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성장률 다시 가능할까 [한겨레 프리즘]

조계완 기자 2024. 4. 23.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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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한 시민이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모습. 연합뉴스

조계완 | 정책금융팀장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지난 22일 ‘한국의 경제 기적은 끝났는가?’라는 제목을 붙인 기사를 1개 통면으로 실었다. 작은 영문 활자들이 빼곡한 이 특집은 제조업 및 재벌·대기업 주도 경제 성장이라는 한국적 옛 모델은 지금 큰 도전을 맞고 있으며, 새로운 단계로의 혁신적 이행은 지체되고 있다고 담백하면서도 입체적으로 요약 진단했다. 흡사한 제목으로 ‘한국 경제의 신화와 종말’을 다룬 여러 부류의 묵직한 리포트들이 10여년 전부터 신문기사나 연구논문, 경제토론회에 제법 제출돼온 터라 제목 자체가 그다지 흥미나 자극을 준 건 아니다.

그보다는 2022년 이후 이어지고 있는 고금리·고물가·고유가, 국세 수입 대규모 결손 같은 충격과 현상 그 뒤편에서 우리 경제의 현 단계 구조를 새삼 돌아보게 한다. 물가·금리 같은 경상 가격지표를 넘어, 우리 경제의 총수요·총공급 동력이 식어가고 활력이 감퇴하는 추세는 경향적으로 관찰된다. 한국 경제 실질 성장률은 2022년 2.6%, 2023년 1.4%, 올해와 내년 각각 2.1%, 2.3%(한국은행 최신 전망치)다. ‘4년 연속 2% 중반 그 아래’라는 숫자는 경기순환 사이클상에 수축·하강 지점에 와 있다는 의미보다는 저성장 경로가 일종의 ‘체제’처럼 굳어지고 있다는 우울과 불안을 드리운다. 1970~2022년 연평균 6.4% 성장해왔던 한국 경제다. 우리는 훗날 3~4% 성장률을 과연 다시 볼 수 있을까?

지속적인 성장 과정에서는 분배를 둘러싼 갈등도 커지지만, 경제가 정체되면 분배 못지않게 성장이 생산자·소비자, 가계·기업·정부 모두의 문제로 재차 대두하기 마련이다. 성장은 거시경제 수준에서 ‘신용’의 원천이다. 가계·기업은 경제가 확대재생산(성장)할 거라는 믿음이 있어야 대출을 일으키고 투자에 나선다. 금융기관도 상품 판매·소비가 증가해 원리금이 안정적으로 상환될 거라는 기대에 근거해 돈을 빌려준다. 달리는 자전거처럼 페달이 멈추면 경제는 쓰러진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집계되는 코스피지수는 ‘사상 첫 2000 돌파’(2007년 7월) 이후 17년이 흐른 지금, 여태껏 수많은 종목이 새로 상장됐음에도 2600 선에 머물러 있다. 달러 대비 원화는 환란 이후 2020년까지 연평균 1000~1100원 선이었는데, 요즘은 가치가 훨씬 떨어진 1350원대를 ‘균형 수준’으로 시장 참가자들이 인식하는 듯하다. 이런 통화가치와 주가지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어정쩡한 말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 우리가 봉착해 있는 ‘펀더멘털 취약성’을 뚜렷이 보여준다.

재벌체제, 원·하청, 기득권 등으로 흔히 묘사돼온 한국 경제는 공정·평등에 기반한 자유 선택과 계약 같은 표준 시장경제론보다는 위계 및 지배-종속 권력관계 속에서 집단·계층이 각축해온 ‘정치경제학적 구도’로 흔히 분석돼온 유형에 속한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설파한 ‘보이지 않는 손’이 오른손이라면, 한국 경제에서 재벌 대기업과 경제부문 기술관료는 ‘보이는 왼손(혹은 주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시장도 하나의 ‘사회적 제도’다. 각국 경제 운영의 여러 유형을 서로 국제 비교한 연구들은 착취적인 제도 아래서는 경제가 실패하고, 포용적인 제도를 가진 나라에서 경제가 번성했다는 명료한 결론을 제출해왔다. 노동자에게 더 많은 임금 비용을 지급할수록 기업조직에도 오히려 더 높은 생산성과 이윤을 가져다준다는 ‘효율임금’(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 애컬로프) 등이 포용적 제도에 속할 것이다. 이번 파이낸셜타임스 기사에서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한국 경제 디엔에이(DNA)에는 역동성이 뿌리박혀 있다. 아직 기적이 끝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래에 경제 성장을 지탱해줄, 과학기술에서 ‘풍요의 뿔’을 찾는 일도 필요하겠지만, 우리의 혈액이나 풍토에 기대기보다는 ‘포용적 정책과 제도를 설계·집행하는 길’을 선택하길 소망할 뿐이다. 기적은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에 더욱 가치가 있다.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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