 지식 가운데는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기 매우 어렵거나 애매모호하고 암시적이며 이론적으로 미완성인 것들도 많았다.
서양에서 밀교(esotericism)라는 말은 이런 고대 전통과 연관 있다. 서양 밀교는 고대로부터 비전되어 온 ‘앎의 세계’를 깊이 탐구하는 것이다. 그 탐구 대상은 매우 다양한데 점성술, 연금술, 영지주의 등 오컬트의 탐구 대상과도 겹친다. 고대로부터 비전된 지식과 기술을 탐구할 때 인간의 호기심은 크게 작동하는데, 호기심은 감성의 영역으로서 상상력을 자극하고 비이성적 판단을 유도하기도 해 탐구자 스스로 신비주의에 빠지게 할 수 있다. 이 또한 오늘날의 관점에서 오컬트와 밀교가 비과학적으로 보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마지막으로 ‘숨은 자’라는 관점에서도 오컬트를 살펴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오컬트를 실행하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특별한’ 존재로 여겨지기 십상이었다. 특별함은 ‘이상함’이 되어 박해를 받기도 했다. 더구나 근대화 이후에는 그들의 인식과 행위가 비과학적일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것 너머’(paranormal)로 여겨졌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정상적이라는 기준으로 조직화한 사회에서 자신들의 지식과 기예를 공개적이고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오컬트라는 말은 또한 ‘숨은 자’들의 은유가 되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오컬트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탐구의 동기로서 오컬트는 여전히 소중하지만, 맹신의 대상으로서 오컬티즘은 경계해야 한다. 영화 ‘파묘’에서 풍수사 상덕(최민식 분)이 한 말을 되새겨 보자. “우리나라 상위 1퍼센트 사람들에게 풍수는 종교야!” 상덕에게 풍수지리는 특별한 지식의 보고(寶庫)다. 지식은 사회공동체가 공유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상위 1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이기적으로 이용하며 맹신한다. 그러면 상덕은 치밀한 지관이 아니라 어설픈 교주로서 그들을 대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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